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팬'을 골라내는 법…팬덤은 마케팅보단 비즈니스 전략이다 [긱스]

박한나 비마이프렌즈 CMO 기고
'팬덤의 시대'. 팬덤이란 단어가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벗어나 글로벌 기업의 마케팅·성장 전략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호감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가치까지 추종하는 팬들은 기존 열성 소비자들과 달리 브랜드·제품을 주변에 적극 전파하는 브랜드 옹호자(brand advocate) 역할을 합니다. 팬덤 비즈니스 전문 기업 비마이프렌즈의 박한나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팬덤은 마케팅 타깃으로 대상화하기보다 천천히 비즈니스를 빌드업하는 전략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가 글로벌 현장에서 느낀 팬덤 비즈니스에 대한 생각을 한경 긱스(Geeks)에 전해왔습니다.
(사진 출처=삼성전자) 2019 MWC 삼성전자 부스 갤럭시 언팩 현장 @스페인 바르셀로나
바야흐로 팬덤의 시대다. 주로 K-pop에서 많이 언급돼 온 ‘팬덤’은 이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기업 브랜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등 광범위한 업계에서 불리고, 팬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마케팅과 사례연구가 등장했다. 단어의 대중화로 많은 기업과 크리에이터들이 팬덤에 관심을 쏟고 있는 지금, 글로벌 팬덤 비즈니스 전문 기업 비마이프렌즈는 이를 둘러싼 현상에 질문을 던진다. 팬덤은 마케팅의 대상일까? 비즈니스로서의 팬덤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공부하고 사회생활도 미국에서 시작했다. 오랜 외국 생활로 애국심이 강해진 탓인지 나는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확장을 도와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17년 동안 글로벌 기업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세계인들이 모여 당대 트렌드와 비즈니스 전략을 논하는 이벤트에 참여했다. 늘 현장에서 ‘사람이 왜 모일까? 여기서 무엇을 얻으려고 할까?’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반복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관계’가 탄생했다. 브랜드와 팬의 관계기도 하고 팬 간의 관계이기도 했는데, 이 관계는 거대해져 기업 브랜드의 수명을 결정하기도 했다. 글로벌 브랜드 마케터로서 이런 흐름을 다년간 지켜보며 팬덤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는 바로 관계임을 알게 됐다. 동시에 끝없이 발전하는 IT 기술이 시공간의 제약을 없애고 팬과 스타의 관계를 좁히며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하는 것도 목격했다. 현재 팬덤 비즈니스 전문 기업에서 팬덤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직접 보고 느낀 팬덤과 관계, 글로벌 현장에서 느낀 팬덤 비즈니스를 전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팬이다
Everyone is a fan of something

당신은 누구의 ‘팬’인가? 혹은 무엇의 ‘팬’인가? 보통 이런 질문을 하면 연예인 이름을 말하거나 머뭇거리다 쉽게 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팬이 아닌 ‘좋아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 자연스레 다양한 대상을 꺼내기 시작한다. 이렇듯 사람들의 무의식에 팬은 누군가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즉 긍정적인 인상보다는 부정적인 것으로 자리 잡힌 경향이 있어 언급이 어려운 경향이 있다. 대중들의 인식과 달리 현재 마케팅에서는 ‘팬’의 의미를 확장해 보거나 ‘팬덤’에 대한 논의를 심도 깊게 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하지만 팬덤을 단순히 마케팅의 일환으로 보기 전에 브랜드와 팬의 관계성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브랜드가 팬과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곧 브랜드 안의 인격적인 존재와 만나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아닌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건 결국 그 브랜드가 인간의 온도와 감성을 전달하는 휴먼 터치(Human touch)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브랜드가 철학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에 진정성을 담고, 이를 지속적으로 설파한다면 대중에게 어떤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남들과 구별되는 가치로 대중을 감동시켰을 때 브랜드에 팬이 생기고 팬덤이 형성된다. 즉 브랜드가 팬덤을 가지는 것은 브랜드 차별화 전략과도 같다.

브랜드에 팬덤이 있다는 것
브랜드의 팬이 된다는 것

브랜드의 팬이 된다는 건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좋아한다는 뜻이며, 이에 해당하는 것들은 모두 비즈니스의 전략의 뿌리가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Swell(스웰)이라는 텀블러 브랜드의 팬이다. 정확히는 Swell CEO 사라 커스(Sarah Kauss)의 창업 이유에 공감해 팬이 됐다. 사라 커스는 친환경 물품 중 세련된 물병을 찾다가 직접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환경보호를 일상처럼 오래 하기 위해 친환경 물병에 패셔너블을 접목한 점이 나를 움직였다. 좋아하는 브랜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사내에서 캠페인을 시작하고 동참한 동료들에게 Swell 텀블러를 선물하기도 했다. Swell의 브랜드 철학과 가치에 공감했기에,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된 사례다.
(사진 출처=본인 제공) 2022, 직접 사용하고 있는 Swell 텀블러 @대한민국 서울
이렇듯 브랜드의 팬들은 스스로 브랜드 앰버서더(Brand Ambassador)가 되어 브랜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Engagement)하고, 브랜드를 알리는 홍보 활동(Publicity)을 자처하며 브랜드를 옹호(Advocate)하기에 이른다. 브랜드의 팬이 된다는 건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남에게 추천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는 것이다.

브랜드의 팬이 된다는 건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내게 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무언가를 얻거나 보기 위해 오래 줄을 서는 것처럼 고된 일을 즐겁게 감당하는 것이다. 애플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전 세계 곳곳의 애플 스토어 앞에, 브랜드의 팬들이 줄 서는 모습이 뉴스에 보도된다. 유명한 스트릿 의류 브랜드의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던 모습은, 마치 K-pop 스타의 공연을 보기 위해 줄을 선 팬들을 보는 것 같았다. 최근 싱가포르 출장으로 마마무 콘서트장을 방문하게 됐는데, 굿즈 판매처 앞에 마마무 팬들이 아침부터 일찍 줄을 서는 것을 보고 마마무를 향한 팬들의 마음, 이들이 굿즈를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됐다. 이렇듯 누군가의 혹은 무엇의 팬이 된다는 건 팬이 아니면 하지 못할 초월적인 힘을 가진다.
(사진 출처=비마이프렌즈 제공) 2023 마마무 월드투어 ‘MY CON’ 팝업 스토어 @싱가포르

팬덤을 구축한 글로벌 브랜드에서 느낀 것
팬덤은 마케팅보다는 비즈니스 전략에 가깝다

이렇듯 팬덤이란 ‘내가 하는 일의 엄청난 옹호자’이면서 ‘초월적인 힘을 가진 사람’의 집단인데, 팬들이 대상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공유하며 하나가 될 때 그들은 팬덤이 된다. 따라서 브랜드 팬덤은 해당 브랜드의 가장 충실한 옹호자라 볼 수 있다.

미국의 친환경 패션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브랜드 철학을 바탕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보통 브랜드 철학에는 그 브랜드가 세상을 보는 관점, 즉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담고 있는데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에 대한 책임을 문제의식으로 갖고 있다. 따라서 ‘인간과 환경 모두에 이로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란 목표 아래 전사적인 노력을 하는 한편, 2011년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란 광고를 통해 환경보호에 대한 파타고니아의 철학을 온전히 반영하기도 했다. 브랜드의 철학과 실제 행동을 일치시킨, 파타고니아의 환경에 대한 진심은 내·외부에 공감을 사며 대중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감으로써 대중을 팬으로 전환(Conversion)시켰다.

프랑스 최고급 가죽 공예 브랜드 RSVP(알에스브이피)는 소비재 브랜드의 일반적 성공방정식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사업을 전개한다. RSVP는 언론의 최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패션위크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최고급 가죽과 전통 가죽 공예 방식을 고수해 브랜드의 원칙을 정하고, 이 철학에 공감하는 팬들을 천천히 모으고 있다. ‘느림’을 선택한 장기적인 브랜드 전략은 팬이 된 사람들에게 물건을 구매하기보다는 가치를 구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브랜드와의 거래보다는 최고급을 추구하는 사람들끼리의 관계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팬덤은 마케팅보다는 비즈니스 전략에 가깝다.

이미 팬덤이 형성된 대형 IP(지식재산권)의 경우 브랜드의 소유를 넘어 경험을 설계한다. 디즈니 랜드, 레고 랜드를 살펴보면 입장부터 퇴장까지의 경험, 온·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이 동떨어지지 않고 모두 이어지도록 연결한다. 또 오감의 활용, 공간에서 느껴지는 무드와 디자인 등에서 브랜드의 향연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이런 경험 설계를 통해 브랜드 팬들은 브랜드에 더 많이, 오래 머무르게 된다. 이는 브랜드의 존속가능성과 지속가능성도 동시에 높인다. 비용과 인프라 투자 외에도 두터운 팬덤이 존재하기에 이와 같은 브랜드 경영이 가능하다.

브랜드 철학을 바탕으로 팬덤과의 관계를 만들고, 팬덤이 있기에 소유를 넘어 경험을 설계하는 것. 팬덤을 가진 글로벌 브랜드의 사례를 보더라도 팬덤은 마케팅 타깃으로 대상화하기보다는, 천천히 비즈니스를 빌드업하는 전략에서 다뤄져야 한다. 팬덤을 움직이는 힘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좋아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팬덤 비즈니스에서 IT 솔루션의 필요성과 오너십의 가치

그렇다면 누구나 알만한 글로벌 톱 브랜드들의 경우, 어떻게 팬덤 비즈니스를 하고 있을까?

해외 출장에서 글로벌 브랜드의 리더들과 브랜드와 팬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면, 모두 본인 브랜드에도 팬덤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과 팬들은 어떻게 구별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팬들과 소통하는지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깨닫는다.

1) 너무 많은 채널과 데이터의 부재로 팬덤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
2) 찐팬들(Super fans)을 만나 관계를 쌓고 싶은 의지는 있지만 인프라의 한계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브랜드 소셜 미디어 운영으로 엄청난 팔로워(혹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팬덤의 규모 파악과 찐팬들과의 이벤트 추진이 어려운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SNS 속 수많은 팔로워들이 과연 찐팬일까에 대한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하면서도 그 데이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각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분산된 데이터에 의존하는 것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톱 브랜드들의 팬덤 비즈니스 현황인 것이다.

웹3.0이 등장하며 브랜드가 팬들이 있을 만한 소셜 플랫폼을 찾으러 다니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소통 공간으로 팬들이 직접 찾아와 콘텐츠, 팬 활동 정보, 데이터를 남기는 일이 의미 있어졌다. IT 솔루션으로 만든 ‘브랜드의 소통 공간’으로 팬들이 모여 브랜드와 팬, 팬과 팬 사이의 소통이 강화된다면 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인 비즈니스 성장을 일구어내게 된다. 여기서 활용하는 데이터는 대형 플랫폼에서 팔로워수, 노출수 등의 버즈 지표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숫자다. 찐팬의 참여가 만들어낸 데이터기 때문이다.

이렇듯 IT 솔루션의 계속된 발전은 브랜드가 ‘나의 팬’을 이해하는 도움이 된다. IT 솔루션이 브랜드의 모든 정보를 한 곳에 모으고 콘텐츠, 데이터, 팬덤에 대한 오너십(Ownership, 소유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너십’ 제공의 유무는 독립적인 팬덤 비즈니스 운영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두루뭉술한 팔로워가 아닌 입체적인 찐팬을 기반으로, 바탕이 튼튼한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IT의 발전에도 맹점은 있다. 새로운 IT 솔루션을 사용하려면 학습이 필요하므로, 모두가 즉각적으로 활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솔루션 개발사들은 팬덤 비즈니스 전문가들로 구성된 컨설팅을 같이 제공해 솔루션의 효용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K팝 성공으로 본 글로벌 팬덤 비즈니스의 전망

팬덤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쉬이 정의 내리기 어렵다. 정의를 내렸어도 사람의 속마음은 가변적이라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브랜드가 자신만의 열성적인 팬덤을 구축하는 것은 안정적인 비즈니스를 위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좋아하는 감정으로 상호 연결된 사람들을 모은다는 건, 관계 기반인 팬덤 비즈니스엔 정직한 해법(정공법)이다. 좋아하는 것엔 경계가 없고 팬덤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이 팬들을 어떤 전략으로 만나고, 호흡하고, 함께 성장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앞서 대한민국 브랜드가 세계적 명성을 쌓는 데 기여해 왔다는 것을 자부했다. 글로벌 팬덤 비즈니스에서도 대한민국 기업의 승산을 기대해 본다. K-pop이 전 세계적으로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고, IT에 강한 대한민국은 IT 솔루션을 통해 스타와 팬과의 거리를 수없이 좁혀 왔다. K-pop의 전 세계적 성공은 한국식 팬덤 비즈니스와 IT 솔루션이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여기엔 한 가지 넘어야 할 고정관념이 있다. 팬덤 비즈니스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뛰어넘어 전방위적인 업계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팬’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스타를 떠올리거나 얼버무리지만 ‘좋아하는 것’을 물어보면 자연스레 팬이 됐던 대상을 얘기한다는, 앞의 이야기를 잊지 않아야 한다. 이를 알아야 엄청나게 복잡하고 수준이 높아진 글로벌 시장에서 팬덤을 통한 차별화된 전략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브랜드에 차별점이 있는가? 글로벌 팬들은 좋아할 준비를 마쳤다.
박한나 | 비마이프렌즈 최고마케팅책임자(CMO)

17년 차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주로 한국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데 가교 역할을 하며 국내 기업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8년간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 전략 커뮤니케이션실에서 갤럭시를 전 세계에 알렸고, 현재 비마이프렌즈에서 CMO를 맡아 비마이프렌즈를 팬덤 비즈니스 업계의 글로벌 리더로 키우는 걸 진두지휘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의 마케터로 일하며 생각하게 된 브랜드의 지속가능한 비즈니스와 팬덤 비즈니스의 인사이트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