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빨라진 금융…은행 망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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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런어느 미국 은행의 붕괴가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 16위 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지난 10일 돈을 빼가려는 예금자들의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이틀 뒤인 12일에는 또 다른 중소 은행인 시그니처은행이 지급 불능 상태에 몰려 폐쇄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나서 “예금 전액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시장의 불안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금융시장은 촘촘히 연결돼 있어 한쪽이 위기에 빠지면 다른 곳으로 전이되기 쉽다. SVB 파산의 불똥은 안 그래도 경영난에 빠져 있던 스위스의 대형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로도 튀었다. 스위스 정부의 중재로 경쟁사 UBS가 CS를 인수하면서 급한 불을 일단 껐다.
40년 된 美 은행, 망하는 데 단 36시간
‘OO은행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소문이 돌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곳에 돈을 맡긴 예금주들이 당장 돈을 찾으러 달려갈 것이다. 은행에 예금 인출 요구가 폭주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뱅크런(bank run)이라 한다. 뱅크런이 덮친 은행은 정상적인 영업 활동이 막혀 경영난이 가중되는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SVB의 몰락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과거보다 빠른 ‘빛의 속도’로 뱅크런이 나타난 점에 주목하고 있다. 1983년 문을 연 SVB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자신만의 특화된 영역을 확보한 은행으로 자리잡기까지 40년이 걸렸지만, 유동성 위기설이 돌기 시작해 망하기까지는 3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언제 어디서든 비대면 거래가 가능해진 금융 환경이 SVB의 초고속 붕괴에 일조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파산 하루 전인 9일, SVB는 증권 매각으로 18억달러 손실을 봤다고 발표했다. 스타트업 임직원이 많이 쓰는 업무용 메신저 ‘슬랙’을 타고 이 소식이 빠르게 퍼지면서 뱅크런의 도화선이 됐다. 이날 SVB 예금주들이 인출을 시도한 금액은 420억달러(약 55조원)에 달했다. 보험 스타트업 커버리지캣의 창업자 맥스 조는 “공항에서 내려 버스에 올랐을 때 동료들이 모두 미친 듯이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뱅크런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비대면 금융 발달한 한국, 남 얘기 아냐”
금융혁신의 원동력인 모바일이 상황에 따라서는 금융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터넷·모바일뱅킹이 발달한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비대면 거래 비중은 2015년 28.8%에서 지난해 51.2%로 높아졌다.주요국 정부는 은행이 망하더라도 일정 금액은 나라가 지급을 보장하는 예금자보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국내 예금자보호 한도는 금융회사마다 1인당 5000만원이다. 다만 2001년 이후 늘지 않고 있는 이 한도가 너무 적다는 비판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