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교살자'···결론보다 과정, 반전보다 메시지 내세운 추리물[영화 리뷰]

추리물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은 대개 비슷하다. 관객이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반전의 연속, 그 결과 밝혀낸 범인의 놀라운 정체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지난 17일 공개된 온라인동영상서비스(SNS)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영화 '보스턴 교살자'는 이 공식에서 크게 벗어난다.

결론보다는 주인공이 사건들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과정, 반전보다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다룬다. 이를 통해 저널리즘의 역할, 경찰의 부조리와 사회 시스템의 문제, 성별에 따른 차별 등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이 작품은 '부스터' '크라운 하이츠' 등을 만든 맷 러스킨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마션' '에이리언: 커버넌트' 등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작에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인공 로레타 역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맡았다.

영화를 지탱하는 가장 큰 동력은 실화의 힘이다. 이 작품은 1960년대 미국 보스턴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 살인 사건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총 13명의 여성이 연이어 살해당해 큰 충격을 안겼다.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만들 때 이 사건들을 참고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영화에서도 해당 살인 사건들이 끝없이 발생하고 혼란이 이어진다. 이 모든 것이 작품 속 모든 사건들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커진다. 이야기는 신문사 기자인 로레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어느 날 발생한 살인 사건을 살펴보다, 이전 두 살인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직접 취재를 하기 시작, 사건의 범인을 본격적으로 추리해 나간다.

하지만 갈수록 진실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한동안 나이 든 여성들을 상대로 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다가, 젊은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등 불규칙적인 패턴이 나타나며 용의자를 특정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로레타는 베테랑 기자인 진(캐리 쿤)과 함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리를 이어간다.
다른 추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더욱 색다르게 다가온다. 추리물의 주인공은 대부분 범인을 쫓는 형사다. 반면 이 작품은 기자들이 직접 발벗고 나서 사건들을 파헤친다. 경찰들이 찾지 못한 단서를 발견하거나, 경찰이 은폐하거나 조작한 일들을 폭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건 이면에 있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부조리를 다루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두 기자가 어떤 억압과 악조건 속에서도 저널리즘의 역할과 사명을 잊지 않고 수행하는 모습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제한적이었던 1960년대의 상황도 정교하게 잘 그려냈다. 영화 초반 로레타는 직접 다양한 사건을 취재하고 싶어하지만, 상사의 지시에 따라 토스터기 리뷰 등을 쓰는 생활부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온다. 집에서도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을 강요받게 된다.

그럼에도 로레타는 흔들림 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끊임없이 해낸다. 나이틀리는 강하고 뚝심 있는 로레타 역을 매끄럽게 소화해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내용만큼이나 어둡고 무겁다. 다른 추리물에 비해 엄청난 반전이 있지도 않고, 전개 속도도 빠르지 않다. 하지만 결론에 다다르면 깨닫게 된다. 영화는 개별 사건보다, 그 사건들 뒤에 있는 큰 사회적 문제와 부조리를 이야기 하고자 했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더 묵직한 여운이 남는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