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 현대시 120년 만의 역사적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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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시인협회, 상호협력 협약서 서명한국시인협회가 프랑스시인협회와 상호 협력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한국시협은 21일(현지 시간) 파리에 있는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프랑스시인협회와 협약 서명식을 갖고 ‘시와 함께하는 한·불 우정의 밤’ 등 축제를 벌였다. 이는 한국 현대시 120년 역사상 처음으로 진행한 외국 시인협회와의 공식적 교류 행사다.
파리서 ‘시와 함께하는 한·불 우정의 밤’
시인 60여 명 등 100명 모여 낭송 축제
매년 10여 편씩 번역해 교차 게재 약속
이날 서명식에서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은 “한국 최초의 주간지 ‘태서문예신보’에 폴 발레리 등 프랑스 시인들의 시가 소개된 것을 비롯해 우리가 만난 첫 서양 시의 주류는 프랑스 시였다”며 “한국 시를 대표하는 우리 협회와 오랜 전통의 프랑스시인협회가 앞으로 특별한 우정을 쌓으면서 활발하게 교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 샤를 도르주 프랑스시인협회장은 “‘세계 시의 날’(3월 21일)인 오늘 양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두 협회가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국제적인 유대를 넓혀가기로 약속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제 한국 시인들에게 프랑스시인협회의 문은 완전히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최재철 주프랑스 대사는 축사를 통해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많이 암송하고, 한국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포함해 드라마와 웹툰 등 대중문화에도 시적 감성을 입힌 것이 많은데 오늘 양국 언어의 아름다운 교감과 낭송 축제에 동참할 수 있게 돼 참으로 기쁘고 또 감사하다”고 말했다.
협약서에는 양국 시협이 매년 10여 편의 작품을 협회에서 발행하는 문학지나 시 선집에 수록하고 이를 위한 번역 작업 등 모든 영역에서 서로 협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서명식에는 양국 시인협회 회원 60여 명, 최 대사와 박상미 주유네스코 대사 등 국내외 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 시낭송회에서는 한국의 이도훈·김계영 시인이 유치환의 ‘깃발’과 유자효의 ‘경계’, 박목월의 ‘나그네’와 이근배의 ‘살다가 보면’을 낭송했고, 프랑스 연기자와 작가가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와 샤를 보들레르의 ‘인간과 바다’, 장 샤를 도르주의 ‘사막에 대하여’와 미셸 베나르의 ‘파고드는 섬세함’을 번갈아 낭송했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거문고 연주가 이정주 씨는 한국 전통의 선율을 담은 ‘달무리’ 연주로 감동을 선사했고, 프랑스 첼리스트 마리 클로드 방티니는 행사의 시작과 끝을 아름다운 ‘백조’와 ‘멜로디’ 연주로 장식해 큰 박수를 받았다.
22일 오후에는 한국학과가 설치된 파리시테대학교에서 학생과 일반인이 참가하는 낭송·강연이 펼쳐지고, 24일에는 엑스-마르세유대학교에서 관련 행사가 이어진다.
1957년 창립된 한국시인협회는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김남조, 김춘수 시인 등이 회장을 역임한 국내 최초의 장르별 문인단체다. 프랑스시인협회는 노벨 문학상 초대 수상자인 쉴리 프뤼돔 등 3명의 프랑스아카데미 회원이 1902년 창설을 주도했다. 폴 발레리와 장 콕도, 생텍쥐페리 등 세계적인 시인들이 회원으로 활동했다. 파리=고두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