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72시간 만에 51조 증발…코인 폭락 '테라' 권도형 체포 [루나 사태 다시보기]
입력
수정
지난해 암호화폐 루나·테라USD 폭락 사태를 유발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유럽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권씨는 루나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작년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을 거치며 지금까지 해외 도피 중이었다.
24일 경찰청 인터폴구제공조과는 전날 몬테네그로 당국에 의해 검거된 인물의 지문 정보를 확인한 결과 권씨의 지문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날 몬테네그로 수사 당국은 권씨로 추정되는 인물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권씨는 두바이행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여권 심사를 받던 중 위조된 코스타리카 여권을 사용하려다 덜미가 잡혔다.
테라폼랩스 초기 창립 멤버이자 차이코퍼레이션 전 대표인 한창준씨도 권씨와 함께 있다가 체포됐다.
루나 시세 조종, 허위 정보 제공 등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권씨를 수사해온 검찰은 신병 확보를 위해 몬테네그로 당국과 송환 절차를 협의할 예정이다. 권씨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뉴욕 검찰에 의해서도 이미 사기와 시세 조작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테라USD는 1달러와 가격이 같게 유지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 코인'이었다. 이름 그대로 미국 달러와 1대1로 가치가 연동돼야 한다. 루나는 이 테라의 가치를 고정시키기 위해 개발된 코인이다.
일반적인 스테이블코인은 현금과 국채 등 안전한 유동자산을 담보로 발행된다. 1코인을 발행할 때마다 발행사가 진짜 1달러를 사서 적립하는 식이다. 설령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1달러를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투자자들은 미리 마련된 준비금을 통해 자신의 투자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런데 테라는 가치 안정화를 위해 유동자산 담보물을 구매하는 대신 또 다른 암호화폐인 루나를 활용했다. 투자자는 테라 1개를 팔면 1달러어치 루나를 받을 수 있었다. 테라폼랩스는 실제 달러를 사서 적립하지 않고 이른바 알고리즘 방식으로 프로그래밍을 통해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테라 보유자는 테라 가격이 일시적으로 1달러 밑으로 떨어져 0.9달러가 되면 테라폼랩스에 테라를 팔아 1달러어치 루나를 받아갈 수 있다. 1테라당 0.1달러 차익을 벌 수 있는 셈이다. 그러면 투자자들이 테라를 사기 위해 몰려들어 수요가 증가하니 테라 가격이 다시 올라가 1달러에 맞춰진다는 논리다.
테라폼랩스는 테라와 루나를 이용한 디파이(탈중앙화금융) 서비스 '앵커 프로토콜'도 운영했다. 투자자가 테라폼랩스에 루나를 맡기면 최고 연 20%의 이자를 테라로 지급하는 파격적인 상품이었다. 반대로 테라를 빌릴 때 대출 이자는 연 12.4%였다. 높은 수익률을 보고 투자자들이 루나를 대거 사들이면서 루나의 가치가 뛰었고, 테라의 규모도 급성장했다. 2021년 5월 50억달러 정도였던 앵커 프로토콜 적립금 규모는 작년 5월 160억달러까지 불어났다. 루나 테라 폭락이 시작됐을 땐 앵커 프로토콜에 맡겨진 테라가 전체 테라 발행물량의 60%를 넘어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폰지사기'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별도 지불준비금 없이 자체 발행한 루나를 통해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대출 금리보다 예금 금리가 더 높은 앵커 프로토콜의 역마진 구조도 이런 비판을 키웠다.
평소라면 차익 거래 메커니즘이 작동해 가치가 회복돼야 했지만, 코인 투자 심리가 싸늘해지고 테라·루나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테라 가격을 유지하려면 루나를 추가 발행해 더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발행 속도가 매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공급이 늘어난 루나의 가치도 폭락하기 시작했다. 루나를 찍어내는 것만으로 더 이상 테라의 가치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테라와 루나가 동반 추락하는 악순환이 현실화됐다.
앵커 프로토콜에 지나치게 많은 물량의 코인이 잠겨 있었던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테라 가치가 폭락하는 것을 본 투자자들이 앵커 프로토콜에 맡긴 루나를 서둘러 빼내 투매하면서 루나 가치 폭락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시총 51조원 규모의 암호화폐가 증발하는 데에는 단 72시간이 걸렸다. 주요 암호화폐거래소들은 잇달아 루나를 상장 폐지했다. 안 그래도 투자 심리가 식어가던 암호화폐 시장은 루나 사태를 계기로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루나·테라 가격 폭락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12일엔 하루 만에 세계 코인 시총이 257조원 넘게 증발했다. 이후 루나·테라에 투자했거나 그 여파에 휘말린 코인 대출 업체, 거래소 등이 줄줄이 파산했다. 암호화폐 헤지펀드 스리애로우스캐피털(3AC)과 셀시우스, 보이저 디지털, 블록파이, FTX 등의 파산도 루나 사태의 여파였다.
새로 발행된 테라와 루나도 상장 2주 만에 가격이 10분의 1 가까이 폭락하면서 실패했다. 시장에선 상장 전부터 루나2가 고래들의 손실 만회를 위해 만들어진 것뿐이란 비판이 이미 많았다.
국내 투자자들은 권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잇따라 고소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테라폼랩스의 투자자 보호 관련 법령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 검찰은 테라폼랩스 전·현직 임원들을 출국 금지하고 관련 증거를 압수 수색하는 등 집중 수사를 벌였지만 수개월 동안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권씨를 비롯한 핵심 관계자들은 루나 사태가 벌어지기 한 달 전에 이미 해외로 출국한 상태였다. 권씨는 SNS 등을 통해 "해외 도주가 아니다" "숨길 게 없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수사에는 응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4월부터 싱가포르에 머물다 그 해 9월 두바이를 거쳐 세르비아로 도피했다가 이번에 붙잡혔다.
빈난새/박진우 기자 binthere@hankyung.com
24일 경찰청 인터폴구제공조과는 전날 몬테네그로 당국에 의해 검거된 인물의 지문 정보를 확인한 결과 권씨의 지문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날 몬테네그로 수사 당국은 권씨로 추정되는 인물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권씨는 두바이행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여권 심사를 받던 중 위조된 코스타리카 여권을 사용하려다 덜미가 잡혔다.
테라폼랩스 초기 창립 멤버이자 차이코퍼레이션 전 대표인 한창준씨도 권씨와 함께 있다가 체포됐다.
루나 시세 조종, 허위 정보 제공 등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권씨를 수사해온 검찰은 신병 확보를 위해 몬테네그로 당국과 송환 절차를 협의할 예정이다. 권씨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뉴욕 검찰에 의해서도 이미 사기와 시세 조작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한때 글로벌 8위 루나·테라, 어떤 코인이었나
권씨는 한때 글로벌 암호화폐 시가총액 8위까지 올랐다가 72시간 만에 99.99% 폭락해 세계 코인 시장에 충격을 준 루나와 테라USD를 발행한 테라폼랩스의 공동창업자다. 시가총액이 51조원에 달했던 두 코인은 지난해 5월 한 순간에 가격이 폭락하면서 사흘 만에 증발, 전 세계 코인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테라USD는 1달러와 가격이 같게 유지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 코인'이었다. 이름 그대로 미국 달러와 1대1로 가치가 연동돼야 한다. 루나는 이 테라의 가치를 고정시키기 위해 개발된 코인이다.
일반적인 스테이블코인은 현금과 국채 등 안전한 유동자산을 담보로 발행된다. 1코인을 발행할 때마다 발행사가 진짜 1달러를 사서 적립하는 식이다. 설령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1달러를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투자자들은 미리 마련된 준비금을 통해 자신의 투자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런데 테라는 가치 안정화를 위해 유동자산 담보물을 구매하는 대신 또 다른 암호화폐인 루나를 활용했다. 투자자는 테라 1개를 팔면 1달러어치 루나를 받을 수 있었다. 테라폼랩스는 실제 달러를 사서 적립하지 않고 이른바 알고리즘 방식으로 프로그래밍을 통해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테라 보유자는 테라 가격이 일시적으로 1달러 밑으로 떨어져 0.9달러가 되면 테라폼랩스에 테라를 팔아 1달러어치 루나를 받아갈 수 있다. 1테라당 0.1달러 차익을 벌 수 있는 셈이다. 그러면 투자자들이 테라를 사기 위해 몰려들어 수요가 증가하니 테라 가격이 다시 올라가 1달러에 맞춰진다는 논리다.
테라폼랩스는 테라와 루나를 이용한 디파이(탈중앙화금융) 서비스 '앵커 프로토콜'도 운영했다. 투자자가 테라폼랩스에 루나를 맡기면 최고 연 20%의 이자를 테라로 지급하는 파격적인 상품이었다. 반대로 테라를 빌릴 때 대출 이자는 연 12.4%였다. 높은 수익률을 보고 투자자들이 루나를 대거 사들이면서 루나의 가치가 뛰었고, 테라의 규모도 급성장했다. 2021년 5월 50억달러 정도였던 앵커 프로토콜 적립금 규모는 작년 5월 160억달러까지 불어났다. 루나 테라 폭락이 시작됐을 땐 앵커 프로토콜에 맡겨진 테라가 전체 테라 발행물량의 60%를 넘어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폰지사기'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별도 지불준비금 없이 자체 발행한 루나를 통해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대출 금리보다 예금 금리가 더 높은 앵커 프로토콜의 역마진 구조도 이런 비판을 키웠다.
시총 51조원 사라지는 데 단 72시간
결국 지난해 5월 암호화폐 투자 심리가 악화하고, 코인시장의 한 큰손이 8500만달러어치 테라를 한 번에 팔아치우면서 테라와 루나가 동반 하락하는 '죽음의 소용돌이'가 시작됐다. 대량 매도로 일시적으로 0.98달러로 떨어졌던 테라 가격이 1달러를 회복하지 못하고 폭락하기 시작한 것이다.평소라면 차익 거래 메커니즘이 작동해 가치가 회복돼야 했지만, 코인 투자 심리가 싸늘해지고 테라·루나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테라 가격을 유지하려면 루나를 추가 발행해 더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발행 속도가 매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공급이 늘어난 루나의 가치도 폭락하기 시작했다. 루나를 찍어내는 것만으로 더 이상 테라의 가치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테라와 루나가 동반 추락하는 악순환이 현실화됐다.
앵커 프로토콜에 지나치게 많은 물량의 코인이 잠겨 있었던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테라 가치가 폭락하는 것을 본 투자자들이 앵커 프로토콜에 맡긴 루나를 서둘러 빼내 투매하면서 루나 가치 폭락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시총 51조원 규모의 암호화폐가 증발하는 데에는 단 72시간이 걸렸다. 주요 암호화폐거래소들은 잇달아 루나를 상장 폐지했다. 안 그래도 투자 심리가 식어가던 암호화폐 시장은 루나 사태를 계기로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루나·테라 가격 폭락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12일엔 하루 만에 세계 코인 시총이 257조원 넘게 증발했다. 이후 루나·테라에 투자했거나 그 여파에 휘말린 코인 대출 업체, 거래소 등이 줄줄이 파산했다. 암호화폐 헤지펀드 스리애로우스캐피털(3AC)과 셀시우스, 보이저 디지털, 블록파이, FTX 등의 파산도 루나 사태의 여파였다.
루나 폭락 전부터 '해외도주' 권씨, 드디어 체포
권씨는 이후에도 '사기가 아닌 실패'라며 책임을 회피해 전 세계 투자자들의 분노를 샀다. 오히려 "새로운 블록체인을 만들어 테라 생태계를 부활시키겠다"며 '테라 2.0'이라는 이름으로 새 코인 발행을 선언했다. 개인 투자자 92%는 반대했지만 테라폼랩스의 초기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소수가 찬성했기 때문이다. 투표는 루나 보유량이 많으면 더 많은 표가 반영되는 구조로 진행됐다.새로 발행된 테라와 루나도 상장 2주 만에 가격이 10분의 1 가까이 폭락하면서 실패했다. 시장에선 상장 전부터 루나2가 고래들의 손실 만회를 위해 만들어진 것뿐이란 비판이 이미 많았다.
국내 투자자들은 권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잇따라 고소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테라폼랩스의 투자자 보호 관련 법령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 검찰은 테라폼랩스 전·현직 임원들을 출국 금지하고 관련 증거를 압수 수색하는 등 집중 수사를 벌였지만 수개월 동안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권씨를 비롯한 핵심 관계자들은 루나 사태가 벌어지기 한 달 전에 이미 해외로 출국한 상태였다. 권씨는 SNS 등을 통해 "해외 도주가 아니다" "숨길 게 없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수사에는 응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4월부터 싱가포르에 머물다 그 해 9월 두바이를 거쳐 세르비아로 도피했다가 이번에 붙잡혔다.
빈난새/박진우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