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규모 금융완화 10년의 3대 부작용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총재 바뀌는 일본은행의 3·3·3 고민(上)

대규모 금융완화 장기화에 부작용 속출
만기 거의 같은 국채 금리, 3배차 나기도

국채금리 왜곡, 회사채에 '불똥'
커지는 빈부격차..부유층만 수혜
저리로 연명하는 좀비기업 양산
일본인들이 밥 반찬으로도, 술 안주로도 즐겨 먹는 된장 고등어 통조림. 전날 공장에서 출고된 통조림 값은 300엔인데 3개월 전에 만들어진 통조림 값은 100엔, 6개월 전의 통조림 가격이 200엔이라고 가정하자.

통조림 회사는 어떤 가격을 기준으로 제품을 생산해야 할까. 소비자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제조일이 불과 3개월 다를 뿐인데 가격차가 3배나 되는 통조림과, 이 통조림을 만든 회사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가격이 뒤죽박죽인 통조림 가격은 대규모 금융완화 10년째를 맞아 부작용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일본 금융시장을 상징한다.
2013년 3월 취임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한 달 뒤인 4월 대규모 금융완화를 시작한 지 10년을 맞았다. 이례적인 금융정책을 장기간 펼치면서 일본에서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대규모 금융완화의 3대 부작용을 살펴 봄으로써 일본은행이 금융완화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3가지 이유, 하지만 섣불리 그만두지 못하는 3가지 이유를 2회에 걸쳐 살펴본다.
작년 12월20일 일본은행은 국채 수익률 곡선 왜곡을 해소하기 위해 장기금리의 변동폭을 0.25%에서 0.5%로 확대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깜짝 결정'을 내린 지 두 달이 지났지만 8~9년(잔존만기) 만기 국채의 금리(0.6%)가 10년 만기 국채 금리(0.5%)를 웃도는 수익률 왜곡 현상은 여전하다. 2월21~22일에는 이틀 연속 10년 만기 금리가 상한폭인 0.5%를 넘어섰다.
수익률 곡선 왜곡이란 국채 금리가 전반적으로 높은 가운데 일본은행이 통제하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만 0.5%에 묶여서 움푹 꺼져 있는 모습을 말한다. 일본은행이 2016년 9월부터 단기금리와 장기금리 두가지를 통제하는 장단기금리조작(YCC)을 실시하는데 따른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국채 수익률 곡선의 왜곡 때문에 기업은 회사채를 발행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2월 회사채 발행액은 '제로(0)' 였다. 기업들이 4분기 결산발표를 마무리하는 2월은 회사채 발행이 증가하는 시기다. 하지만 발행금리의 기준이 되는 국채 금리가 뒤죽박죽이어서 기업들이 자금을 제때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금융완화의 첫번째 부작용은 이처럼 채권시장의 기능을 망가뜨린 것이다. 만기가 다른 국채 금리만 뒤죽박죽인게 아니다. 통조림을 예로 들었지만 만기가 같은 국채, 즉 똑같은 상품의 금리도 제각각이다.
지난 1월말 새로 발행한 10년 만기(2032년 12월 상환) 국채 금리는 0.475%였다. 불과 3개월 앞서 발행한 10년 만기(2032년 9월 상환) 국채 금리는 0.165%에 불과했다. 이보다 3개월 앞선, 즉 2032년 6월이 상환일인 10년 만기 금리는 0.3% 수준으로 두 배 가량 더 높았다.
같은 상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격이 뒤죽박죽인 건 일본은행이 이 시기에 발행된 국채를 거의 100% 사들인 탓이다. 시장에 유통되는 채권의 씨가 마르다보니 수요가 조금만 변해도 가격이 널뛰기하는 것이다. 증권사들의 1일 평균 국채 매매대금이 2015년에 비해 80% 급감한데서도 유통물량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다.

결국 대표적인 글로벌 국채 지수인 'FTSE 세계 채권지수(WGBI)'는 올해부터 일본 10년물 국채를 부분적으로 제외시키기 시작했다. 유통량이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스즈키 마코토 오카산증권 선임 전략가는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기 때문에 일본 국채의 가격 움직임을 대표하는 10년물이 세계 주요 채권지수에서 제외되는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채권지수에서 제외되면 연기금 등 글로벌 큰손의 투자대상에서도 빠지게 된다. 일본 국채 시장에 해외자금의 유입이 끊길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대규모 금융완화 10년의 두번째 부작용은 빈부격차다. 일본은 빈부격차가 매우 적은 나라다. 소득세와 상속·증여세가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수치.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근접할수록 불평등함을 나타낸다.)가 1990~2017년 0.36~0.39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표면적으로는 대규모 금융완화가 일본의 빈부격차를 키웠다고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계층별 자산 변화를 따져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오시오 다카시 히토츠바시대 경제연구소 교수가 가계 구성원인 2인 이상인 세대를 금융자산 수준에 따라 9단계로 나눠 20년 동안의 자산 변화를 비교했다.
2021년 금융자산이 3000만엔을 넘는 부유층이 전체 자산의 59.7%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금융자산에서 부유층이 보유한 자산의 비중이 2002년보다 8.2%포인트 늘었다. 2002~2012년 부유층 보유자산의 증가폭이 2.4%포인트였던 반면 2012~2021년은 5.7%포인트로 대규모 금융완화 이후 부유층에 부가 더 집중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내각부가 일본인 가계를 총자산 보유규모에 따라 10단계로 나눠서 분석한 조사에서도 2019년 기준 최상위층의 평균 자산은 1억3511만엔으로 2014년보다 1030만엔 늘었다. 반면 자산이 가장 적은 계층은 거꾸로 부채가 215만엔 늘었다.

자산이 많은 계층은 유가증권의 보유 비율이 높은 반면 자산이 적은 세대는 예금과 적금 비율이 높다. 대규모 금융완화로 주가가 급등한 이익은 부유층에게 돌아가고 초저금리로 인해 예적금 이자가 제로 수준으로 줄어든 손실은 서민층이 고스란히 떠안은 결과다.
대규모 금융완화의 세번째 부작용은 좀비 기업을 양산하는 것이다. 2021년 도산한 기업(부채 1000만엔 이상)의 숫자는 5980건으로 1964년 이후 57년 만에 가장 적었다. 대규모 금융완화 직전인 2012년만에도 한해 1만1719곳의 기업이 문을 닫았다. 실적이 나빠서 진작에 문을 닫았을 기업들이 대규모 금융완화의 초저금리 덕분에 자금을 조달해 연명한 탓이다.

영업이익으로 부채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을 좀비 기업이라고 부른다. 장사를 해봐야 빚이 늘기만 하니까 문을 닫는게 나은 기업이다. 금융 조사회사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2021년말 기준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일본 기업 147만곳 가운데 12.9%인 18만8000곳이 좀비기업이라고 밝혔다. 일본 기업 10곳 가운데 한 곳 이상이 좀비 기업인 셈이다.
세무법인 A앤드파트너스의 시바누마 나오히코 매니저는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기업이 살아남아 저가 수주로 연명하기 때문에 과도한 가격경쟁이 일어난다"며 "결과적으로 모든 기업들이 성장하기 어렵게 된다"고 아사히신문에 지적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