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탄소중립·화물연대 파업…굳어버린 시멘트 공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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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시멘트 대란…건설·레미콘업계 '발동동'31일 충북 단양의 한 시멘트공장 앞에는 대형 트레일러가 꼬리를 물고 늘어섰다. 시멘트를 먼저 받기 위해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15대가 새벽부터 앞다퉈 몰려온 것이다. 경기도에서 온 한 BCT 운전기사는 “공사가 많이 지연돼 하루빨리 시멘트를 받아오라는 압박에 전날부터 쪽잠을 자며 대기했다”며 “인근에서 대기 중인 BCT만 100대가 넘는다”고 했다.
친환경 규제 강화에 설비개조
제조시설 35기 중 11기 '스톱'
작년 화물연대 파업에 멈춘 공사
올해 한꺼번에 몰려 수요 폭증
대형 레미콘에 시멘트 먼저 줘
공장 앞엔 아침부터 '긴 줄'
일부는 웃돈 주고 구해오기도
전국 주요 관급공사 현장과 지방 중소형 건축공사 현장에 시멘트 품귀현상이 심화하면서 △공사 및 입주 지연 △지체상금 부과 △분양 포기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레미콘업자들이 ‘웃돈’ 등 유리한 조건을 내걸며 시멘트를 구하는 상황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건설 약자’부터 때린 시멘트 공급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시멘트업계 재고는 65만t에 불과하다. 평시 재고(120만t)의 절반 수준이다.재고 물량 중 시멘트 저장고(사일로) 구석이나 모서리에 있어 사실상 정상 출하가 어려운 ‘사장 재고’가 30만~35만t에 이른다.시멘트 공급 대란은 ‘건설 약자’로 불리는 중소형 건설사에서부터 심화하고 있다. 일부 시멘트업체가 대량·장기 거래하는 레미콘사에 시멘트를 우선 할당하고 레미콘사들도 수익성 높은 대형 공사 현장에 우선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레미콘업체 대표는 “은행이 고객 신용도에 따라 대출한도를 정하듯 시멘트사도 신용에 따라 물량 배분에 차등을 두고 있다”고 했다.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내륙과 경기·인천지역 공사 현장에서 시멘트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 수급 불안의 ‘진앙’이 된 시멘트 공장의 친환경 시설 보수가 주로 내륙에 있는 시멘트사를 중심으로 진행된 영향이다. 내륙 지역 공사 현장은 해상 운송으로도 시멘트를 공급받을 수 없어 더 피가 마른다.
이처럼 ‘30년 만의 최악’ 수준으로 시멘트 공급난이 심화한 것은 무리한 탄소중립 정책과 화물연대 파업의 후폭풍, 현대산업개발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의 나비효과 등 각종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이 중 시멘트 품귀의 ‘주범’으로는 단연 무리한 탄소중립 정책이 꼽힌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탄소 다배출 업종’인 시멘트업계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12% 줄여야 한다. 2050년에는 53%까지 절반 넘게 감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멘트업계는 친환경 보수 작업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전국 시멘트 제조 설비(소성로) 35기 가운데 32%인 11기가 3월 현재 보수에 들어갔다.
지난해 1월 발생한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후 콘크리트 강도 기준이 강화된 점도 시멘트 공급 부족에 기름을 부었다. 레미콘을 만들 때 넣어야 할 시멘트 함유량 기준이 올라가면서 시멘트 수요가 크게 늘었다.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건설 이월 물량이 증가한 것도 부담을 가중시켰다. 지난해 11월 파업으로 작년 동절기 물량 상당수의 건설 시기가 연초로 미뤄졌다. 예년보다 따뜻했던 겨울 날씨도 건설 수요 증가에 한몫했다.
○‘탈출구’ 보이지 않는 위기
지방 관급공사부터 수도권 대형 공사장까지 시멘트 공급 대란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당분간 시멘트 품귀는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수차례 시멘트·레미콘 업계와 간담회를 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레미콘업계는 시멘트 수입 지원을, 시멘트업계는 환경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모두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려운 방안이다.이 와중에 건설업계와 시멘트·레미콘 업계는 ‘네 탓’ 공방까지 벌이고 있다. 건설업계와 레미콘업계는 “시멘트업계가 가격 인상의 명분으로 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시멘트협회는 “수출 물량을 내수로 전환해 우선 공급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안대규/최형창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