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계기로 반미공조 더 강화한 시진핑-푸틴

美는 "러 철군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비공식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2박 3일 일정으로 러시아를 국빈 방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시 주석이 러시아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시 주석이 제안한 우크라이나전 평화 중재안을 논의했다. 시 주석은 내년 대선을 앞둔 푸틴의 권좌 유지를 공개 지지했다. 양국의 반미 공조가 더욱 깊어지는 가운데 미국은 러시아의 철군 없이는 이번 중-러 정상회담으로 발전적인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3연임' 시진핑 첫 방문지도 러시아

21일 중국 신화통신과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현지시간 오후 3시(한국시간 9시)부터 양국 대표단이 배석한 정상회담을 했다. 두 사람은 '포괄적·전략적 협력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논의한 뒤 국빈만찬을 진행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전날 4시간30분에 걸친 비공식·비공개 회담을 진행했다. 이어 이날도 양국 공조 관련 대화를 이어갔다. 두 사람은 중국 정부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제안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은 12개 항으로 구성된 제안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직접 대화 재개와 휴전, 핵무기 사용 및 핵시설 위협 금지, 미국과 유럽의 대러시아 제재 중단 등을 촉구했다. 각국의 주권과 독립, 영토 완전성 보장, 각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 존중 등 기존 입장도 다시 강조했다. 중국의 제안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철수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서방 국가들은 중국이 러시아의 입장을 두둔한다고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두 사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해 2월 베이징에서 만난 데 이어 9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은 지난 10일 국가주석으로 재선출돼 공식 3연임을 시작한 후 첫 해외 방문지로 러시아를 선택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도착한 시 주석을 "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르며 3연임을 축하했다. 그는 "중국이 지난 수년간 급속히 발전한 데 대해 세계가 주목하고 있고 심지어 러시아도 부러워한다"며 "시 주석의 지도력 하에 중국이 더욱 발전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푸틴을 향해 "당신의 견고하고 강한 영도 하에 러시아의 발전과 진흥이 장족의 진전을 이뤘다"며 "내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러시아 국민이 반드시 당신에게 계속 견고한 지지를 보낼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정상들이 상대국 선거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상대국의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이번 발언은 단순한 덕담이 아닌 '전략적 속내'를 드러낸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베이징 외교가에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시 주석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푸틴 대통령이 실각하고 러시아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정세가 푸틴을 중심으로 안정되고,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야 중국이 최대 현안인 미국과의 전략 경쟁에 집중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 "중러 관계는 정략결혼"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 조정관은 20일(현지시간) 중러 정상회담과 관련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폭격을 중단하고 전쟁 범죄와 만행을 멈추며 군대를 철수하도록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을 압박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평화 중재안과 관련해 "모든 국가의 영토 및 주권 존중이 요점이라면 러시아 군을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철수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비 조정관은 "러시아 군을 우크라이나 영토에 남겨 두는 휴전은 러시아의 불법 점령을 인정하고 러시아가 유리한 시점에 전쟁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대(對)러시아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에 대해선 "우리는 아직 중국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어떤 결정을 내렸다는 징후를 보지 못했다"면서도 "우리는 중국이 그것을 테이블에서 치웠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중러 관계와 관련, "두 나라 모두 전 세계에서 미국의 리더십과 규칙 기반한 세계 질서에 불만을 품고 화를 내는 나라"라며 "특히 중국의 경우 미국의 리더십에 도전하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을 잠재적인 동맹국으로 보고, 푸틴 대통령은 전쟁이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은 상황에서 시 주석을 일종의 생명줄로 본다"면서 "애정이라기보다는 정략결혼"이라고 말했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도 이날 '2022 인권보고서' 공개 기자회견에서 시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에 대해 "러시아의 범죄 행위에 대해 외교적 은닉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