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왕산에 큰불…대전·홍성 등 전국 35곳 동시다발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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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강풍에 진화 비상청명(淸明)을 사흘 앞둔 2일 서울 인왕산 등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대기가 건조한 데다 날씨가 풀리면서 나들이객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상청은 당분간 산불에 취약한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홍제동 120가구 주민 대피
축구장 20개 규모 소실
잔불 진화 위해 야간드론 투입
홍성서는 민가 등 62개소 불타
인근 학교 3곳 3일 휴교
내일 밤부터 전국 단비 예상
이날 오전 서울 부암동 인왕산 6부능선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오전 11시50분께 화재 발생 신고를 접수한 소방당국은 불길이 번지자 낮 12시51분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소방과 경찰, 군인 등 인원 2458명과 헬기 15대, 장비 121대를 투입했다.
오후 5시께 큰 불길을 잡은 소방당국은 “인왕산 기차바위 인근에서 시작된 불이 산 정상과 홍제동 주택가까지 번져 축구장 20개에 달하는 면적이 소실됐다”고 밝혔다. 당국은 잔불까지 완전히 진화하기 위해 야간 드론을 투입했다.
충남 홍성의 한 야산에서도 이날 오전 큰불이 났다. 소방당국은 오후 1시20분께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인력 923명과 헬기 16대, 장비 74대를 투입해 진화에 나섰으나 강풍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응 3단계는 인접 지역의 가용할 수 있는 소방 인력과 장비를 모두 동원하는 소방 비상 최고 단계다. 산림당국은 낮 12시40분을 기해 대응 2단계를 발령한 데 이어 오후 1시20분께 대응 3단계로 상향했다.소방당국은 인력과 장비를 추가 투입했으나 오후 6시 기준 진화율은 21%에 불과하다. 이번 산불의 범위는 화선이 약 14.3㎞, 산불 영향구역은 800㏊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피해 범위는 더 넓어질 전망이다.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로 민가와 축사 등 62개소가 소실됐다고 밝혔다. 산림청 중앙산불방지대책본부는 일몰과 함께 대전 홍성 당진 보령 등의 산불 현장에서 야간 진화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충남교육청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홍성군 서부면 서부초교 신당초교 서부중 등 세 학교를 3일 하루 휴교하기로 했다.
비슷한 시간 대전 산직동의 한 야산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낮 12시18분께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은 오후 1시께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인원 1349명과 헬기 7대, 장비 152대를 동원해 화재 진압에 나섰다. 이날 산림청 실시간 산불정보에 따르면 전국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35건 발생했다.
전국에서 산불 신고가 잇따르자 소방청은 오후 1시20분께 긴급중앙통제단을 가동하고 2시12분엔 소방청 직원을 비상소집했다.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는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민가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방화선을 철저히 구축하라”고 지시했다.산불 보고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은 “산림청과 소방청을 중심으로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산불 진화와 예방에 총력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산림청과 소방청에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민 대피에 만전을 기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이날 전국에서 일어난 산불은 건조한 대기와 강한 바람이 맞물리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부분 지역 낮 습도가 20% 이하로 떨어졌다. 서울과 대전, 충남 예산 등에는 건조경보가 내려지고 나머지 전국 대부분의 지역은 건조주의보가 발령된 상태였다.
따뜻한 봄 날씨를 맞아 행락객이 늘어난 점도 산불사고가 잇따른 이유로 분석된다. 이날 전국의 낮 기온은 15~27도로 평년 낮 기온인 13.6~17.8도에 비해 크게 높았다. 온화한 날씨를 보이자 주말인 이날 전국의 산과 공원은 나들이객들로 붐볐다.산불이 진화되더라도 당분간 안심할 수 없는 날씨가 이어질 전망이다. 기상청은 4일 밤부터 전국에 비가 내리면서 건조한 날씨가 잠시 해소되겠지만 6월까지 평년보다 기온은 높고 강수량은 적은 날씨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통상적으로 3~5월은 시민의 야외활동이 많아지는 데다 대기가 건조해 산불이 집중되는 시기”라며 “산불이 집중되는 봄철엔 바람이 강하게 불어 헬기를 이용한 공중 진화가 어려운 만큼 지상 인력을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광식/안정훈/최해련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