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연금개혁, 對日외교 같은 결단이 필요하다

국민연금 재정 고갈 막으려면
더 내고 덜 받는 개혁 불가피

국회도 정부도 다들 우물쭈물
佛마크롱 같은 리더십 절실
이대로 가다 간 골든타임 놓쳐

임도원 경제부 차장
금연은 왜 힘들까. 기본적으로는 담배의 중독성 때문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행동학적인 분석이 있다. 흡연의 이익은 명확하다. 도파민 분비를 통한 쾌락이 온다. 반면 피해는 즉각적이지 않다. 건강에 나쁘다지만 당장 몸에 이상을 일으키진 않는다. 폐암을 실제로 발병시킬지, 발병시킨다 해도 그 시기가 언제인지 등을 알 수 없다. 다른 질병과의 관계도 그렇다.

담배와 정반대의 성격을 갖는 게 보험이다. 보험의 불이익은 명확하다. 당장 매달 보험료가 계좌에서 빠져나간다. 반면 이익은 불확실하다. 보험금을 과연 받게 될지, 받는다고 해도 언제, 얼마를 받을지 알 수 없다. 설사 안다 해도 현재로서는 체감하기 어렵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체로 보험에 들기 싫어한다. 담배와 달리 보험 판매에 영업사원이 필요한 이유다.
국민연금은 사회보험의 한 종류다. 매달 가입자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간다. 연금이라 언제, 얼마의 보험금을 받을지 윤곽은 나오지만 역시 불확실성이 크다. 그래서 1988년 노태우 정부는 국민연금 도입 당시 국민 반발을 줄이기 위해 보험료율 3%에 소득대체율 70%를 제시했다. 월소득 100만원 중 3만원씩만 내면 은퇴 후 죽을 때까지 매달 70만원씩 되돌려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였다.

결국 김대중 정부는 1998년 ‘늦게, 덜 받는’ 1차 개혁을 단행했다.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늦췄다. 보험료율은 올리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2차 개혁을 통해 보험료율을 2030년까지 15.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60%에서 5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에 ‘안티 국민연금’ 사이트 수십여 개가 생겨나 개혁 반대운동이 벌어졌고,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는 촛불시위까지 이어졌다. ‘궁민(窮民)연금’, ‘굶길 연금’이란 말까지 나왔다. 결국 2차 연금개혁은 2007년 소득대체율만 40%로 내리는 데 그쳤다.

이후 국민연금 개혁은 없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했지만 국민연금엔 손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어떤 개혁도 하지 않았다. 2018년 재정추계에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이 2060년에서 2057년으로 앞당겨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을 13%까지 인상하는 등 네 가지 개혁안을 마련했다. 그뿐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개혁은 무산됐다.결국 공은 윤석열 정부로 넘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말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며 개혁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상황은 윤 대통령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국회는 연금개혁안을 논의하겠다며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했지만 보험료 인상안 합의조차 도출하지 못했고, 소관 부처인 복지부도 별다른 개혁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저 멀리 프랑스에서는 다른 소식이 들린다. 연금 수령 개시 시점(정년)을 2년 연장하고 연금 100% 수령을 위한 보험료 납부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연금개혁을 관철시켰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하원 표결을 생략하는 헌법 특별 조항까지 발동해 밀어붙인 결과였다. 국민 70%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회로부터 불신임을 받을 위험까지 감수했다.

한국도 연금개혁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의 전환에 찬성하는 응답은 10% 안팎에 그친다. 정치권에서는 이 때문에 ‘더 내고 더 받는’ 미봉책 성격의 개혁안이 주로 언급되고 있다. 이마저도 당장 ‘더 내는’ 고통을 떠안으면서 ‘더 받는’ 혜택을 누릴지 불분명한 청년층의 반대가 심하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1990년대생 이후부터는 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국민연금 폐지 주장까지 확산되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나서야 할 문제다.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을 거론하며 “국제사회는 대한민국과 프랑스를 비교할 것”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윤 대통령이 직접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연금개혁을 위한 대국민 영업을 펼칠 때다.

연금개혁을 안 할 경우의 불이익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연금개혁을 미룬 탓에 고갈 시점이 2057년에서 2055년으로 2년 빨라졌다는 게 올해 재정계산 결과다. 하지만 고갈 시점이 그보다 훨씬 빨라질 수도 있다. 미래 재정추계상의 성장률 출산율 기금수익률 등이 느슨하고 낙관적이라는 지적도 많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대일외교 같은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