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로 여겨져 온 조선 화첩 속 그림들, 미국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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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미국인 여성, '묵매도'·'동파입극도' 등 미공개 회화 4건 기증
시아버지 이름으로 광주박물관에 기증…"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 18세기 조선에서 의관으로 활동한 석농(石農) 김광국(1727∼1797)은 당대 최고의 서화 수집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평생 수집한 그림을 정리한 '석농화원'(石農畵苑)은 고려와 조선, 중국 등 100여 명에 달하는 화가의 그림을 모은 '명품 화첩'이었으나, 석농이 세상을 뜬 뒤 일부가 흩어졌다고 전한다.
한국 회화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인 이 화첩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시대 그림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국립광주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미국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게일 허(85) 여사로부터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 후기 회화 총 4건(총 13점)을 기증받았다고 4일 밝혔다. 기증된 유물은 18∼19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과 병풍 등이다.
이들은 모두 기증자의 시아버지인 고(故) 허민수 씨로부터 가족이 물려받아 1960년대부터 소장해 온 것이다.
박물관과 재단에 따르면 고인은 전남 진도 출신의 은행가로,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자 호남 화단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소치(小痴) 허련(1808∼1893) 가문의 후손이다. 기증품 중 가장 눈여겨볼 만한 그림은 조선 시대 문인 화가였던 김진규(1658∼1716)의 '묵매도'(墨梅圖)다.
말 그대로 먹으로 그린 매화라는 의미로, 먹의 농담(濃淡·색깔이나 명암 따위의 짙음과 옅음)으로 매화 나뭇가지와 그 위에 앉은 새 한 마리를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지난 2013년 존재가 알려진 '석농화원' 필사본 기록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당시 필사본 1집(권1)에 17번으로 나와 있던 그림으로, 그동안 제목과 그림에 대한 평가만 전해오던 것이었는데 이번에 실제 작품이 발견돼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김진규는 지금껏 알려진 작품이 많지 않지만, 김광국이 남겼다는 화평에 '귀한 그림이고 소중히 아껴라'는 메시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회화 3건은 '석농화원'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그 자체로 문화적 가치가 크다. 문인 화가 신명연(1808∼?)이 그린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흔히 '소동파'로 잘 알려진 중국 북송 대의 문인 소식(1037∼1101)이 귀양을 갔을 당시 삿갓과 나막신 차림으로 비를 피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국내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종류의 작품이다.
신명연이 일반적으로 꽃과 풀을 소재로 한 화려한 그림으로 유명하다는 점에서도 이 '동파입극도'는 희귀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기증품 중에는 허련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소나무 가지가 힘차게 뻗어 나간 모습을 표현한 '송도 대련'(松圖 對聯)에는 허련이 자신의 호를 쓰고 도장을 찍은 낙관(落款)과 제목을 붙여 지은 시가 남아있다.
이 작품은 허련 특유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박물관 측은 전했다. 8폭으로 된 '천강산수도 병풍'(淺絳山水圖 屛風) 역시 허련의 색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박물관 측은 "전형적인 소치 화풍의 산수도"라며 "병풍 뒷면에 허민수 선생과 가까운 친척인 서화가 허백련(1891∼1977)이 쓴 표제가 남아있어 두 사람의 깊은 인연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일 허 여사는 2021년 작고한 남편 허경모 씨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기증이라는 큰 뜻을 품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5월 이웃인 기획재정부 고광희 국장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후 연락을 받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가 허련의 작품을 감정·자문하다 '묵매도', '동파입극도'를 추가로 확인했다. 소장품이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꼭 환수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들은 게일 허 여사는 시아버지의 고향인 진도와 가까운 국립광주박물관에 시아버지의 이름으로 기증하겠다고 결정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증서 전달식에서 게일 허 여사는 "시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작품이 가장 잘 향유될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박물관 측은 "이번 기증품은 한국 회화사의 공백을 채워줄 작품이자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박물관은 보존 처리 작업을 마친 뒤 올해 하반기 특별전을 통해 기증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시아버지 이름으로 광주박물관에 기증…"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 18세기 조선에서 의관으로 활동한 석농(石農) 김광국(1727∼1797)은 당대 최고의 서화 수집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평생 수집한 그림을 정리한 '석농화원'(石農畵苑)은 고려와 조선, 중국 등 100여 명에 달하는 화가의 그림을 모은 '명품 화첩'이었으나, 석농이 세상을 뜬 뒤 일부가 흩어졌다고 전한다.
한국 회화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인 이 화첩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시대 그림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국립광주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미국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게일 허(85) 여사로부터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 후기 회화 총 4건(총 13점)을 기증받았다고 4일 밝혔다. 기증된 유물은 18∼19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과 병풍 등이다.
이들은 모두 기증자의 시아버지인 고(故) 허민수 씨로부터 가족이 물려받아 1960년대부터 소장해 온 것이다.
박물관과 재단에 따르면 고인은 전남 진도 출신의 은행가로,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자 호남 화단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소치(小痴) 허련(1808∼1893) 가문의 후손이다. 기증품 중 가장 눈여겨볼 만한 그림은 조선 시대 문인 화가였던 김진규(1658∼1716)의 '묵매도'(墨梅圖)다.
말 그대로 먹으로 그린 매화라는 의미로, 먹의 농담(濃淡·색깔이나 명암 따위의 짙음과 옅음)으로 매화 나뭇가지와 그 위에 앉은 새 한 마리를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지난 2013년 존재가 알려진 '석농화원' 필사본 기록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당시 필사본 1집(권1)에 17번으로 나와 있던 그림으로, 그동안 제목과 그림에 대한 평가만 전해오던 것이었는데 이번에 실제 작품이 발견돼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김진규는 지금껏 알려진 작품이 많지 않지만, 김광국이 남겼다는 화평에 '귀한 그림이고 소중히 아껴라'는 메시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회화 3건은 '석농화원'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그 자체로 문화적 가치가 크다. 문인 화가 신명연(1808∼?)이 그린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흔히 '소동파'로 잘 알려진 중국 북송 대의 문인 소식(1037∼1101)이 귀양을 갔을 당시 삿갓과 나막신 차림으로 비를 피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국내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종류의 작품이다.
신명연이 일반적으로 꽃과 풀을 소재로 한 화려한 그림으로 유명하다는 점에서도 이 '동파입극도'는 희귀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기증품 중에는 허련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소나무 가지가 힘차게 뻗어 나간 모습을 표현한 '송도 대련'(松圖 對聯)에는 허련이 자신의 호를 쓰고 도장을 찍은 낙관(落款)과 제목을 붙여 지은 시가 남아있다.
이 작품은 허련 특유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박물관 측은 전했다. 8폭으로 된 '천강산수도 병풍'(淺絳山水圖 屛風) 역시 허련의 색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박물관 측은 "전형적인 소치 화풍의 산수도"라며 "병풍 뒷면에 허민수 선생과 가까운 친척인 서화가 허백련(1891∼1977)이 쓴 표제가 남아있어 두 사람의 깊은 인연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일 허 여사는 2021년 작고한 남편 허경모 씨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기증이라는 큰 뜻을 품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5월 이웃인 기획재정부 고광희 국장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후 연락을 받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가 허련의 작품을 감정·자문하다 '묵매도', '동파입극도'를 추가로 확인했다. 소장품이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꼭 환수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들은 게일 허 여사는 시아버지의 고향인 진도와 가까운 국립광주박물관에 시아버지의 이름으로 기증하겠다고 결정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기증서 전달식에서 게일 허 여사는 "시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작품이 가장 잘 향유될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박물관 측은 "이번 기증품은 한국 회화사의 공백을 채워줄 작품이자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박물관은 보존 처리 작업을 마친 뒤 올해 하반기 특별전을 통해 기증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