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시장 원리'로 지구 살리는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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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올해 하반기 국내 최초의 민간 ‘탄소배출권 거래소’가 생깁니다.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가 ‘자발적 탄소시장(VCM·Voluntary Carbon Market)’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기업들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면(탄소 저감) 이곳에서는 그 성과를 탄소배출권(탄소 크레디트)으로 인증해주고, 주식처럼 거래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전기를 덜 쓰는 반도체를 개발하면 그 반도체의 탄소 저감 성과에 대해 탄소배출권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산림을 조성하거나 보호하는 활동도 탄소배출권으로 인정받게 됩니다.탄소배출권을 사고파는 거래소는 전 세계에 있는데 각국 정부가 운영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2015년 한국거래소를 탄소배출권 거래소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민간이 주도하는 VCM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죠.

탄소배출권 거래는 유럽에서 가장 활발합니다. 지난달 유럽연합(EU) 탄소배출권 거래소에서 탄소배출권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t당 100유로를 돌파했습니다. 탄소배출권 가격은 지난 3년간 다섯 배 올랐습니다. 탄소배출권 수요가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입니다. 1년 뒤엔 150유로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그동안 어떻게 진행돼왔는지 알아보고,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의 ‘시장 원리’를 이해해봅시다.

국제사회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교토의정서와 파리협정으로 해결하고 있어요

게티이미지뱅크
온실가스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거리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원래 온실가스는 지구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역할을 합니다. 바로 온실효과인데요.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받습니다. 온실가스는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가 지구 표면에 반사된 뒤 다시 우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붙잡습니다. 온실의 유리처럼 작용하는 것이죠. 이 덕분에 지구 표면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지구와 달리 온실가스 같은 대기가 없는 달의 경우, 표면 온도가 태양이 비추는 쪽은 섭씨 100도가 넘고, 반대쪽은 영하 200도까지 떨어집니다.

이렇게 고마운 온실가스가 왜 골칫거리가 됐을까요. 석탄, 석유 같은 화석연료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양이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이산화탄소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로 온실의 유리가 두꺼워져 온실효과가 강해졌고, 지구의 평균 온도가 상승하는 지구 온난화 현상이 생긴 것이죠.교토의정서

지구 온난화를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북극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많은 생물 종이 멸종위기를 맞게 됩니다. 국제사회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범지구적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합니다. 이 협약에 따라 2005년 발효된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들이 5년간(2008~2012년)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평균 5.2% 감축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장 원리를 이용한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를 도입했죠. 교토의정서에 따라 선진국들은 각자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이 정해졌습니다. 이를 ‘배출할당량’이라고 합니다. 한 국가가 온실가스를 자국의 배출할당량보다 적게 배출하면 그 나라엔 ‘잉여 배출권’이 생깁니다. 그것을 배출할당량보다 많이 배출한 다른 국가에 팔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소배출권이 거래됩니다.교토의정서는 공동이행제도와 청정개발체제도 도입했습니다. 공동이행제도는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선진국들이 공동으로 온실가스 감축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감축량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청정개발체제는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 프로젝트에 투자해 그 프로젝트가 만들어낸 감축량을 자국의 감축량으로 인정받는 제도입니다.

파리협정

국제사회는 교토의정서에 이어 2015년 파리협정을 채택합니다. 선진국만 참여한 교토의정서와 달리 파리협정은 ‘모든 국가’가 자발적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5년 단위로 제출하게 했습니다. 각국이 스스로 결정한 이 목표를 ‘국가별 기여 방안(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이라고 부릅니다.

2016년 파리협정이 발효되자 세계 각국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2050 탄소중립’을 경쟁적으로 선언합니다. 우리나라도 2020년 10월 탄소중립 선언하죠.

각국은 자국 NDC에 따라 탄소배출권을 자국 기업에 할당합니다. 탄소배출량 목표는 국제사회와 각국 정부가 정할 수 있지만, 그 목표를 위해 배출량을 실제로 줄여야 하는 당사자는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무료로 나눠주는 무상할당과, 돈을 받고 나눠주는 유상할당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6년 NDC를 제출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상할당을 했고, 이후 기간에 따라 유상할당 비중을 3%(2018~2020년)와 10%(2021~2025년)로 높였습니다.

기업은 자사가 확보한 탄소배출권보다 많은 양이 필요할 경우 ‘규제시장’인 탄소배출권 거래소에서 돈을 주고 부족한 탄소배출권을 사야 합니다.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탄소 저감 성과를 탄소배출권(탄소 크레디트)으로 인증받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 방법은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하반기 만들기로 한 ‘자발적 탄소시장(VCM)’에서 가능합니다.

NIE 포인트

1. 온실가스와 지구 온난화의 관계를 설명해보자.

2. 교토의정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보자.

3. 자발적 탄소시장의 역할을 생각해보자.

온실가스 배출량 줄이는 데 탄소세보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선호되는 이유는?

게티이미지뱅크
여러분이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게 하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어떤 방법이 떠오르나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이 일정한 배출량을 넘지 못하도록 법적 혹은 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는 배출량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사용하도록 강제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직접 규제’라고 부릅니다. 정부가 기준을 정해 기업들이 그 기준을 지키도록 ‘명령하고 통제하는’ 방식이죠.

이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방식이 매우 흔하거든요. 그러나 이 방식엔 큰 단점이 있습니다. 규제를 따라야 하는 쪽(기업)이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혹은 벌금이나 처벌이 무서워서 그 규제를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이보다 더 좋은 방식은 그 규제가 이루려는 목표(온실가스 배출량 줄이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를 ‘경제적 유인제도’라고 합니다. 경제적 유인은 다른 말로 인센티브입니다.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그 선택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죠.

예를 들어, 주말에 쉬고 싶은데 엄마가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하는 것(직접 규제)과, 놀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공부를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고 그 보상으로 새 휴대폰을 갖게 되는 것(경제적 유인제도)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

국제사회는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적 유인제도를 고안했습니다. 바로 ‘탄소가격제’입니다. 탄소가격제는 온실가스에 가격을 매기는(온실가스를 화폐가치로 측정하는) 제도입니다. 국제기구가 정한 기준에 따라 다양한 온실가스의 양을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양으로 계산한 뒤 가격을 매깁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모두가 인정하는 가격이 정해지면, 그것을 사고파는 거래가 가능해집니다. 가격은 ‘시장 원리’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온실가스에 가격이 매겨지자 기업들은 온실가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에너지, 그러니까 풍력, 수력,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도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경제적 유인이 기업들이 각자의 사정에 맞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여러 가지 방법을 찾게 만든 것이죠.

탄소가격제로 탄소세와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생겨났습니다. 탄소세는 일종의 피구세(Pigouvian tax)입니다. 피구세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해결하는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어떤 경제주체(기업)의 행위(온실가스 배출)가 다른 경제주체들에게 부정적 영향(지구 온난화)을 미치는데 그것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상황이 부정적 외부효과이고, 피구세는 세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죠.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우세

우리나라는 2015년 탄소배출권 거래를 시작했지만 탄소세는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탄소세보다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더 우세한 상황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탄소세는 정부가 세금을 정하기 때문에 세금을 걷는 입장에선 편리합니다. 하지만 기업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비용과 더불어 세금 부담이 커지고 그로 인해 생산활동이 위축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탄소세를 도입하려 할 때는 ‘조세저항’을 필수적으로 고려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는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기업이 ‘잉여 배출권’을 팔아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자발적으로 줄이게 만드는 인센티브가 강한 것이죠.

마지막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탄소 관세’에 대응하기 좋다는 점입니다. 유럽연합(EU)은 올해 10월부터 유럽에 제품을 수출하려는 국가와 EU의 탄소배출권 가격을 비교해 부족한 금액만큼 관세를 물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NIE 포인트

1. 직접 규제와 경제적 유인제도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2. 탄소가격제를 설명해보자.3.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해 조사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