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열린 인공장기 임상…동물실험 대안으로 뜬다

헬스케어 인사이드

美 FDA, 비임상 시험 허용
동물권 침해 논란서 자유로워

넥스트앤바이오, 대량생산 기술
넥셀은 NASA 프로젝트 참여
신약 개발은 후보물질(약물)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동물에 약물을 주입해보고,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사람에게 투여해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겁니다. 최근에는 동물 대신 장기 유사체(오가노이드)인 ‘인공 장기’, ‘미니 장기’를 이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합니다. 신약 개발뿐만 아니라 인체를 대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실험을 인공 장기가 대체하는 일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국내 바이오벤처 넥셀이 개발한 인공 심근세포는 최근 스페이스X에 실려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향했습니다. 우주 비행을 할 때 사람의 심근세포가 방사능 노출, 중력 변화 등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확인하는 미 항공우주국(NASA) 프로젝트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심근세포는 심장에 있는 근육 세포로, 심장의 수축 기능을 담당합니다. 넥셀은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활용해 심근세포를 만들었습니다.

넥셀의 시도가 주목받는 건 인공 장기가 동물과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어려운 실험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약물 독성 평가는 인공 장기가 가장 잘 활용될 수 있는 분야로 꼽힙니다.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고 반복적으로 독성을 평가할 수 있어서입니다. 동물에게서 효능이 확인됐더라도 정작 사람에게 썼을 때 효능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람 장기와 매우 비슷한 기능과 세포 구성을 갖춘 인공 장기 활용의 필요성이 커지는 배경입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이 시장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FDA는 동물뿐만 아니라 인공 장기 등도 비임상 시험에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했습니다. 법 개정에 따라 신약 개발사는 장기 칩(chip), 바이오 프린팅 등을 활용해 비임상 시험을 수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80여 년간 이어져 온 동물 독성 시험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진 않겠지만, 인공 장기를 활용한 독성 평가 시장이 열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는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는 오가노이드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한스 클레버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교수를 지난해 약물 발굴·초기 개발 부문 총괄로 영입했습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오가노이드 시장은 2019년 6억9000만달러(약 8800억원)에서 2027년 34억2000만달러(약 4조4000억원)로 연평균 22.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에서는 넥스트앤바이오가 오가노이드 대량 생산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술로 환자 맞춤형 항암제 선별 처방 플랫폼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정상 세포가 아닌 암세포를 인공 배양하기도 합니다. 강스템바이오텍은 유도만능줄기세포에서 피부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피부 오가노이드 제조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엠비디는 환자에게서 채취한 암세포를 체외에서 배양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양된 암세포에 항암제를 투여해 치료 효과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암 치료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뀔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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