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가 이렇게 비싼줄 몰랐다"…8개월차 아빠의 '한숨' [오세성의 아빠놀자]

오세성의 아빠놀자(29)

물가 상승에 분윳값마저 고공행진
온가족 '핫딜'만 기다렸다 사재기
분유 떼면 다음은 우윳값 공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이 낳기 전에는 분유가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냐 싶었는데 먹이는 입장이 되어보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대형마트에서 필요할 때마다 샀지만, 이제는 온라인 핫딜을 기다렸다가 삽니다."(8개월 아이의 아빠인 직장인 이모씨)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집집마다 외식과 배달을 줄이는 등 식비 아끼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아끼고 싶어도 못 아끼는 식비는 내 아이, 영아(0~2세)를 위한 분윳값일 겁니다. 그야말로 '먹고 살아야 하는 식비'의 대표적인 품목입니다. 하지만 분유 가격이 오르면서 할인을 받기 위해 가족이 총동원되기도 합니다.이씨가 아이에게 먹이는 분유는 국내 업체의 산양분유입니다. 한 통에 4만3000원이던 가격이 올해 초 4만9800원으로 올랐습니다. 올해 국내 분유 업체들이 제품을 리뉴얼하고 유통업체들도 할인을 줄였습니다. 돈을 아껴서 분유를 사려면 온라인 핫딜로 구매해야 합니다. 물론 제한은 있습니다. 1명이 최대 3통까지만 살 수 있습니다. 3통에 10만7100원입니다. 대형마트나 제조 업체 자사몰에서 3통을 14만9400원에 파는 것과 비교하면 약 30% 저렴한 가격입니다. 이씨 부부와 양가 부모님, 처제까지 7명이 쿠폰을 받아 분유 21통을 샀습니다. 이렇게 아낀 금액이 3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너무 오른 분윳값…처체까지 동원해 '분유 핫딜' 참전

핫딜을 기다리다가 분유가 떨어져 어쩔 수 없이 비싼 값을 주고 사기도 합니다. 10개월 아이의 엄마인 백모씨(30)는 "핫딜로 샀던 수입 분유가 얼마 안 남았다"며 "이대로면 한 달 뒤에 분유가 떨어질 것 같은데 핫딜이 나오지 않고 있다보니 초조하다"고 토로했습니다.

백씨가 먹이던 수입 분유 가격도 1통에 3만7000원에서 최근 4만3000원으로 뛰었습니다. 그는 가지고 있는 분유가 떨어지면 필요할 때마다 소셜 커머스에서 사면서 핫딜이 나오길 기다리겠다는 계획입니다. 백씨는 "핫딜에서는 한 통에 3만5000원이 안 됐던 제품을 만원 가까이 더 비싸게 사야 하는 셈"이라며 "아이가 분유 한 통을 먹는 데 일주일이 걸리지 않는다. 한 달에 15만원 정도였던 분윳값이 20만원으로 뛰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핫딜로 알뜰하게 잘 샀어도 이러한 상황이 보기에 좋지는 않습니다. 아예 가격이 안 올랐다면, 과거와 같이 할인행사를 흔하게 했더라면, 이런 고생은 아예 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핫딜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한 대형마트에 분유가 진열되어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기존에 먹이던 분유가 비싸 부담스럽다면 더 저렴한 분유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정착한 영아의 분유를 바꾸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당장 기호성이 문제가 됩니다. 맛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분유를 뱉어내는 등 먹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영아들의 까다로운 입맛은 모유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분유가 아이의 몸과 잘 맞아야 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분유가 맞지 않으면 소화를 시키지 못해 배앓이를 겪기도 합니다. 늦은 밤에서 새벽쯤 배앓이 때문에 아이가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울면 부모들의 스트레스도 극심해집니다. 이러한 난관을 거쳐 어렵게 고른 분유를 쉽게 바꿀 순 없는 일입니다.무조건 저렴한 분유를 찾기도 부모 마음에는 어려운 일입니다. 한 분유 업체 관계자는 "필수 성분은 모든 제품에 충분히 담겨 있다"면서도 "나는 못 먹어도 아이는 고기 먹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지 않으냐. 더 좋은 성분이 들어갔다는 비싼 제품에 손이 가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분유 회사 직원들도 모두 자기 회사의 가장 비싼 제품을 먹인다. 직원 할인이 되어 다행"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아이들이 분유를 먹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대부분 돌이 지나면 분유를 줄이고 이유식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주식이던 분유는 점차 간식이 되고, 간식으로 시작했던 이유식은 주식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이유식이 완전한 주식으로 자리 잡으면 분유의 역할은 끝납니다.

분유 떼면 시작하는 우유…치솟은 가격에 수입 멸균유 '기웃'

하지만 분윳값 공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윳값 공포로 이름이 바뀔 뿐입니다. 분유를 뗀 아이들은 자연스레 우유를 먹게 되는데, 지난해 말 원유 가격이 일제히 오르면서 국내 유업체들이 우윳값을 인상했습니다.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에서 판매되는 유업체 브랜드 우유는 900㎖에 2850~2890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1L로 따지면 3166~3211원 수준입니다. 이달 들어서는 대형마트 자체 브랜드(PB) 상품 가격도 10% 안팎으로 인상됐습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우윳값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한경DB
우윳값이 오른 배경에는 생산비 연동제가 있습니다. 낙농가 생산비를 원유 가격에 반영해 납품가를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2013년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우윳값이 수요와 공급을 따지지 않고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우윳값이 치솟으면서 일부 부모들은 수입 멸균우유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폴란드, 호주 등에서 수입되는 멸균우유 가격은 1L에 1300~1800원 남짓입니다. 국내 우윳값의 절반 수준이기에 수입량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멸균유 수입량은 전년 대비 42.0% 증가한 3만3000t으로 추정됐습니다.

두돌이 지난 아이 엄마인 정모씨(33)는 최근 아이에게 폴란드산 멸균우유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정씨는 "지난해 말 우윳값이 뛰면서 아이에게는 생우유를 주고, 어른들은 수입 멸균우유를 먹기 시작했다"며 "먹어보니 국산보다 맛이 고소하고 보관도 편리해 거부감이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그러면서 "얼마 전 아이가 우유를 더 달라고 하는데 남은 양이 부족해 멸균우유를 줬다"며 "아이가 좋아하며 잘 마시기에 계속 주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정에서 지출하는 우윳값도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