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께 다음 팬데믹 온다…오랜 방역경험 기록, 대비 도울 것"

한경 인터뷰
정기석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장

방역 완전해제 눈앞이지만
국내 팬데믹 출몰 주기상
'감염병X' 대응력 키울 때

지자체 아직 확진자 수기 작성
방역통합정보시스템 구축 시급
한국 첫 감염병전문병원 건립과
백신·치료제 국산화도 속도 내야
정기석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했다. 정 위원장은 “코로나19 대응 경험을 매뉴얼로 남기기 위해 백서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혁 기자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키운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을 앞두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르면 이달 말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종료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국내에선 지난 20일부터 의료기관을 제외한 모든 시설에서 마스크 의무가 해제됐다. 2020년 이후 3년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미지의 질환’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새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다음 팬데믹인 ‘감염병엑스(X)’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감염병 위기 극복을 위한 전문가 자문기구인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다. 21명의 민간 전문가 기구를 이끌고 있는 정기석 위원장은 “국내 팬데믹 출몰 주기로 보면 2025년께 다음 감염병이 올 수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이 길어져 이보다 늦어질 수 있겠지만 다음 감염병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이제 방역규제는 의료기관 마스크 착용 의무와 확진자 격리만 남았습니다.

“미국도 많은 주에서 의료기관 마스크 착용이 의무입니다. 감염에 취약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죠. 격리 해제는 WHO의 공중보건 비상사태 종료 선언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후 바로 자율로 가거나 1주일인 격리 기간을 5일로 줄인 뒤 자율로 가는 단계적 완화안 중 선택하게 될 겁니다. 오미크론 변이(BA1) 감염자는 아직도 5일 동안 바이러스를 배출합니다. 논문을 찾으면서 적절한 시점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독감처럼 대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제2의 독감이라고 판단하기는 아직 조심스럽습니다. 신종 변이 발생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닙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도 아직은 긴급사용승인 상태입니다. 정식 허가를 받기까지 거쳐야 할 단계가 남았습니다. 올여름은 안정적으로 넘기더라도 가을께 다시 위험이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고위험군을 보호하기 위해 코로나19 치료제 처방률을 높이는 게 중요합니다. 5세 단위로 끊어서 환자를 분석했더니 70세 이상은 무조건 치료제를 처방하는 게 좋다는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가을께 코로나와 독감 백신을 한꺼번에 맞도록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내년엔 두 바이러스를 한 번에 예방할 수 있는 콤보백신이 나올 겁니다. 기초면역이 생겨 대유행 가능성은 높지 않을 텐데요. 그래도 정부와 전문가들은 과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감염병 유행 주기가 짧아지고 있습니다. 다음 감염병을 어떻게 예측하시나요.

“2003년 이후 사스(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의 유행 주기를 보면 다음 감염병은 2025년께 발생할 수 있습니다. 2년 뒤죠. 다만 개인적으론 코로나19 팬데믹이 길어져 그렇게 빠르게 오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유행으로까지 번지려면 다음에도 호흡기 감염병이 될 겁니다. 수인성 감염병은 설사 등으로 옮기기 때문에 멀리 퍼지기 쉽지 않아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선 조류인플루엔자를 후보군으로 꼽았습니다. 다행히 타미플루 후속 약인 조플루자가 조류인플루엔자에 잘 듣습니다. 모기 매개 감염병도 위험할 수 있어요. 모기가 비둘기에게 퍼뜨리고 비둘기가 다시 모기를 감염시킨 뒤 사람에게 퍼집니다. 전국적인 감시 시스템이 중요한 거죠.”▷전문가그룹에서도 준비할 게 많겠습니다.

“메르스 백서처럼 그동안의 방역 경험 등을 문서로 남기는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언제든 펼쳐볼 수 있도록 얇은 책자에 핵심만 담는 게 목표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코로나19 특별대응단은 자연스럽게 해체됩니다. 그 전에 빠르게 기록을 남기는 게 목표입니다.”

▷정부 대응력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것으로 어떤 걸 꼽을 수 있을까요.“방역통합정보시스템이죠. 지금은 확진자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수기로 작성합니다. 서울 중구에서 확진자가 생겨도 그 정보를 종로구에서 알지 못해요. 감염자가 해당 지역으로 이동해도 마찬가지죠. 하루빨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고(故) 이건희 회장 기부금 7000억원을 활용해 구축하고 있는 감염병전문병원도 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의료기관마다, 부처마다 동상이몽이에요. 다음 감염병이 왔을 땐 신속하게 서울 장충체육관 같은 곳을 소개해 병상을 확보하고 해당 시설에 대학병원 등에서 의료진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백신과 치료제 국산화도 과제로 꼽히는데요.

“기업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코로나19 백신에 올인하겠다고 하더군요. 내년께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패했지만 LG화학도 코로나19 초기에 백신 개발에 진정성 있게 접근했어요. 궁극적으로 감염병 백신과 치료제는 국가 전략사업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국익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미래 먹거리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찾아야 하니까요. 반도체, 자동차 등으로 그동안 한국이 먹고살았습니다. 다음 세대는 제약·바이오로 먹고살아야 할 거예요. 국내 백신, 치료제 기술을 한곳에 모으고 전략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사령탑이 필요합니다. 적재적소에 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총괄기구가 있어야 하는 거죠. 이제 보건복지부에서 보건부를 별도 분리하기 위한 여건도 마련됐다고 봅니다.”

▷팬데믹 3년을 돌아보면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2021년 11월입니다. 당시 정부가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어요. 당시 7월에 델타 변이가 유행한 뒤 환자 중증도와 치명률이 모두 높아지던 때였죠. 전문가들은 안 된다고 반대했는데, 병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거리두기를 풀었어요. 그해 12월 앞뒤 5주간 코로나19로 2100명이 숨졌습니다. 그만큼의 환자가 추가로 초과 사망한 거죠. 그렇게 많은 분이 목숨을 잃도록 한 것은 국가의 잘못입니다.”

▷일각에선 처음부터 ‘자연면역’을 중심에 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기억력이 6개월밖에 안 되는 사람들의 얘기예요. 코로나19 유행 초기와 지금은 바이러스 변이가 바뀌었습니다. 당시엔 확진자 4%가 위중증 환자가 되고, 2%가 숨지던 질환이었습니다. 지금은 40분의 1 정도죠. 감염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평생 마스크를 쓰고 진료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초기 코로나19가 유행할 땐 마스크를 안 쓸 수 없었습니다. 누가 환자인지 모르는 데다 치명률이 높았으니까요. 초기부터 방역 대응을 하지 않은 스웨덴 얘기도 많이 합니다. 스웨덴에선 초기에 많은 고령층이 목숨을 잃었어요. 숨질 사람이 다 숨진 뒤 해결됐다는 것은 무책임한 겁니다.”

정기석 위원장은…지카바이러스 확산 막고, 코로나 팬데믹도 예견

“이미 팬데믹(대유행)에 진입했습니다.”

2020년 1월 31일. 한국에 열한 번째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을 때다. 당시 코로나19의 명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유행성 폐렴의 원인 바이러스가 코로나라는 것만 확인됐을 뿐 해당 질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던 때다. 당시 국내 추가 확산 위험에 대한 질문에 정기석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내 유입 11일 만에 3차 감염이 번졌을 정도로 호흡기 감염병 확산 속도가 빠릅니다. 중국에서 매일 1만 명씩 한국으로 입국하고 있어요. 중국발 입국을 제한하는 방안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그의 평가와 전망은 현실이 됐다. 40여 일 뒤인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대유행을 공식 선언했다. 미국 유럽 등에서도 확진자가 급증하면서다.

미래를 내다본 그의 통찰력은 오랜 현장 경험과 과학적 데이터에서 나왔다. 서울대 의대를 나와 1999년부터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국내에 감염병이 번질 때마다 ‘구원투수’로 나섰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때는 ‘바이러스성 폐렴’ 치료법을 마련하는 폐렴 치료지침 제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5년 여름 국내에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번지고 그해 겨울 유행이 종식된 뒤엔 바로 질병관리본부장을 맡았다. 방역 수장 자리에 오른 뒤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차단하는 소방수 역할을 했다.

코로나19가 번진 3년 내내 언론과 쉼 없이 소통하며 방역 관련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지난해 8월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장에 올랐다.

이지현 기자■ 정기석 위원장 약력

△1958년 경북 대구 출생
△1983년 서울대 의대 졸업
△1999년~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2016년 질병관리본부 본부장
△2018년 한림대의료원장
△2022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코로나19 특별대응단 단장 겸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