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연 "내 목표는 연진이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욕 먹는 것"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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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박연진 역 배우 임지연"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미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랑을 받는 건 쉽지 않지만, 이번엔 미움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연진이가 욕을 먹어야 동은이의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학폭 가해자 박연진 역을 맡으며 전국민의 미움을 받고 있는 배우 임지연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임지연이 목표했던 부분이 어느정도 해소됐기 때문일 것이다. 임지연은 2014년 영화 '인간중독'으로 그야 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재학 시절 2011년 영화 '재난영화'에 출연하며 "괜찮은 신인이 나타났다"는 입소문이 나긴 했지만, 임지연이라는 이름 석자를 대중적으로 알린 건 '인간중독'이었던 것. 하지만 이후 활동이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었다. 종종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고, 한동안 작품 제안이 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임지연은 '더 글로리'를 통해 희대의 악녀 박연진을 연기하며 "대체 불가 배우"라는 평을 받고 있다. 임지연의 어머니까지 "지연아"가 아닌 "연진아"라고 부를 정도라고. 연기를 너무 잘해 "학창시절에 너도?"라는 질문을 "진짜 많이 받았다"는 주변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연진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부분을 생각했어요. 처음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소시오패스처럼 해야 할까, 아니면 감정적으로 접근해야 하나, 생각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아 그냥, 진짜 나만 할 수 있는 걸 하자' 싶더라고요. 그래서 유명한 작품이나 소설도 참고하지 않고, 따라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 목소리, 표정, 스타일까지 그냥 제걸로 하고자 했죠. 초반엔 캐릭터를 잡는 게 힘들었는데, 후반부로 가니 자연스럽게 녹아내리더라고요."'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여성이 인생을 걸고 펼치는 복수극을 담았다. 임지연이 연기한 박연진이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의 복수에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친구들을 움직여 학폭을 주도하는 것은 물론, 성인이 된 후 재회했을 때에도 인격 모독성 발언을 이어간다.
밑도 끝도 없이 표독스러운 연진이를 연기하며 임지연도 "하루종일 그 성질머리로 지내면 온 세상이 다 짜증나는 느낌이었다"고 후유증을 전했다. 그럼에도 욕도, 노출도, 담배까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었다"는 바람을 전했다.
특히 데뷔작 '인간중독'에서 파격적인 노출이 있었기에 '더 글로리'에서는 조심스러울 수 있었을 부분이었지만 "필요한 설정이었기에 문제가 없었다"며 "재준(박성훈 분)이와 베드신도, 아이 엄마라는 설정도, 저에겐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 작품이 잘 될 거라 확신이 들었어요.(웃음) 잘 짜여진 소설을 보는 거 같았어요. 그만큼 연진이도 매력있었고요. 항상 악역을 제대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좀 더 내공이 쌓인 배우가 됐을 때, 악역이 주어지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이 있었는데, 너무 큰 기회를 젊은 나이에 만나게 됐어요."
그러면서도 "연진이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고, 용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학폭에 대해서도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가해자 분들은 진심으로 사과를 구하는 일을 생각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연진이 입장에서는 박쥐처럼 왔다갔다하는 혜정이가 제일 나쁘다"고 웃으면서도, "연진이의 결말은 최고의 벌같아서 좋았다"고 만족감을 보였다. 연진은 극중 살인 혐의가 드러나 교도소에 수감되고, '감방 동기' 언니들이 "예쁜아, 오늘 날씨 어떻냐"라는 말에 바짝 군기가 들어 날씨를 소개한다. 기상캐스터로 일할 때 한 번도 스스로 써본적 없었던 원고를 교도소에 와서야 직접 쓰게 된 것. "(피해자가) 왜 억울한지 모르고, 그저 분해하면서 그 감정들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연진의 마지막 장면은 제가 생각할 때 최고의 벌 같아요.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더 큰 벌을 받은 거 같아요. 마지막 장면을 찍으면서 저도 마음이 힘들었어요. 짧은 분량으로 나왔지만, 몇 달을 준비했는데, 그 분위기를 잘 살려주신 거 같아요."
연진이는 희대의 악녀가 됐고, 학폭의 상징이 됐지만 배우 임지연에 대한 찬사는 커지고 있다. '임지연의 재발견'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더 글로리'가 해외에서 인기를 모으면서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고, 외국어로 쓰인 댓글도 여럿 눈에 보인다.
"모든 작품에 필사적이었고, 최선을 다했다"는 임지연은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에 "열심히 했다는 칭찬 같아서 좋다"면서 활짝 미소를 보였다. "언젠가 알아봐주시겠지라는 것보다, 조금씩 성장해가는 그 모습이 좋아서 지금까지 온 거 같아요. 나의 길을 가면 더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모든 작품에 절실하게 임했어요. 지금도 촬영하는 것이 불안하고, 잘해내고 싶고, 그러면서 계속 배우고 있어요. 솔직히 이렇게 많은 칭찬을 받을 날이 올거라 생각 못했는데, 감사하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글로리'를 쓴 김은숙 작가는 임지연의 눈빛에서 "악마의 심장을 봤다"고 했지만, 임지연은 마지막까지 겸손했다. 대본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숙지하며 애드리브 없이 자연스러운 연기로 연진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난 타고난 배우는 아니라 죽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변에 끼가 많고 이런 친구들을 보면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나이에 역할에 맞는 마스크를 가졌다는 이유로 캐스팅이 됐고, 체력적인 장면이 많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사회 경험도 없고, 연기를 잘하지도 못해서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현장에서 많이 혼났고, 울기도 했죠. 그래도 '이제 그만하자'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저는 할머니가 되도 연기를 하고 싶으니까, 조금씩 어떤 작품이든 꾸준히 계속 하고 싶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