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에 중국산 못 쓰겠는데…" GM이 인정한 국내 기업 [안재광의 대기만성's]

전선·구리 생산기업의 '반전'
전기차·풍력 핵심소재에 쓰인다

▶안재광 기자
LS그룹 아시죠? 이렇게 물으면 많이들 '안다'고 해요. 들어는 본 것 같아서. 근데, LS의 주력 사업이 뭔가요, 계열사 아는 곳 세 곳만 대보세요, 총수가 누구예요? 이렇게 물으면 답이 잘 안 나오죠. 뭔가 익숙한데 생각해보니까 잘 모르겠는.
심지어 기업에 관심이 많은 주식 하는 분들도 비슷해요. LS 그룹에 상장 기업이 뭐가 있는지도 헷갈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회사 주식은 쌉니다. 근데 돈 잘 벌고, 독보적인 시장 내 지위를 확보하고 있고, 사업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파악하기도 쉬워요. 워런 버핏이 딱 좋아할 만한 회사죠. 이번 주제는 모래밭의 진주 같은 회사, LS그룹입니다.
LS는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회삽니다. 구인회 LG 창업주의 동생들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일명 '태평두' 형제가 2003년 LG 계열사 몇 개 들고나와서 LS로 독립한 거예요. LG는 장자 승계 원칙이 있어서 장자가 아닌 동생이나 친족은 회사 몇 개 주고 독립시키는 게 관행이죠. GS, LX 같은 회사들도 LG에서 이렇게 떨어져 나온 회사들이에요.
LS는 창업주 형제라 할 수 있는 '태평두' 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2세들, 정확히는 이 형제들의 장자가 돌아가면서 회장을 하고 있어요. 구태회 회장의 아들 구자홍 회장이 첫 번째 회장을, 구평회 회장의 아들 구자열 회장이 두 번째 회장을, 그리고 현재 LS 그룹 회장이죠. 구두회 회장의 아들 구자은 회장까지 왔습니다. 지금은 사촌 경영인데, 3세까지 내려가면 6촌 경영을 하는 건가요?
또 이분들과 같은 항렬의 남자 형제분들도 다 회장 칭호를 쓰고 있어요. 그룹 내에서 구 회장님이 무려 여섯 분이나 돼요. 직원들은 뭐라고 내부에서 부를지도 궁금해요. 삼성은 이재용 회장을 JY라고 하는데, 여긴 JY만 세 분이라. 지분도 구자은 회장이 가장 많은데, 3.6%밖에 안 되고 자잘하게 나눠 갖고 있습니다.
사업은 꽤 심플합니다. 먼저 전선 사업이 있죠. 주력 계열사인 LS전선이에요. 쉽게 말해 전봇대에 걸려 있는 전기 케이블, 통신 케이블 같은 걸 만듭니다. 또 이런 케이블에 들어가는 주된 재료인 전기동, 금·은·동 할 때 그 동이에요. 99.9%의 순도 높은 구리죠. 전기동을 만드는 MnM. 엠앤앤 초콜릿은 아니고요.
여기에 두꺼비집 같은 전력기기를 생산하는 일렉트릭, 트랙터 같은 농기계 생산하는 엠트론 등이 있습니다. 이밖에 도시가스 사업을 하는 예스코, 액화석유가스 LPG 사업하는 E1 등도 관계사이긴 한데 이런 가스 회사들은 지주사 LS가 아니라 오너 형제들이 별도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요.
사업이 뭐랄까, 엣지가 좀 없어 보이죠. 올드해 보여요. 굴뚝 산업 같기도 하고. 시대가 지금 어느 시대인데 전깃줄, 두꺼비집 만들고. 놋그릇이나 만들고. 주가도 엣지가 없긴 마찬가지죠. LS 그룹 안에 전기동을 생산하는 MnM 매출이 제일 커서. MnM의 주력 제품이라 할 수 있는 구리 가격과 LS그룹 주가가 같이 움직입니다. 주가 예측하려면 회사의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구리 가격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니까. 뭔가 구리죠.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사업을 뜯어보면 엄청나게 핫한 게 있어요. LS가 하는 사업이 요즘 뜨는 산업인 전기차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어요. 우선 LS전선이 하는 권선이란 게 있는데. 권선은 에나멜을 코팅한 선이죠. 이게 전기차의 핵심 부품입니다. 그것도 배터리와 함께 가장 중요한 구동 모터에 쓰입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과거에 리모컨으로 가는 RC카 같은 거 조립하면 모터에 구리 선이 칭칭 감아져 있었는데, 권선이 비슷한 겁니다. 전기 에너지를 기계적인 에너지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죠.
이 권선은 원래 히타치, 스미토모 같은 일본 회사들이 선점하고 있었는데 중국 회사들이 들어와서 시장을 휘저어 놓습니다. 중국 회사들은 어느 시장에라도 들어오기만 하면 가격 덤핑 쳐서 피바다로 만드는 게 특기인데. 조선이 그랬고, 디스플레이가 그랬고, 태양광도 그랬고. 권선 시장도 그랬어요. LS전선은 2009년에 국내서 처음 권선을 개발했는데, 팔 데가 없어서 고전을 해요. 원래 권선은 가전제품이나 엘리베이터, 발전기 같은 곳에 들어갔어요. 근데 이런 분야에선 저가 중국산을 당해낼 수가 없었어요.
근데 2014년 미국 1위 자동차 회사죠. 테슬라, 아닙니다. GM에서 갑자기 자기들 전기차에 쓸 권선을 달라고 하죠. 자동차에 들어가는 것이니까 안전성이 최우선이었고, 그래서 중국 회사 것은 차마 못 써요. GM의 볼트 eV에 처음 쓰입니다. 오, 근데 이게 잘 굴러가네. 그래서 현대차가 찾아와서 아이오닉5에 넣고, 기아 EV6에도 LS 것을 쓰죠. LS가 인수한 미국 회사 슈페리어 엑세스란 회사도 권선을 생산하는데. 테슬라가 얘네 권선만 전기차에 쓰이고 있어요.
MnM의 주력 제품인 구리도 전기차에 엄청 많이 들어갑니다. 모터, 배선, 배터리 등등에 구리가 들어가는데 기존 내연기관 차에 들어가는 것보다 대여섯 배 많다고 해요. 또 LS일렉트릭은 자회사를 통해서 전기차에 들어가는 EV릴레이란 부품도 생산 중이에요. EV릴레이는 배터리 내부 전기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LS가 E1과 함께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사업도 벌이고 있죠. 전기차 하면 사람들이 배터리만 떠올리는데. LS가 배터리 이외의 분야에서 생각보다 꽤 많은 것을 하고 있어요.
고루해 보이는 전력 케이블도 뜯어보면 미래 산업이에요.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에 많이 쓰이기 때문인데요. 특히 바다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고 여기서 생산된 전기를 육지로 끌어오기 위한 해저 케이블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바다가 바람도 잘 불고, 커다란 바람개비 설치하는 데 제약이 적잖아요. 육지에 설치하려면 땅 확보가 어렵고, 주민들도 반대해서. 한국도 요즘은 육지보다 바다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는 게 추세에요. 해상 풍력이 많이지면, 이 전기를 끌어오기 위한 해저 케이블 수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해저 케이블을 만들 수 있는 곳은 국내에선 LS전선이 유일하고, 해외에서도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일본의 스미토모, 프랑스의 넥상스 정도밖에 없습니다. 기술력이 꽤 있어야 하거든요. 케이블이 심해에서 초고압을 견뎌야 해서 꿈의 전선 기술이라고까지 해요. LS는 요즘 영국과 대만에서 대규모 수주를 잇달아 따내고 있어요. 2022년 12월 한 달 동안에만 영국 북해 프로젝트에서 4000억원, 대만 하이롱 지역에서 2000억원어치의 해저 케이블을 수주했습니다. 특히 대만에서 나오는 해상 풍력발전 해저 케이블 발주는 LS가 쓸어가고 있어요.
LS전선의 수주 잔고는 2022년 말 기준 2조8600억원에 달하고. 올해도 미국과 대만, 영국에서 추가 수주를 기대하고 있어요. 성장 잠재력만 있는 게 아니죠. LS는 현재 실적도 좋아요. LS그룹 전체의 2022년 매출은 약 36조원, 영업이익은 1조2000억원이었어요. 이건 전년 대비로 매출은 20%, 영업이익은 29% 증가한 것이에요.
지주사 LS 실적만 놓고 봐도 매출은 33%, 영업이익은 10%가량 늘었어요. 2022년 매출이 약 17조5000억원, 영업이익은 6500억원가량 했습니다. 2018년 매출이 갓 10조원 넘고, 영업이익은 5000억원쯤 했는데요. 이때와 비교하면 매출은 70% 이상, 영업이익은 30%나 늘었는데. 근데, 주가는 별 차이가 없어요. 7, 8만원대 수준에서 못 벗어나고 있죠.
그래서 LS는 증시에서 늘 저평가된 기업으로 언급이 됩니다. 주가수익비율, PER이 4배도 안 됩니다. 4년만 장사하면 회사 전부 살 정도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LS 같은 지주사가 한국 증시에선 인기가 없어서 그런 것도 있는데요. 근데, LS가 꼭 인기가 없어야 하는지, 이건 잘 모르겠어요. 다른 지주사들은 돈 잘 버는 주요 자회사들이 대부분 상장돼 있죠. LG를 예를 들면 LG전자,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이런 계열사들이 LG 지주사와 함께 이중으로 상장이 돼 있잖아요. 투자자 입장에선 껍데기만 있는 LG 살 바엔 이런 계열사들 주식 사는 게 훨씬 나아요.
LS는 다른데요. 그룹 내에서 가장 매출과 이익이 많은 MnM이 100% 자회사입니다. 100% 자회사란 건 서류상 딴 회사이긴 하지만, 사실상 한 몸이나 마찬가지죠. LS는 껍데기만 있는 게 아니라 사업하는 실체도 있다는 얘기죠. MnM 투자하고 싶으면 LS 이외에 대안이 없어요. MnM은 원래 일본 측에서 지분 절반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LS가 2022년 일본 회사 지분 다 사들였습니다. 지금은 실적이 전부 LS로 잡히고, 투자 결정도 온전히 LS가 합니다.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LS전선도 지주사 LS 지분이 92%나 되고 상장도 안 돼 있죠. 여기에 농기계 기업인 LS엠트론, LS글로벌 등도 100% 자회사입니다. 다른 지주사처럼 50~60% 할인해서 주식을 팔 이유가 없습니다. 아울렛도 아닌데.
그래도 투자자들이 지주사는 별로야, 싫어. 해서 지금 이런 식인데. 사람들의 심리는 변덕이 심해서 언제 바뀔지 모르죠. 사실 이런 거 노리고 주식을 야금야금 사 모으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가치 투자가인 이채원, 최준철 이런 분들이에요.
상장 계열사들도 주가가 재미없긴 마찬가지인데요. LS일렉트릭, LS전선아시아 등이 상장이 되어 있고 매출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느는데 주가는 별로입니다. LS일렉트릭의 경우 PER이 8배 수준으로 코스피 평균인 10배 안팎에 비해 저렴해요.
10여년 전에 어느 한 대기업 협력사를 취재하러 간 적이 있는데요. 회사에 간판이 없어서 찾아가는 데 애를 먹은 적이 있어요. 협력사이긴 하지만 매출이 1조원 가까이했는데, 무슨 간판 하나 없고. 간신히 그 회사 사장님 만나서 간판이 왜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장님 대답이. 간판 크게 잘 해놓으면 제품 가격을 후려칠 것 같대요. 협력사가 돈 잘 버는 것 티 내면 물건 받아 가는 대기업들이 득달같이 가격을 내린다는 거예요.
LS 보면서 이 스토리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대기업이긴 하지만, 다른 기업의 협력사로서 납품하는 거잖아요. 전선이나 전기 기기를 사 가는 곳이 한전이나 현대건설 같은 더 큰 회사들이니까. 간판을 크게 못 한 거지. 회사가 돈 잘 벌어도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못하고. 어차피 물건 사 갈 곳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런데 시대가 바뀌어서 요즘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필요성이 생겼죠. 리더가 자신의 비전을 회사 구성원들과 투자자, 그리고 거래 상대방에까지 잘 알리고 소통하는 게 요즘 흔히 말하는 ESG 경영입니다. 경영자의 비전에 따라 투자자들이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죠. 투자자 입장에선 매력적인 기업으로 보이도록 하는 게 경영자의 덕목이기도 합니다.
또 이미지를 잘 구축해야 인재가 모이기도 합니다. 요즘 기업들의 최우선 과제는 A급 인재, 향후 회사를 먹여 살릴 인재를 모시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구자은 회장은 요즘 대외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LS 계열사들은 IR이나 PR도 강화하는 것 같더라고요. 한마디로 간판을 크게 다는 것 같습니다. 그럼 회사 주가도 제 가치를, 혹은 그 이상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LS가 평판이나 이미지, 주가 부문에서 저평가의 대명사가 아닌, 제대로 평가받는 날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예수아 PD
촬영 박지혜·신정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