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 대신 천안함 명판…2년 전과 달랐던 '서해수호의 날' [오형주의 정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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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천안함에서 산화한 고 민평기 상사 어머니 윤청자 여사 기부금으로 마련된 ‘3.26 기관총’. 천안함에 걸려있던 부대기와 명판.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호정이 사용한 항해기. 연평도 포격전 당시 임준영 상병의 ‘불탄 철모’. 연평도에 날아온 북한군 방사포탄과 포탄 파편에 파손된 중화기 중대 명판...
국립대전현충원 행사장에
천안함·연평부대 명판, 불탄 철모 등장
대통령실 “유가족·생존장병 호응 컸다”
2년 전 文정부 행사와 대조적 반응
박보검 사회자에 특수부대 고공강하
해군기지서 함정·헬기 사열 등 눈길
文, 北 도발 규탄·책임 등 언급 안해
“조국 위해 치열하게 싸운 청춘 부각해
진정성 있게 절제된 메시지로 전달”
지난 24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현충문 우측에 설치된 모형 함정엔 제2연평해전(2002년 6월29일)과 천안함 피격(2010년 3월26일), 연평도 포격전(2010년 11월23일) 당시 전적물들이 전시됐다. 서해수호 용사 55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롤 콜(roll-call)’과 기념사를 마친 윤 대통령은 이종호 해군참모총장의 안내로 전시물들을 둘러봤다. 북한군 포탄에 파손된 연평부대와 천안함 명판을 손으로 직접 어루만진 윤 대통령은 무거운 표정으로 “북한의 무력 도발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은 2016년부터 매년 열린 역대 서해수호의 날 중에서도 전몰장병 유가족과 생존장병 등의 호응이 가장 컸던 행사로 꼽힌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행사를 마치고 국방부나 대통령실 등으로 많은 격려가 쏟아졌다”며 “이제야 조금 정상적으로 나라가 가는 것 같다는 취지로 많은 말씀을 주셨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던 2021년 3월26일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대한 평가는 이와 사뭇 달랐다. 당시 정부는 최초로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개최했다. 기념식 사회는 당시 해군 일병이었던 배우 박보검이 맡았다. 애국가 제창 때에는 해군특수전전단(UDT)와 해병대 수색대, 육군과 공군 특수임무부대원들이 ‘서해수호 55용사를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은 국제신호기를 매달고 고공에서 강하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군가 합창이 시작되자 기지에 정박해있던 경기함 등 함정들이 출항을 앞두고 기적을 울리는 ‘기적취명’과 함께 일제히 출항했다. 마린온과 링스 헬기 등도 함께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기념식에도 유가족과 생존장병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갑판병으로 복무했던 전준영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전우회 회장은 자신의 SNS에 “‘서해수호의 날 쇼’에 속은 내가 바보다”라고 적었다. 당시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천안함 사건 재조사를 결정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여권에서는 불과 2년 만에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진 이유로 ‘진정성’과 ‘절제된 메시지 전달’을 꼽는다. 여기서 진정성이란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을 대하는 윤 대통령의 태도를 뜻한다.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정치에 참여하기 전부터 천안함과 연평도에서 산화한 젊은 청춘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컸다”며 “그들이 국가로부터 제대로 예우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분개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직후인 2021년 6월 29일 매헌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한 정치참여 선언에서 “천안함 청년 전준영은 분노하고 있었다”는 표현을 첫머리로 내세웠다. “살아남은 영웅들은 살아있음을 오히려 고통스러워했다”며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지킨 우리를 왜 국가는 내팽개치는 거냐고”란 말도 덧붙였다.대통령실 안팎에서는 이번 기념식을 두고 “‘탁현민식 쇼’ 없이 절제된 표현으로 북한의 도발에 맞선 젊은 청춘들의 숭고한 희생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잘 전달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2년 전 탁현민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주도한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은 사회자인 배우 박보검의 등장과 해군 기지에서 벌인 특수부대 고공 강하, 함정·헬기 사열 등 각종 이벤트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천안함 폭침 등과 관련해 북한을 규탄하거나 도발 책임을 직접 거론하지 않아 ‘진정성이 결여된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올해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은 김일범 전 의전비서관이 지난 12일 일신상의 이유로 자진해서 물러난 뒤 처음 치러진 대규모 외부행사였다.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과 김승희 의전비서관 직무대리 등이 행사 기획과 행사장 구성, 전시물 등 전반적인 사항을 총괄했다.한 관계자는 “현충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숙연함 외에도 서해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청춘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자는 의견이 있었다”며 “비록 보훈처가 주관하는 행사지만 대통령실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 그날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불탄 철모나 파손된 부대 명패 등 여러 상징물들을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