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시장 '블랙스완'된 이상기후…하반기 엘니뇨 오면 또 '물가 폭등'

끝나지 않은 애그플레이션

폭염·홍수 여파 '작황 부진'

닭고기보다 비싼 필리핀 양파
美오렌지 생산량 90년만에 최소

한국도 호남 50년만의 가뭄
대파 등 출하지연에 가격 불안
"농산물 수급책 선제 마련해야"
사진=연합뉴스
세계 곳곳에서 식자재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필리핀에서 양파가 닭고기보다 비싼 ㎏당 평균 700페소(약 1만6700원)에 거래되고, 미국에선 오렌지 생산량이 90년 만에 최저로 떨어져 가격이 치솟는 식이다. 이상기후발(發) 작황 부진이 ‘블랙스완(예상하지 못한 위험)’처럼 나타나 공급 차질에 대비하지 못한 영향이다.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호남지역이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어 이 지역이 주산지인 양파, 대파 등의 가격이 불안하다. 연초 제기된 하반기 엘니뇨 발생 가능성이 현실화하면 올해 안정될 것으로 예상됐던 식탁 물가가 소용돌이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렌지·토마토도 급등

2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미국산 네이블오렌지 도매가격은 10년 새 최고가를 찍어 18㎏당 8만원을 넘겼다. 연평균 도매가격은 2021년 5만8917원→지난해 7만4846원→올해 8만279원으로 계속 상승하고 있다.

원인은 주산지인 미국과 스페인의 이상기후다. 지난해 캘리포니아는 최악의 가뭄을 겪은 뒤 오렌지 출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2월부터 올 3월까지 폭우가 이어졌다. 스페인은 평년보다 추운 겨울을 지나며 오렌지가 냉해를 입었다.작년 여름 가뭄과 폭염을 겪은 이탈리아에선 토마토와 올리브가 피해를 봤다. 국제올리브협회에 따르면 이탈리아산 올리브유 100㎏ 가격은 지난해 평균 431.1유로에서 올해 583.1유로로 올랐다.

필리핀,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선 양파 가격이 전년 대비 세 배 이상 폭등했다. 파키스탄 대홍수와 중앙아시아의 비축 양파 서리 피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연쇄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호남 가뭄에 양파 작황 부진

국내에선 호남지역의 역대급 가뭄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곡창지대인 호남은 1973년 이후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 광주와 전남지역의 최근 1년 누적 강수량은 약 900㎜로 평년의 64%에 불과하다.대파 주산지인 전남 신안군에서는 이미 가뭄 때문에 대파 출하가 늦어지고 있다. 대파밭 3.3㎡에 평소 15단이 생산됐다면 지금은 12단이 나온다. 최근 5년간 ㎏당 평균 1159원에 거래된 대파는 3월 현재 1884원에 거래되고 있다.

5월 출하를 앞두고 한창 자랄 시기인 양파 또한 장기간 가뭄으로 생육을 멈췄다. 권민수 록야 대표는 “양파가 생육기에 가뭄을 겪은 이후 수확기에 폭우까지 내리면 출하량은 작년보다 급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식탁물가 위협 변수 속출

그동안 국내외 주요 기관은 올해부터 글로벌 식량가격이 하향 안정화할 것으로 전망해왔다. 식량가격 지표로 활용되는 S&P GSCI 농산물지수는 지난 24일 기준 445.35로 전년 동기(556.14)보다 낮은 수준이다.하지만 이상기후로 인한 글로벌 작황 부진으로 “애그플레이션(농산물+인플레이션)이 끝나지 않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하반기에 4년 만에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엘니뇨는 식품물가를 다시 들썩이게 할 최대 변수로 거론된다.

엘니뇨는 태평양 적도 지역 해수면이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아지는 현상이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에 열과 습기를 대기로 다량 방출하고 세계에 폭염, 가뭄, 폭우 등 기상이변을 몰고 온다. 국제금융센터는 지난달 말 보고서에서 “하반기에 엘니뇨가 발생할 가능성이 50% 이상”이라며 “소맥, 원당 등이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선제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수정/한경제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