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줄이고 무인화해도 더는 못 버텨"…폐업공제금 1조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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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5년새 48% 급등“전체 지출에서 50%를 차지하던 인건비가 70%까지 오르니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어요.”
"알바생 내보내고 매장 운영
돌아온 건 병원 진단서뿐"
직원없는 자영업자 427만명
구조적인 한계상황 내몰려
내년 최저임금 논의 곧 시작
"업종·지역별 차등적용 시급"
2015년부터 경기 평택에서 ‘1985커피’라는 카페와 커피 공장을 운영하던 현지호 씨(38)는 지난해 11월 카페 문을 닫았다. 현씨는 카페에 상시근로자 4명, 아르바이트 직원 2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입은 제자리인데 매년 최저임금이 오른 탓에 직원 월급을 그에 맞추다 보니 결국 손에 쥐는 게 없었다. 현씨가 카페 업무를 도맡으며 최소 인력으로 수개월 고군분투했지만 돌아온 것은 병원 진단서뿐이었다. 그는 “저와 아르바이트 직원이 돌아가면서 앓아누워 결국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지난 5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소상공인·자영업 현장 곳곳이 구조적으로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황폐해졌다. 인건비 부담 때문에 가족까지 동원한 것도 한계를 맞아 무인화 시스템을 적용한 곳이 늘어났다. 끝내 더는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선택하는 소상공인도 증가했다.
끝내 폐업…‘부메랑’ 된 최저임금 급등
최저임금 급등의 가장 큰 폐해는 폐업 증가다. 당장 벼랑 끝 소상공인이 늘면서 폐업 지원금이 크게 증가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생활 안정과 노후 보장을 목적으로 ‘노란우산공제’에 가입한 중소기업인·소상공인에게 지급한 폐업공제금은 지난해 9682억원(9만1130건)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고치로, 전년(9040억원) 대비 7.5% 증가했다.폐업공제금은 2018년부터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5462억원, 2019년 6142억원, 2020년 7283억원으로 껑충 뛴 데 이어 2021년 9000억원을 돌파했다. 2018년과 비교하면 지난해 77%나 폭증했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허덕이던 소상공인들이 결국 사업을 접은 영향으로 풀이된다.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기업생멸행정통계에 따르면 2020년 소멸기업은 76만1000개로 전년 대비 2만5000개(3.4%) 증가했다. 사업장이 사라지면 근로자도 일할 곳을 잃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든 것이다.
악조건에도 경영을 이어가려는 소상공인은 무인시스템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인천 연수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이준영 씨(47)는 지난해부터 새벽에 무인시스템을 도입했다. 2006년 PC방을 차린 후 처음이었다.PC방은 24시간 영업하기 때문에 그동안 새벽에도 아르바이트 직원 한 명은 고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치솟는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결국 오전 3~9시에는 무인시스템에 맡기기로 했다. 이씨는 “인건비를 단순 계산하면 새벽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한 달에 180만원이 나가는데 무인시스템을 써서 비용 절감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편의점도 무인화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CU,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편의점 4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무인 편의점은 3310개로 전년 대비 55.8%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26만7000명으로 전년(420만6000명)보다 6만1000명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많은 숫자다.
최저임금 심의 앞두고 긴장감
최저임금 인상이 결국 돌고 돌아 일자리를 없앤 격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올해 최저임금이 어느 수준에서 결정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 활동 개시도 머지않았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31일까지 최저임금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해야 한다. 고용부 장관의 요청을 받은 최저임금위는 통상 4월 초 제1차 전원회의를 열어 안건을 보고·상정한다.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업계에서는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기업의 지급 능력을 넣거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업종별 차등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과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에선 최저임금을 지역별·업종별로 차등 적용하고 있다.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본부장은 “복합 경제위기 상황에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증가한 금융채무 부담이 겹치면서 상당수 소상공인의 지급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업종별·규모별 차별화 등 최저임금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