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감귤농가, 키위로 갈아타…제스프리 '韓 영토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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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농가 288곳 합류뉴질랜드 키위협동조합 제스프리에 합류하는 국내 농가가 급증하고 있다. 제주도와 전남에서 300개 가까운 농가가 가입해 4년 만에 50% 증가세를 보였다. 농산물 가격 급등락에다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감귤 한라봉 등의 재배 농가들이 생산부터 판매까지 선진 시스템을 적용하는 제스프리로 갈아타는 추세다.
제스프리 농가 4년 만에 50%↑
수익성 악화…키위 선호 늘어
선진 재배 시스템 엄격 적용
농가 연평균 수익 1억 수준
‘제스프리 농가’ 급증
21일 제스프리의 한국 생산지사인 제스프리프레쉬프로듀스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제스프리 농가는 제주도 267곳, 전남 21곳 등 288곳이다. 지난해 말 264곳에서 석 달도 안 돼 24개 농가가 합류했다.2019년(194개)에 비하면 94개(48.5%)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는 감귤을 생산해왔거나 독립적으로 키위를 재배하던 농가가 많다.제스프리 키위의 국내 재배 면적은 크게 늘고 있다. 현재 재배 면적은 232만㎡로 2019년(119㎡)의 두 배가량(94.9%)으로 확대됐다. 업계 관계자는 “겨울철 대표 과일이던 감귤이 이제는 딸기 키위 망고 등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고 가격 변동성이 커 농가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다”며 “인력난을 견디지 못해 제스프리로 옮긴 경우도 상당수”라고 설명했다.제주도 감귤산업은 매년 위축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감귤 재배 면적은 2021년 1억9998만㎡로 1990년 이후 31년 만에 2억㎡ 밑으로 떨어졌다.
생산·유통·판매까지 시스템화
국내 농가가 제스프리에 잇달아 합류하는 이유는 기존 국내 농업에서 찾기 힘든 장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제스프리는 묘목 식재부터 수확에 이르는 전 과정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키위 당도 15브릭스 이상, 개당 무게 120g의 엄격한 품질 조건을 충족하도록 관리·감독한다.생산뿐 아니라 포장, 유통, 마케팅까지 전 과정을 시스템화했다. 안양순 제스프리프레쉬프로듀스코리아 지사장은 “뉴질랜드에서 키위에 대한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를 하고 있으며 그 기술과 시스템을 국내에 전수하고 있다”며 “국내 농민들이 뉴질랜드를 정기적으로 견학하고, 뉴질랜드에서 기술자를 국내로 파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안정적 수익에 승계 잇따라
처음부터 국내 농가들이 제스프리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제주 서귀포시와 제스프리가 생산 협약을 체결한 이후 조금씩 국내 농가가 합류해 2015년부터 판매를 시작했다.초창기엔 제스프리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농약 잔류 검사에서 탈락해 수확하지 못하자 거세게 반발하는 농가도 있었다. 안 지사장은 “항생제를 금지하고 농약 잔류 검사를 통과하도록 규정하다 보니 처음에는 농가 불만이 많았다”며 “지금은 최상품 키위를 생산하기 위한 시스템을 따라오는 농가가 많아져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고 했다.국내 제스프리 농가의 연 매출은 1만㎡ 당 평균 1억2000만원 가량이다. 평균 재배면적이 8000㎡인 점을 감안하면 평균 기준으로 농가당 연 9700만원 가량의 매출을 거둔다는 뜻이다. 제스프리에 일정 로열티(마케팅, 유통비용 포함)를 지급한 후의 금액이다. 여기서 인건비 등 제반 비용을 빼고 매출의 50%가량을 농가가 소득으로 거둬들인다. “식재 연차와 농가의 노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제스프리의 교육을 따라오면 충분히 안정적인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게 안 지사장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제스프리 농가의 가업 승계 사례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직장에 다니던 오봉훈 씨(29)는 아버지의 제스프리 농장을 물려받기 위해 최근 제주도로 내려왔다. 오씨는 “농업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