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얼마 전 일요일이었다. 성당 미사 후 서둘러 점심 장을 보고 집에 갈 요량이었다. 빵집 간판이 눈에 띄자 손주가 좋아하는 곰돌이 빵을 사서 딸네 집에 주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점심때를 놓칠세라 마음이 급해졌다. 때마침 빵집 문이 열려 있었다. 황급히 한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우리가 먼저 나가야죠, 아이가 문을 열었는데!!” 한 아이와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거듭 사과하고 비켜섰는데 나가던 엄마의 눈초리가 매섭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급하다고 허둥대면서 주위를 살피지 않은 내 부주의함을 한참 자책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억울함이 올라왔다. 계단 위에 서있던 아이와 부딪친 것도 아니고 그저 한 계단 올라갔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까지 혼을 낼 일인가.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리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도 그렇게 서슬 퍼런 질책을 들어야 할 일은 아니다 싶다. 내 자식은 세상 무엇을 준대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귀하다. 그 아이 엄마도 아마 ‘귀한 내 아이가 문을 열었는데 감히 먼저 들어오려고 하다니!’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아이를 키우는 것은 한 세상과 만나는 일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면 한 번쯤 내 행동과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아이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든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를 안전하게 보살피고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하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나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내 맘대로’ 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사회의 일원으로 길러내는 것이 부모의 책무인 것이다. 요즈음 자식에 대한 빗나간 애정의 사례들이 눈에 띈다. 잘못된 행동을 한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훈육에 내 아이 기죽이지 말라고 항의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최근 화제인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면서 역대급 빌런 박연진의 엄마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 엄마는 딸이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괴롭히고 안하무인으로 구는 것을 훈육하기는커녕 부추기고 덮어주고 무마함으로써 괴물을 탄생시켰다. 그가 만약 올바른 본보기를 보여줬더라면,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따뜻하게 품을 줄 아는 인간애를 가르쳤더라면 많은 사람을 비극으로 몰고 간 이 드라마의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 빵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손주를 보면서 부모와 사회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