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비자금 있다' 손자폭로 나온 전두환 미납추징금, 환수 가능할까

손자 전우원씨 "비자금으로 사업체 운영하고 호화생활 해왔다" 폭탄선언
전씨 사망 뒤 대법원 "추징 집행 끝났다" 판결…미납추징금 867억원 남아
국회, 범인 사망때 상속재산에 추징하는 법 개정 추진…'소급입법' 논란 해소가 과제
전두환 전(前)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의 폭로로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끝까지 추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전우원씨는 지난 13일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자기 가족과 친척들이 비자금으로 사업체를 운영하고 호화생활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우원씨가 말한 '검은돈'은 정황상 전씨의 비자금과 관련될 가능성이 커 전씨의 미납 추징금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전씨는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과 뇌물수수 등의 혐의가 인정돼 무기징역과 추징금 2천205억원의 형이 확정됐다. 전씨는 그러나 추징금 납부에 미온적이었고, 2003년엔 재산을 공개하라는 법원 명령에 현금성 자산이 '29만1천원'에 불과하다고 밝혀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필부의 상식을 깰 만큼 미미한 이 액수는 두고두고 전씨를 조롱하는 소재로 인용됐다.

결국 국회에서 관련 법을 개정하고 검찰은 전담팀까지 꾸려 전씨의 미납 추징금 집행에 나섰지만 2021년 11월 전씨가 유명을 달리함에 따라 추징금 집행은 미완(未完)으로 끝났다. 이 미납 추징금이 세간에서 잊힐 즈음에 손자의 '검은돈' 폭로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셈이다.

검찰에 따르면 현재까지 추징된 금액은 약 1천283억원이고, 922억원이 남았다.

환수율은 58%다. 관련 법적 절차가 마무리돼 조만간 받을 수 있는 금액 55억원까지 감안해도 미납 추징금은 867억원이나 된다.

앞으로 이 미납 추징금을 환수할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까?
◇ 시민사회·국회·검찰 합작으로 전씨 압박하자 "미납 추징금 모두 내겠다" 선언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며 버텼던 전씨의 추징금 집행에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시민사회와 국회, 정부가 합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추징금 시효 만료일인 2013년 10월이 다가옴에 따라 그해 시민사회에선 전씨의 숨겨진 재산 찾기에 나섰고, 검찰도 전담팀을 꾸려 추징금 환수에 박차를 가했다.

국회도 이에 호응, '전두환 추징법'으로 불리는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이하 공무원범죄몰수법) 개정안을 같은 해 6월 가결했다.

개정된 법은 공무원의 불법재산에 대한 몰수·추징 시효를 기존의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 검찰이 추징금을 집행할 수 시간을 넉넉하게 부여했다.

또한 범인 외 제3자가 범죄 정황을 알면서도 취득한 불법재산과 그로부터 유래한 재산도 제3자로부터 추징할 수 있게 했다.

전씨가 가족과 일가들에게 빼돌린 비자금을 추징하기 위한 조처였다.

법 개정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생기자 검찰은 본격적으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전씨 일가와 친인척의 주거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전씨 측 인사들을 하나둘 불러 조사를 벌였다.

급기야 전씨의 차남 전재용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까지 했다.

그러자 전씨 일가는 그해 9월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현관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미납 추징금을 모두 납부하겠다고 공언했다.

전씨 일가가 자진 납부를 약속하면서 검찰이 확보한 전씨 일가의 재산은 연희동 자택을 비롯한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 모두 1천703억원(당시 추정가 기준) 상당이었다.

당시 전씨의 미납 추징금 1천672억원을 웃도는 액수였다.

미납 추징금 사태는 이런 전씨 일가의 '백기투항'으로 종결되는 듯했다.
◇ 전씨 측 각종 소송으로 추징금 집행에 저항…2021년 전씨 사망으로 '미완의 종결'
하지만 이후 전씨 일가가 '반격'에 나서며 추징금 집행은 험로에 접어든다.

전씨 일가는 연희동 자택을 공매로 넘긴 것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이런 처분을 가능하게 했던 공무원범죄몰수법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신청했다.

재국씨가 설립한 출판사인 시공사처럼 전씨 일가가 자진납부하기로 한 재산과 관련한 이해 당사자들도 검찰의 추징금 집행에 순순히 응하지 않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송전도 이어졌다.

전씨 일가는 이런 법적 다툼에서 일부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예컨대 본채와 정원, 별채 등으로 구성된 연희동 자택 중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 명의인 본채, 비서관 명의인 정원은 몰수 가능한 불법재산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전씨 일가의 반발과 연이은 소송으로 추징금 환수율은 전씨 일가가 자진 납부를 공언한 2013년 9월 24.2%에서 그해 말 36.1%, 2014년 말 49.3%로 껑충 올랐다가 2015년 말 51.4%로 환수율 상승이 둔화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기준 환수율은 58.2%로, 7년 사이 7%포인트가량 오르는 데 그친 셈이다.

2021년 11월 전씨의 사망으로 추징금 집행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형사소송법상 추징은 당사자가 사망하면 상속 재산을 대상으로 집행할 수는 없어 법무부령인 '재산형 등에 관한 검찰 집행사무규칙'에선 납부 의무자가 사망하면 추징금을 '집행불능'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제3자 명의로 된 재산에 대해 계속 집행하려고 했다.

검찰이 의율한 법률인 공무원범죄몰수법엔 당사자 사망 시에 대한 조항이 없어 법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있어서다.

당사자는 숨졌더라도 제3자는 살아 있다면 제3자를 대상으로 한 추징은 가능하다고 볼 여지가 있었다.

대법원의 판단은 이와 달랐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전씨뿐 아니라 전씨 일가에 대한 추징의 집행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공무원범죄몰수법엔 이 법의 대상이 되는 특정공무원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사망한 경우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어 형사소송법 등에서 규정한 일반 원칙에 따라 숨진 범인은 물론 제3자에 대한 추징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대법원 판결로 전씨 일가를 상대로 한 추징금 집행은 종결됐다.

여기까지가 우원씨의 폭로가 있기 전의 상황이다.
◇ 국회 발의된 '전두환 추징 3법', 미납추징금 환수의 지렛대 될 수도
추징금 집행의 재개 가능성이 완전히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이 2020년 6월 발의한 이른바 '전두환 추징 3법'이 그 불씨가 될 수 있다.

추징 3법은 공무원범죄몰수법·형사소송법·형법 등 3개 법률에 대한 개정안을 말한다.

공무원범죄몰수법 개정안은 제3자가 범인으로부터 불법재산 등을 상속이나 증여, 무상으로 취득한 경우에도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했고,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상속재산에 대해서 추징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형법 개정안은 '독립몰수제'의 도입이 주요 내용인데, 독립몰수제란 범인이 사망해 검찰이 공소할 수 없는 경우에도 요건을 갖춘다면 법원이 범죄행위에 제공됐거나 그 대가로 취득한 물건 등의 몰수만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추징 3법은 일종의 '투트랙' 전략이다.

범인이 사망했을 경우도 상속재산에 추징할 수 있게 하거나(공무원범죄몰수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아예 별도의 제도인 독립몰수제를 도입하자(형법 개정안)는 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만 입법화돼도 추징을 재개할 여지가 생긴다.
◇ '추징 3법', 소급입법 논란 해소가 법제화의 관건
걸림돌은 헌법이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소급입법을 우회할 수 있을 것이냐다.

헌법 제13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행위로 소추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고, 형법 제1조에는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따른다"고 돼 있다.

다만 모든 소급입법이 원천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법리적으로 보면 소급입법은 이미 완료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입법(진정 소급입법)과 진행 중인 사실관계·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입법(부진정 소급입법)으로 나뉜다.

이 중 부진정 소급입법은 '전두환 추징법'으로 불린 개정 공무원범죄몰수법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은 몰수·추징의 시효를 늘리고 그 대상을 확대하면서 '개정 규정은 이 법 시행 당시 몰수 또는 추징의 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에도 적용한다'는 부칙을 덧붙였다.

통상 개정법은 해당 법이 시행된 이후 발생한 사실관계나 법률관계에 적용되는데 전두환 추징법은 전씨 일가를 겨냥해 법 시행 이전에도 적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행위 시 법률'을 근거로 삼도록 한 현행법 체계에 어긋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이런 부진정 소급입법, 즉 아직 진행 중인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소급입법은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전씨 일가가 전두환 추징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을 때 제3자 재산추징 관련 조항을 문제 삼아 소급입법을 주장하지 않은 것도 이런 점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이미 끝난 일까지 거슬러 올라가 법을 적용하는 진정 소급입법은 원칙적으로 불허된다.

다만 헌정사를 통해 드물지만 예외적으로 진정 소급입법도 허용돼 왔다.

그 대표 사례가 일본 강점기 시절 자행된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1948년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이다.

이 법은 명백한 소급입법이기에 제헌국회는 논란을 피하고자 제헌헌법 부칙에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서기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명기했다.

헌재도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 진정 소급입법도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판례를 만들어왔다.

특히 1995년 12월에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5·18 민주화운동법)의 소급입법 논란과 관련해 그 특단의 사정을 "기존의 법을 변경해야 할 공익적 필요는 심히 중대한 반면에 그 법적 지위에 대한 개인의 신뢰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소급입법으로 '현행 법 체계가 보장하는 내 법적 권리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신뢰가 손상되더라도 바꿔야 할 공익적 필요성이 매우 크다면 소급입법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거나,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워 보호할 만한 (법에 대한) 신뢰의 이익이 적은 경우 ▲ 소급입법에 의한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아주 경미한 경우 ▲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경우 등을 그런 예외적 사례로 열거했다.

문제가 된 5·18 민주화운동법의 소급입법 조항에 대해선 공익적 필요가 "매우 중대하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우리 헌정사에 공소시효에 관한 진정 소급입법을 단 한 번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면 바로 이러한 경우"라고까지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전씨가 내란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에 2천205억원의 추징을 선고받게 된 계기가 바로 이 5·18 민주화운동법이었다.

현재로선 전씨의 사망으로 추징 집행 등 법률적 관계가 종료된 상황이기에 논의 중인 추징 3법이 법제화되더라도 이를 전씨 일가에 적용하면 진정 소급 입법이 된다. 결국 이런 사정을 두루 감안하면 추징 3법을 포함해 입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즉 그 공익적 필요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어떻게 논리를 세우느냐에 따라 소급입법 논란을 피하면서도 미납 추징금을 환수할 수 있는 법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