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 밑에 아파트 단지?…서울대미술관이 부른 '파격' [전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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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미술관 '시간의 두 증명 - 모순과 진리'바느질 하나로 세계 미술계를 홀린 김수자의 오색 보따리가 전시장 여기저기에 놓여있다. 한국의 대표 설치미술가 서도호가 푸른색 실크로 만든 높이 3m짜리 한옥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그 뒤엔 깨진 도자기 조각을 퍼즐처럼 이어붙인 이수경의 설치작품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국제 무대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국가대표급’ 예술가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 명 한 명이 지구촌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 법한 주자들이다. 하지만 전시가 열리는 곳은 대형 미술관이나 상업 갤러리가 아니다. 서울 신림동에 자리잡은 서울대미술관이다. ‘시간의 두 증명 - 모순과 진리’라는 이름의 이번 전시는 서울대미술관이 한국의 전통을 조명하기 위해 재단법인 아름지기와 함께 준비했다.
아름지기는 재계 오너 일가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기 위해 2001년 만들어진 비영리 문화단체다. 아름지기의 일원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이 이번 전시의 축사를 직접 쓰기도 했다. 전시에는 아름지기 소장품 100여점과 서울대미술관이 확보한 작품 75점으로 꾸려졌다. 아름지기는 백남준부터 김수자, 서도호, 양혜규 등 누구나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고, 서울대미술관은 전시 취지에 맞는 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을 더했다. 전시를 ‘유명 작가들을 불러모은 기획전’으로 평가한다면 참맛을 느끼기 어렵다. ‘전통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깨뜨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조해리 작가는 정간보(국악 악보)에 만화를 그려넣었고, 김보민 작가는 전통 산수화 밑에 빽빽한 아파트가 들어선 도시의 풍경을 결합해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일반적으로 전통을 다루는 전시의 관람객은 주로 중장년층이지만, 이번 전시엔 젊은 관람객들도 친숙하게 느낄 만한 작품이 많다. 시간을 뒤죽박죽 섞어놓은 듯한 구성도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임금이 나들이를 갈 때 텐트처럼 쳤던 ‘어막차’ 옆에는 후드티·비니 등 현대적인 옷차림의 사람들을 전통 한국화 방식으로 되살려낸 우덕하 작가의 작품이 놓여있다.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은 “‘전통이란 이런 것’이라고 제시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녹아드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28일까지.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