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선', 진짜 비바람으로 표현한 절망의 민초들 [연극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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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작품 현대적으로 각색59년 전 곰치네를 괴롭혔던 거친 파도는 얼마나 잦아들었을까. 힘겨웠던 서민들의 하루하루는 얼마나 편해졌을까.
선주의 '갑질' 시달리는 어민들
물 5t 무대에 뿌려 폭풍우 연출
서울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만선’은 고(故) 천승세 작가의 작품이다. 1964년 국립극단 희곡 현상공모 당선작으로, 그해 초연돼 제1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현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다.작은 섬에 사는 어민들의 척박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한국식 리얼리즘’ 연극의 정수로 꼽힌다. 평생 배 타는 일밖에 모르고 살면서도 본인 소유의 배가 없어 선주의 ‘갑질’에 시달리며 어렵게 사는 곰치네 가정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바다에 나간 아들들이 줄줄이 목숨을 잃는데도 만선을 향한 욕심과 고집을 꺾지 않는 곰치와 그의 아내 구포댁의 고통스러운 삶을 묘사한다.
이번 공연에서 연출가 심재찬과 윤색을 맡은 작가 윤미현 등은 1960년대에 쓰여진 희곡에 현대성을 부여했다. 구포댁의 성격을 원작보다 강하게 만들어 가부장적인 곰치와 균형을 맞췄다. 곰치네 딸이 자신을 욕보이려는 범쇠에게 반격을 가하는 장면 등도 추가됐다.
다소 변화가 있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핵심 메시지는 현재를 관통한다. 다른 배에서 만선을 축하하며 징 소리를 울릴 때 곰치네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아들 세대와의 갈등, ‘갑을 관계’에서의 착취 구조 등은 현대에도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극 말미에는 무대 위에 총 5t 분량의 물이 쏟아진다. 바닷가의 비바람을 실감 나게 구현하기 위한 연출이다. 비바람의 서늘한 공기가 객석까지 전해지면서 비극적인 분위기의 절정을 이룬다. 곰치와 구포댁이 느끼는 절망스러운 감정이 피부로 느껴진다. 바닥이 기울어진 무대 디자인은 불안한 삶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곰치와 구포댁 역을 맡은 배우 김명수, 정경순의 연기 호흡이 돋보인다. 공연은 오는 4월 9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