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고 밟히고…훼손마저 작품이 되다

미야지마 다쓰오 '무한숫자'展
가로세로 2m짜리 그림 아래에는 손톱만 한 크기의 하얗고 둥근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구슬 목걸이 따위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비즈들이다. 바닥에 떨어진 비즈는 서너 줌은 족히 돼 보이는데 저마다 숫자가 새겨져 있다. 비즈는 누가 보더라도 작품의 일부분이다. 벽에 걸린 그림 속에 같은 재질의 비즈가 수없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이 비즈를 밟아 작품이 훼손되지만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다. 비즈를 가져가도 되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작품을 만든 일본 현대미술가 미야지마 다쓰오(66)는 “성공했다”고 말했다. 뭐가 성공했다는 것일까.

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 개인전 ‘무한숫자’를 열고 있는 미야지마는 최근 기자와 만나 “수많은 비즈를 통해 우주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 나타내고 싶었다”며 “작품을 기획할 때부터 관람객들이 비즈를 만지고, 가져가도 될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미야지마는 숫자를 통해 세상 만물을 표현하는 작가다. 그는 ‘시간’이라는 근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발광다이오드(LED) 판을 흐르는 숫자를 통해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런 작품으로 1999년 베네치아비엔날레를 빛내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리움미술관 입구 바닥에 있는 동그란 LED 숫자판도 그의 작품이다.

숫자로 치환된 시간을 통해 세상 만물을 연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비즈를 바닥에 흩뿌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한 ‘비즈 페인팅’ 연작은 작은 비즈를 캔버스에 무작위로 붙인 뒤, 빈 곳을 물감으로 채웠다. 눈에 띄는 것은 바닥에 뿌려진 비즈다. “처음에 캔버스에만 비즈를 붙이다 보니 작품이 관객과 동떨어진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캔버스 안의 우주와 우리가 사는 현실이 연결될 수 있도록 비즈를 밑에 뿌린 겁니다. 비즈를 가져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비즈는 더 멀리 퍼져나가고, 더 많은 사람이 연결되는 거죠.” 전시는 4월 8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