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긴 호흡이 그리워 차무식 선택한 최민식 “진하게 연애한 기분이에요”


강하지만 부드럽다.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바로 배우 최민식 이야기이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연출·각본 강윤성)의 주연 배우 최민식과 마주했다.

최민식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을 배가시켰던 ‘카지노’는 1997년 방송된 ‘사랑과 이별’ 이후 그의 25년 만의 드라마 복귀라는 점에 있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긴 호흡이 그리웠어요. 애정이 없었으면 이 작품을 안 했을 거예요. 이번 작품도 좀 더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 남아요. 매번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연애하는 기분으로 해요. 징글징글 맞게 지난해 겨울부터 초가을까지 진하게 연애한 기분이에요.” 지난 22일 시즌2 마지막화가 공개된 ‘카지노’는 돈도 빽도 없이 필리핀에서 카지노의 전설이 된 남자 차무식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인생의 벼랑 끝 목숨 건 최후의 베팅을 시작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과정이 너무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작품이에요. 결과물은 시청자들이 소비하면서 호불호가 나뉘게 되어 있어요. 악조건 속에서도 스태프, 배우들과 실타래 풀어가듯이 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최민식은 주인공 차무식을 연기하면서 냉철하고 철두철미한 카지노 사업가의 몰락을 설득력 있고 긴장감 있게 그려내면서 “역시 최민식”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차무식을 007처럼 멋진 수트를 입는 멋있는 캐릭터로 상상했어요. 현실은 배 나온 아저씨였는데, 이런 외향적 이미지도 차무식과도 잘 어울릴 수 있겠다 싶었어요. 평범한 사내가 어쩌다 보니 미래를 책임져준다는 말에 혹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죠. 차무식은 의도와 다르게 이상한 곳으로 가지만 제동이 안 되는 삶을 살았어요. 머리 하나는 영민하고 똑똑해서 더 좋은 친구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이렇게 됐죠. 누구나 차무식처럼 인생이 흘러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이 빛을 발한 가운데 그의 스펙터클한 연기가 극을 풍성하게 채우며 16회의 여정을 하드캐리 했다. “차무식을 평범함에 뒀어요. 선과 악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지는 않았죠. 가장 평범한 사람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죠. 환경이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다고는 안 봐요. 불우해도 바른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데, 인간 내면의 욕망을 좇다보니 자기 자신도 그런 무리를 만나게 된 것 같아요. 차무식이 돈과 권력을 추구하다 보니, 그렇게 흘러간 것 같아요. 100% 나쁜 사람이나 착한 사람은 없다고 봐요. 인간의 다중성이 표현됐으면 했어요.”

이러한 그의 캐릭터표현 배경에는 두터운 연기내공에서 비롯된 상황몰입과 후배들과의 적극적인 호흡이 존재했다. 그를 중심으로 모인 손석구, 이동휘, 허성태, 이규형, 조한철, 이혜영, 김주령, 임형준 등 시상식을 방불케 하는 명품 배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존재감이 빛나는 연기를 선보였다. 최민식은 무엇보다 ‘카지노’는 연출자와 배우들이 시험공부 하듯이 현장에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애착이 크다고 했다.

“현장에서 170여명 가량의 배우들과 부딪치다 보니, 나름대로의 현실감 있는 연기준비보다는 그 상황 상황에 몰입하는 방법이 최선이었어요. 뭐라고 지시하기보다 내 스스로 잘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현장에 임했죠. 과거와 달리 요즘 후배들은 배우라는 직업관과 함께 각자만의 철학이 또렷하게 있더라고요. 처음 준비할 때 후배들이 모여 있길래 고시공부 하는 줄 착각할 정도로 진지하더라고요. 다들 좋은 작품 찍자고 모인 만큼 그들과 재밌고 즐겁게 작업하려고 했어요.”

특히 양정팔 역의 이동휘와의 티키타카는 완벽한 현실감과 유쾌 포인트로서 인식돼 주목됐다.

“차무식과 양정팔로서의 모습은 꽉 채우면서, 재즈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고, 저도 그랬어요. 권력자들이 보통 자기 사람관리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가운데서 동휘가 맡은 정팔 캐릭터는 말은 안 듣는데 버리지 못하는 강아지 같은 챙겨줘야 하는 캐릭터처럼 다가왔어요.”

그는 연극무대 이후 23년 만에 함께 한 배우 이혜영과의 호흡을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꼽았다.

“1999년 연극 햄릿 이후 23년 만에 이혜영과 함께 하니 감동적이기도 설레기도 했어요. 고 회장의 돈 100억을 탈취하는 과정을 연기하는 데 중간 중간 추억들이 생각날 정도였어요. 어제 마지막회를 극장에서 보고 난 이후 뒤풀이에서 ‘다음에 로맨스 하자’라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차무식은 결국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해 죽음을 맞는다. 결말에 대한 아쉬움도 있는 게 사실.

“욕망으로 치닫던 사람의 결말이니 꽃잎이 떨어지듯 차무식이 퇴장하는 게 맞는다고 봐요. ‘화무십일홍’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게 바로 사람의 욕망이란 게 느껴진 결말이라 좋았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예전부터 감독한테 얘기했어요. 감독도 수용했고요. 살면 또 찍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강 감독, 나 좀 죽여줘’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고 그랬어요.”

차무식이 죽기 직전 바닷가에 가서 생각에 잠겨 눈물을 흘린 장면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동안의 회한이 밀려온 거예요.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기고만장하게 살았던 사람의 어쩔 수 없는 나약한 모습이죠.”

드라마 시리즈에 첫 도전한 강윤성 감독의 탁월한 연출과 극본은 ‘카지노’ 시리즈를 100% 완벽한 웰메이드로 완성시켰다.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묵직하게, 치밀한 서사 속에 특유의 유머 코드까지 장착, 섬세한 완급 조절로 지루할 틈 없는 쫀쫀한 전개를 살렸던 것. 무엇보다 촘촘하게 서사를 쌓아 올리며 다양한 관계성에서 오는 갈등 구조를 내밀하게 표현,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펼치는 빌드업의 진수를 보여줬다. ‘카지노’는 디즈니+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최대 시청 시간을 경신하는 것은 물론,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서 디즈니+ 한국 TV쇼 부문 1위를 고수하고, 대만 TV쇼 부문에도 1위에 오르는 등 인기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배우와 스태프들의 앙상블 덕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나름대로 자부한 게 있어요. ‘흉내 내지 말자’. ‘서양의 누아르를 머릿속에서 아예 지우자’라고 이야기 했어요. 액션을 하더라도 우리 식으로 하고, 총을 쏴도 순식간에 하고. 총격전 이런 거 하지 말자였어요. 그런 면에서 아마 외국 사람들이 봤을 때 조금 리얼리티가 있지 않았을까요.”

최민식은 ‘카지노’를 계기로 OTT 시대로 들어서면서 바뀐 시청 형태 등을 체감했단다. 그러면서 영화인으로서 극장에 대한 애정도 숨김없이 드러냈다.

“팬데믹으로 플랫폼 형태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몰아보기 같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점이 있죠. 그래도 저는 극장이 좋아요. OTT는 정지시키고 화장실에 갔다 오고, 재미없으면 꺼버려요. 극장은 돈도 아깝고 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콘텐츠를 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교감하는 극장 냄새가 좋아요.”

최민식은 많은 후배들이 롤 모델로 꼽는가 하면, 함께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선배로 꼽힌다. 그럴수록 책임감을 느끼고, 마음을 다 잡는다.

“아직도 작품에 욕심이 많아요. 로맨스, 중년의 멜로를 하고 싶어요. 젊은 남녀의 상큼한 사랑도 있지만, 어떤 중년들의 사그라지는 사랑. 절제해서 더 짠하고 아픈 그런 어른스러운 것들을 하고 싶어요. 요즘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가 많아요. 찔러 죽이고 쏴 죽이는 이런 것은 지겨워요. 서로를 포용하고 아픔을 보듬어주는 휴먼 스토리가 필요한 때죠. 단편소설 같은 영화들이 활성화되면 좋겠어요.”

[사진제공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지털이슈팀 유병철 기자 onlinenews@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