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돌아온 '한국 팬텀'…"놓치면 다시 10년 기다릴 수도" [뮤지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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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명작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 ‘미국 브로드웨이 최장수 작품(1988~2023년)’이라는 타이틀이 이 뮤지컬에 붙은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다.
2010년 이후 첫 한국어 공연
투자금 크고 수준 요구도 높아
지금까지 10년에 한 번꼴 공연
브로드웨이 무대 그대로 재현
7년 만에 새 역할 맡은 조승우
연기력으로 '명품 배우' 증명
최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은 2010년 이후 13년 만에 열리는 한국어 공연이다. 19세기 프랑스 파리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 유령과 그가 사랑한 신예 프리마돈나 크리스틴의 이야기다.이 작품은 2001년 국내 초연 당시 2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뮤지컬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전문 관객’(같은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는 관객)이란 말도 생겼다.
13년 만에 돌아온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무대를 그대로 살리는 데 힘을 줬다. 미국에서 쓰던 무대 세트를 컨테이너 20개에 나눠 부산에 내렸다. 그걸 120여 명이 8주 동안 달라붙어 미국 무대와 똑같이 만들었다. 그 컨테이너에 실려 온 1t짜리 샹들리에는 무대 밑으로 꺼졌다가 순식간에 천장으로 솟구치며 관객들의 혼을 뺀다. 220여 벌에 달하는 화려한 의상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2막을 여는 가면무도회 장면이 특히 그렇다.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배우들의 환상적인 춤에 넋이 빠진다.
오페라하우스 구석구석을 순식간에 이동하는 유령 캐릭터를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출한 것도 박수칠 만했다. 무대에 있던 유령이 갑자기 천장 위에 올라서서 객석을 내려다보는가 하면, 방금 전 무대에 있던 유령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2층 계단에서 들렸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오페라극장이 순식간에 유령이 사는 지하실로 변한 것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압권은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든 ‘명품 넘버’다. ‘생각해줘요(Think of Me)’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밤의 노래(The Music of The Night)’ 등 잘 알려진 곡을 현장에서 일류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맛이 쏠쏠하다.
이번 캐스팅에서 주목할 만한 배역은 단연 유령이다. 조승우·전동석·김주택 등 트리플 캐스팅된 세 배우의 개성이 뚜렷하다. 이번 공연에서 7년 만에 새 역할을 맡은 ‘스타 배우’ 조승우의 섬세한 연기를 보니 역시 노래 실력보다 연기력이 명품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악을 전공한 전동석과 김주택은 듣던 대로 공연장 전체를 울리는 폭발적인 발성이 일품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무대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공연이다. 무대를 꾸미는 데 워낙 많은 돈이 들어서다. 그렇다고 무대를 대충 만들면 오리지널 기획사가 라이선스를 내주지 않는다. 수익을 내기 힘든 작품이다 보니 한국어 공연은 2001년과 2010년, 2023년 등 10년에 한 번꼴로 올랐다. 이게 바로 지금, 이 작품을 봐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번에 놓치면 다시 10년을 기다려야 하니까.부산 공연은 오는 6월 18일까지, 서울 공연은 7월부터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린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