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양품' 아트 디렉터가 꼽은 일본 토속 호텔들의 파워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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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공비행2019년 일본에서 한 디자이너가 '저공비행'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일본의 특색 있는 장소를 소개하는 60초짜리 영상과 사진을 웹사이트에 올리는 것이다. 마치 낮은 고도에서 비행을 하듯이 일본의 여러 지역을 가까이서 탐험하겠다는 취지였다.
하라 켄야 지음 / 서하나 옮김
안그라픽스
230쪽|2만5000원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은 하라 켄야. 일본의 대표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이다. 국내에는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로 잘 알려져있다. 최근 출간된 <저공비행: 또 다른 디자인 풍경>은 그가 일본 전역을 '저공 비행' 하면서 찾은 디자인 성공 사례를 정리한 책이다. '지역성에 미래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닥 새롭지 않다. 글로벌화가 진행될수록 그 지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고유성)'가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지역의 오랜 문화와 풍토, 자연환경을 관광자원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다른 책에서도 숱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참신한 건 '지역성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시설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저자의 대답이다. 그가 내놓은 답은 '호텔'이다. 여행이나 출장 때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잠깐 들리는 호텔이 그 지역의 특색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라니,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에게 호텔은 잠을 자는 공간, 그 이상이다. "잘 만들어진 호텔은 그 지역에 대한 최상의 해석이자, 음미된 풍토 그 자체"라는 게 켄야의 설명이다.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음미하고 해석한 뒤, 건축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일본 가고시마현에 있는 '덴쿠'가 그렇다. 3만 평에 이르는 넓은 땅에 목조 빌라 딱 다섯 개만 설치된 고급 리조트다. 각각의 빌라엔 천장이 탁 트인 나무 테라스가 펼쳐져있다. 테라스 한쪽에는 놓인 노천탕에 몸을 담그면 호텔을 감싸고 있는 기리시마산과 한몸이 된 듯하다. 빌라 근처 얕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는 손님이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도 설치돼있다.
호텔 주변의 대자연 자체가 손님에게 제공되는 공간인 셈이다. 저자는 일본뿐 아니라 피터 줌토, 제프리 바와 등 세계 각국의 건축 거장이 지은 호텔을 풍부한 사례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책이 한국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저자는 한국도 일본처럼 수도에 인구가 집중돼있다가 재택근무 활성화 등으로 지방의 가능성이 떠오르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대도시에선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훌륭한 풍토와 전통이 지역에 숨쉬고 있을 것"이란 그의 메시지가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