'골목길 구제금융' 전당포가 사라진다

전당포 거리 종로5가 썰렁
적자에 폐업 속출…"나쁜놈 취급도 싫어"
사진=김범준 기자
19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5가의 한 전당포. 반투명한 유리로 가려진 창구 앞엔 “신규 고객은 더 이상 받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점포 안엔 귀고리와 금반지만 열 점 정도 있을 뿐 다른 물건은 없었다. 이곳에서 남편과 9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67)는 “현 이자율로 500만원을 빌려주면 매달 8만원밖에 벌지 못한다”며 “종종 돈이 회수되지 않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새 고객을 유치하는 것이 손해로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법정 최고이자율을 지속적으로 내리면서 서민들이 주로 애용하는 전당포가 사무실 임차료 등을 감당하지 못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구한말 처음 등장한 전당포는 개인 신용도를 따지지 않을뿐더러 불법 추심도 수준이 덜해 한동안 ‘골목길의 구제금융기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그러나 한때 ‘전당포 거리’로 불렸던 서울 종로5가에서도 이젠 전당포를 찾기 힘들다. 이날 방문한 종로5가의 전당포 아홉 곳 가운데 영업하는 곳은 두 곳에 불과했다. 2대째 전당포를 운영하는 김모씨(43)는 지난해 영업을 포기했다. 대신 새로 차린 보석 가게 운영에 전념하고 있다. 김씨는 전당포 임차료인 월 150만원을 버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아직 폐업하지 않은 전당포들도 모두 나처럼 ‘투잡’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루이비통, 샤넬 등 명품 의류를 취급하며 부자들을 상대로 호응을 얻었던 ‘명품 전당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15년째 명품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전모씨(54)는 오는 5월 가게 문을 닫기로 했다. 전씨는 시중에 약 4억원을 빌려줬지만, 한 달에 들어오는 돈은 50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이 중 사무실 임차료 250만원과 운영비 30만원가량을 빼면 절반도 채 남지 않는다. 전씨는 “전당포가 약자들을 착취하는 ‘나쁜 놈’이란 인식까지 있어서 회의감이 든다”며 “업종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