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의 역설'…금리 올리니 물가 뛰고 은행은 줄파산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고금리 부메랑 맞아 혼쭐날 파월 사단
미 중앙은행(Fed)과 시장의 사이가 다시 틀어졌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1월에 극도로 벌어졌다가 2월에 봉합됐지만 3월에 재차 멀어졌습니다.

시기상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기점으로 완전히 갈라섰습니다. 시장과 Fed를 갈라 놓은 건 은행입니다. 은행발 위기가 본격화하면서 투자자들은 불안해졌습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은행이 휘청거리면 경기도 흔들려 결국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Fed의 금리인상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래서 피벗(통화정책 전환)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대에 대해 Fed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습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의 말대로 은행 위기는 금리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면 금리는 올려야 한다는 게 Fed 인사들의 공통적인 인식입니다. 최소한 "연내 금리 인하는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반면 시장은 3월 FOMC로 금리 인상은 끝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7월에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들어가 연말까지 세차게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양자 간 인식의 괴리는 결국 은행발 위기와 인플레이션에 달렸습니다. 은행발 위기 강도가 세지면 긴축은 힘을 잃고 인플레가 견고하면 금리인상은 불가피합니다. 반대로 한 쪽의 힘이 극도로 강하면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침체 없이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연착륙으로 가기 전에 은행발 위기 없이 인플레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 연착륙'이 우선돼야할 상황입니다. 그게 가능할 지 여부를 이번 주에 타진해볼 수 있습니다. 은행발 위기가 확산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놓고 마이클 바 Fed 금융 감독 담당 부의장의 청문회가 이틀 내리 열립니다. 이 와중에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이션 지표가 나옵니다. 인플레처럼 변치않는 상수가 된 미·중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미국과 중국의 '마이웨이' 이벤트도 예정돼 있습니다.

미·중처럼 멀어진 Fed와 시장의 재격돌을 중심으로 이번 주 주요 이슈와 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금리인하 없이 은행 위기 끝날까

전통적으로 고금리는 은행의 '절친'이었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은행 운신의 폭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금리 1% 시대 때 10% 가량의 가산금리를 붙이면 10bp(1bp=0.01%포인트) 만큼의 이익이 돌아옵니다. 금리가 5%일 땐 10%의 가산금리로 마진이 50bp로 불어납니다. 고금리 때 순이자마진(NIM)이 확 늘어나기 때문에 은행들은 금리 인상을 내심 반깁니다.
그러나 악마는 '속도'에 있습니다. 금리가 너무 빨리 오를 땐 상황이 달라집니다. 현재 고금리는 은행의 철천지 원수가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급속도로 오르는 상황에서 중소형 은행들은 전통적으로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해주는 형태로 사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양적완화 시대에 풍부해진 시중 유동성을 대부분 무이자 수시입출식 예금 형태로 흡수해 미국 국채에 투자했습니다.
이런 천수답식 사업 구조는 금리가 오르자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무이자 예금은 대형 은행의 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 등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더 안정적이고 이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엄청나게 투자해놓은 국채입니다. 기준금리가 급속도로 오르자 국채 가격이 급락했습니다. 그리고 제로금리 때 풀어놓은 대출은 대부분 상업용 대출이었습니다. 오피스가 텅텅 비고 연체율이 올라가면서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돈 먹는 하마'가 됐습니다. 금리가 더 오르면 이런 은행들은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파산 위험이 커집니다.
그리고 은행 위기는 '평판 위기'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이미 망한 미국의 2개 지역 은행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흔들리고 있습니다. 유럽에선 '예전에 안좋은 일이 있었다'는 이유로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크레디트스위스(SC)도 그랬고 도이체방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각국을 대표하는 은행이라는 이유로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은행권의 '폭탄 돌리기'나 고금리의 악순환은 금리가 떨어지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힘들다고 시장에선 보고 있습니다.

주거비와 고금리의 위험한 상생

원래 금리가 상승하면 집값은 오르기 힘듭니다. 변동금리 비중이 높으면 삽시간에 떨어집니다. 고정금리라도 새 집과 새 대출계약이 늘어나는 속도에 따라 집값은 하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인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미국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4% 이상으로 압도적 1위입니다. Fed는 주거비가 떨어질 것으로 보고 기준금리를 올렸습니다. 파월 의장도 "주거비는 떨어질 것"이라고 예고편을 날렸습니다. 상품 부문에 이어 주거 부문에서도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완화)이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예고편이 잘 들어맞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독특한 주거비 산출 방식 때문입니다. CPI의 주거비는 세입자의 렌트비와 자가 보유자의 자가주거비(OER:Owners' Equivalent Rent)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자가주거비는 자기 집 소유의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상 주거비 또는 인정 주거비입니다. 설문조사로 진행되는 CPI는 집주인에게 "렌트를 놓으면 얼마에 렌트를 놓을 거냐" 형태로 묻습니다. 주로 고금리나 금리 인상 시기엔 원래 렌트비보다 높이 부릅니다. 대출 이자가 늘어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신규 주택은 고정금리를 적용받기 때문에 금리 상승분 만큼 렌트비가 오르게 됩니다. 모기지 금리는 1년 만에 3%에서 6%가 됐습니다. 결국 금리가 오르면 파월 의장의 예언대로 주거비가 빨리 떨어지기는 힘들 전망입니다.
경기침체 우려도 금리가 빨리 오르기 힘들 것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Fed는 이번에 성장률을 12월에 비해 살짝 낮췄습니다. 올해 미국 성장률은 0.4%를 기록한 뒤 내년에 1.2%로 올라 것으로 봤습니다. 이에 비해 지난해 12월 전망에선 올해 성장률이 0.5%를 기록한 뒤 내년에 1.6%로 오를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올해 1분기 성장률은 3%대 안팎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애틀랜타 연방은행의 국내총생산(GDP) 산출 프로그램인 'GDP나우'의 1분기 성장률 전망치는 3.2%입니다. 3.2%가 0.4%로 떨어지려면 2분기 이후나 늦어도 하반기엔 심한 경기하강이나 침체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침체 이후 부실 대출이 늘면 은행 대출 심사가 빡빡해지고 이로 인해 성장률은 하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시장이 금리를 올리지 못하거나 내릴 수 밖에 없다고 여기는 이유입니다.

부실 감독 질타와 변명

은행 위기와 인플레 대응을 1차적으로 담당하는 곳은 Fed입니다. 그동안 은행 감독은 대출 중심이었습니다. 기준은 건전성입니다. 연체율이 낮으면 크게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SVB 사태로 은행 감독 체계도 뒤바뀔 공산이 큽니다. 대출 뿐 아니라 예금도 샅샅히 뒤져봐야 합니다. 무이자 예금 비율이 높으면 지적해야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은행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반적으로 봐야 할 상황입니다. 대출 연체율 뿐 아니라 미국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에 편중돼 있으면 그것도 문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금이 빛의 속도로 빠져나갈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매뉴얼도 있어야 합니다.

Fed는 SVB 사태의 교훈을 뒤늦게 곱씹어보고 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미국 의회가 벼르고 있습니다. Fed를 작금의 사태를 불러온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총대는 Fed에서 금융감독을 담당하는 마이클 바 부의장이 멥니다. 바 부의장은 오는 28일과 29일에 연달아 미 의회에 나옵니다. 각각 상원과 하원에서 의원들로부터 '부실 감독'에 대한 집중 추궁을 받게 됩니다.
이번 주에도 유럽발 은행 위기가 확산될 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와중에 유럽의 3월 CPI가 31일에 나옵니다. 8%대에서 7%대로 떨어질 것으로 시장에선 예상하고 있습니다.
같은날 미국의 2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도 발표됩니다. 전년 동기대비 1월 PCE 상승률이 5.4%로 지난해 12월보다 높아져 인플레 우려가 커졌는데 이번엔 시장 예상대로 5% 초반대로 떨어질 지 주목됩니다.

판을 바꿀 '배터리 승전보' 이어지나

미국과 중국이 각각 자국의 위용을 보여줄 행사를 엽니다.

중국은 25~27일 베이징에서 중국발전고위급포럼(발전포럼)을 개최 중입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한 이후 첫 대규모 오프라인 국제회의였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했습니다.

중국형 오프라인 경제 행사에 대응해 미국은 온라인 정치 행사를 맞불을 놓습니다.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이 중심이 된 '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29~30일 화상으로 열립니다. 2021년 미국 주도로 시작됐으며 2차 회의는 한국과 미국, 코스타리카, 네덜란드, 잠비아이 공동주최국입니다. 110여개국의 정상이 참가합니다. 정상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본회의는 29일 화상으로 진행됩니다.
이번주 나오는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규정은 '한·미 경제동맹'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입니다. 한국의 기대대로 양극재와 음극재가 핵심 광물로 분류되면 한국의 최대 수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양극재와 음극재는 한·중·일 3개국이 대부분 생산하고 있는데 한국만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습니다. 미국과 FTA 체결국에서 나온 광물로 배터리를 만들면 전기차 한 대당 최대 3750달러의 보조금을 받습니다.
앨런 그리스펀 전 Fed 의장은 2004년 이후에 기준금리를 계속 올렸습니다. 그러나 시장금리는 반대로 내려가는 '그린스펀 수수께끼'가 발생했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미국 국채를 사들이면서 발생한 일입니다.
파월 시대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금리를 올리는 와중에 국채 가격이 급락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늦게 금리인상을 시작해 너무나 빨리 금리를 올린 후유증입니다. '뒷북 논란'과 '고속 인상 논란' 속에서 인플레는 잡히지 않고 애먼 은행들만 잡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계속 금리를 올리면 엉뚱하게 주거비가 더 올라가고 은행만 사지로 몰고 가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습니다.

이번주 은행 주가와 인플레 데이터를 보면 이런 '파월의 역설'이 어떤 결말을 맺을 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 '정인설의 워싱턴나우'는 매주 월요일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인 '한경 글로벌마켓'에서 유튜브 영상과 온라인 기사로 찾아뵙고 있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