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급한 脫석탄, 득보다 실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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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US 기술개발 뒤처지고파부침주(破釜沈舟), ‘병사들의 밥을 지을 가마(釜)를 깨버리고(破), 돌아갈 배(舟)를 가라앉힌다(沈)’는 뜻으로 사마천의 사기에서 유래한 용병술이다. 밥을 지어 먹을 가마도, 후퇴해 돌아갈 배도 없으니, 전쟁을 질질 끌어서는 승산이 없고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는 결사전의 각오를 새기는 말이다.
빈곤의 고착화 초래할 수도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일부 급진적 환경론자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탈석탄을 조기에 마무리해야 한다며, 30년 정도 사용한 석탄발전소는 물론이고 이제 막 완공했거나 완공을 앞둔 신규 석탄발전소마저 2030년 혹은 2035년까지 모두 폐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파부침주식 탈석탄이다.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기후변화의 주원인 물질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함은 설명이 필요 없다. 이산화탄소는 화석에너지를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배출된다. 따라서 탄소중립은 곧 탈(脫)화석에너지를 의미한다. 문제는 현대 문명의 약 85%가 화석에너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문명을 이끌 만한 획기적 에너지 기술이 개발되지 않으면, 탄소중립은 대실패로 끝나거나 문명의 후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문명의 후퇴 없이 탄소중립을 성공시키려면 소위 한계돌파형 기술개발이 필수다.
기후변화 대응 기술은 크게 두 갈래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아예 배출하지 않는 무탄소 에너지로 대체하는 방향과 기존의 화석에너지를 사용한 뒤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전환 노력이 전자에 속하고, CCUS(이산화탄소 포집, 이용 및 저장) 기술을 개발해 현재의 탄소경제를 좀 더 이어가자는 것이 후자에 속한다.
기술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와 수소 기술은 태양광과 풍력이 중심이 되는 신에너지 시대를 앞당길 테지만, CCUS 기술은 화석에너지 시대를 당분간 계속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기술이 최종 승자가 될지 누구도 점칠 수 없다.석탄 발전의 조기 폐지 주장은 재생에너지 기술개발에는 낙관적이지만 CCUS 기술개발 가능성을 무시하는 외눈박이 도박에 가깝다. 세계는 CCUS 기술개발 가능성을 결코 낮게 보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6년 보고서에서 CCUS가 이산화탄소 감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단일 기술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적도 있다.
너무 빨리 석탄을 악마화해 폐지하면 CCUS 기술과 함께 새롭게 전개될 신(新)화석에너지 시대에 낙오자가 될 수도 있다. 사실 CCUS 기술이 경제성을 확보한다면 기존 탄소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막대한 탄소자산의 좌초를 늦출 수 있어 탄소중립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
또한 성급한 탈석탄은 빈곤 고착화를 초래할 수 있다. 전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 인류의 최대 경제 현안은 여전히 빈곤 문제다. 저개발국의 빈곤 탈출 필수 요소는 값싼 전기다. 석탄은 전기를 가장 싸게 생산할 수 있는 전원이다. 이들에게 기후변화는 배부른 자의 불평쯤으로 들릴 수 있다. 어설픈 탈석탄은 탈빈곤의 장애물일 수 있다. 탈석탄은 결코 속전속결 대상이 아니고, 오랜 시간 서두르지 말고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할 지구전 대상이어야 한다. 파부침주의 탈석탄 만용을 부릴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