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국 의존도 심화…친환경 정책에 대중 무역적자 더 악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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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경제정책연구원 비공개 용역보고서중국이 세계 각국에서 사들이는 수입품 중에서 한국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대(對)중국 수입 의존도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이 한국에 수입을 70% 이상 의존하고 있는 품목은 2021년 기준 33개에 불과했지만 한국의 대중 수입 의존도가 70% 이상인 품목은 1000개에 육박했다. 특히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잡은 친환경 정책과 디지털 전환 기조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을 급격히 늘리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향후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대중국 수입의존도 70% 이상 품목 958개
중국은 한국에 70% 의존품목 33개 불과
"친환경·디지털 전환으로 대중 적자 확대"
한국경제신문이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비공개 용역보고서 '한·중 무역구조와 상호의존도 변화 및 시사점'에 따르면 KIEP는 "향후 (한국과 중국 사이) 수입 의존도의 비대칭성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거나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KIEP는 작년 12월 이 용역보고서를 기재부에 제출했다.
對中 수입의존 70% 이상 품목 1000개 육박
KIEP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 양국은 모두 상대 국가에 대한 수입 규모를 확대해왔다. 한국의 대중 수입액은 2016년 870억달러에서 2021년 1386억달러로 5년 사이 516억달러(59.3%) 증가했고, 같은 기간 중국의 대한국 수입액은 1588억달러에서 2136억달러로548억달러(34.5%) 늘었다.문제는 한국의 대중 수입 의존도가 중국의 대한국 수입 의존도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국이 아니더라도 다른 국가로 수입처를 바꾸만 그만인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 외엔 마땅한 대안이 없어 양국 사이에 무역분쟁이 발생하거나 글로벌 공급망 균열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에 수입을 70% 이상 의존하고 있는 품목이 2021년 기준 958개로 집계됐다. 2016년 785개에 비해 173개(22%) 증가한 수치다. 반면 중국이 한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70% 이상인 품목은 2016년과 2021년 모두 33개였다.2021년까지는 그나마 대중 무역수지가 흑자를 유지해 높은 대중 수입 의존도가 큰 문제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중국에서 값싸게 원료를 수입해 한국에서 가공한 제품을 다시 중국에 팔면서 한국은 결과적으로 중국 시장을 활용해 외화를 벌어왔기 때문이다.하지만 작년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작년 5월 대중 무역수지가 11억달러 적자를 기록한 이후 올해 2월까지 10개월 동안 작년 9월을 제외한 9개월간 대중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작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이어진 5개월 연속 대중 무역적자 현상은 한국과 중국이 1992년 수교한 이래 3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그린·디지털 전환으로 대중 수입 증가"
KIEP는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이어지는 핵심 원인으로 친환경 정책을 꼽았다. 글로벌 기후 변화 대응 차원에서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제품 수요가 늘어날수록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핵심 원료를 중국에서 많이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KIEP가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산화리튬·수산화리튬의 대중국 수입액은 지난해 1~10월 기준 25억16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08.8%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이 품목의 대중 수입 의존도는 86.2%에 달했다.리튬이온배터리의 대중국 수입도 작년 1~6월 기준 42억53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2.3% 증가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대중 수입 의존도는 작년 1~6월 94.2%였다.
한국에서의 친환경 정책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늘리는 요인이 됐지만, 중국의 친환경 정책은 한국의 대중 수출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했다.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 가운데 하나인 석유제품 중에서 대중 최대 흑자품목은 '경순환유(LCO)'라는 기름인데, 중국 정부가 탄소배출 저감을 이유로 2021년 하반기부터 LCO에 L당 270원의 소비세를 부과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대중국 LCO 수출액은 지난해 1~10월 기준 2억12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3.8% 급감했다.코로나19로 본격화된 디지털 전환 역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의존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노트북이나 서버와 같은 완제품 수입 증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작년 1~10월 기준 대중 수입 의존도가 74.3%에 달하는 노트북의 경우 수입액이 같은 기간 29억7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8% 증가했다.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도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 및 무역적자 확대를 이끌었다고 KIEP는 분석했다.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네온가스의 경우 지난해 1~10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이 2억2400만 달러였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829.9% 증가한 규모다. 동시에 대중 수입 의존도는 2019년 33%에서 지난해 82%로 치솟았다. 네온가스 주요 공급국인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발생하는 바람에 반도체 업체들이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 낮아진 점도 대중 무역적자가 악화일로를 걷는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화장품의 경우 중국 수입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점유율이 2021년만 해도 20.1%에 달했는데, 작년 1~10월엔 14.7%로 내려앉았다. 반면 일본 화장품의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2021년과 지난해 모두 25.6%로 동일하게 유지해 1위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프랑스산 화장품은 점유율을 21%에서 23.6%로 확대하기도 했다.
"적자품목 적자 확대되고, 흑자품목 흑자 줄 것"
대중 무역적자 현상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KIEP는 "대중국 무역적자 품목의 적자 규모는 향후 확대될 가능성이 크고, 대중 흑자 품목은 향후 흑자 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KIEP는 향후 대책으로 우선 중국과의 공급망 협력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미·중 전략 경쟁의 장기화로 경제적 비용 최소화보다 경제안보를 고려한 적정 비용을 추구하는 추세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공급망 재편 및 관련 리스크가 지속될 전망되는 가운데 우리가 중국에 의존적인 산업이 상대적으로 더욱 많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대중국 수입 공급망 관리 및 중국과의 공급망 안정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그러면서 KIEP는 "한국에 수입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국이 한·중간 공급망 협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유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미·중 갈등으로 인한 민간 품목 등을 제외하고 양국 모두의 공동 관심사이자 미래 지향적인 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 연계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KIEP는 또 "화장품과 같이 중국 내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소비재는 일본·프랑스처럼 브랜드 가치 제고와 뛰어난 품질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고, 디지털 집적회로 반도체 등 중국 수입시장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유지·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