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얼룩말 '세로' 근황…"캥거루 따라 껑충껑충" [현장+]

허호정 어린이대공원 세로 사육사 인터뷰
"호기심 많은 아이…건강 회복한 상태"
4월 30일 기존 관람 통로 개방 예정
"뛰어다니거나 큰 액션 취하는 것 무서워해"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해 서울 도심을 활보한 얼룩말 '세로'가 4일 오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세로는 지금 건강해요. 탈출 소동 후 세로가 동물원에 돌아온 이후로는 머릿속에 온통 세로 생각밖에 없어요. 변 상태는 전날보다 묽지 않은지, 잠은 잘 자는지, 무슨 표정을 짓는지를 수시로 확인하는 게 요즘 일상이 됐어요."

어린이 대공원을 탈출해 서울 도심을 활보한 얼룩말 '세로'. 2019년에 태어난 4세 수컷 그랜트 얼룩말로, 사람으로 치면 성인이 되기 직전인 청소년기라고. '동물원 탈출 소동' 이후 대국민 스타가 된 세로는 지금 건강히 잘 있을까. 시민들의 우려와 관심 속 세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허호정 어린이대공원 사육사를 직접 만나 세로의 상태를 들었다.

호기심 많은 아이 '세로', 탈출 소동 이후…

4일 오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얼룩말 '세로'를 바라보고 있다.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허 사육사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세로 전담 사육사'로 배정받아 돈독한 신뢰를 쌓아 왔다. 21년 경력으로 세로의 눈빛, 움직임 하나하를 체크하며 컨디션을 확인했다. 4일 인터뷰를 위해 허 사육사와 함께하자, 세로는 호기심이 많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맑고 똘망한 눈을 맞추며 연신 꼬리를 흔들어대고, 취재진이 이동하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맞추기도 했다. 사육사가 "세로야"라고 이름을 부르니 한걸음에 달려오기도 했다.

세로는 지난 3월 23일 오후께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서울 시내를 활보하다 붙잡혀 3시간여만에 돌아왔다. 허 사육사는 "세로의 탈출은 1초 만에 벌어진 일"이라며 "무언가에 경계하듯 매우 놀라 양쪽 벽에 한 번씩 부딪히더니, 갑자기 나무 데크를 부수고 나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탈출 전조 증상은 없었으며, 아직도 무엇에 놀라 탈출하게 된 것인지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게 허 사육사의 설명이다.부모를 모두 잃어 홀로 남았던 세로. 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 나왔던 걸까. 세로는 2021년 엄마 '루루'를, 지난해엔 아빠 '가로'를 차례로 잃었다. 허 사육사는 "부모가 살아있었을 당시 세로는 모든 결정이 자기 판단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부모를 따라다니며 모든 행동을 따라 했다"며 "갑작스러운 부모와의 이별로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얼룩말의 경우 추운 날에는 내실에 들어가서 자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데, 세로는 그러지 못하고 멀뚱히 서 있기도 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부모를 잃은 세로가 안정을 찾게 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과, '네가 좋아하는 걸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라는 신뢰를 형성하는 데 정말 노력을 기울였어요."

세로는 가족들이 사라진 뒤로 캥거루 등 옆 동네 동물 친구들에게도 표현하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허 사육사는 "아직 어리다 보니 호기심도 많고, 장난도 치고 싶은 상태"라며 "그래서 옆에 있는 캥거루한테 다가가 보기도 하고, 주변 동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몸짓으로 땅을 구르는 듯한 표현 등이 많아졌다"고 전했다.세로가 주변 친구들에게 관심이 많다는 건 잠깐만 관찰해도 눈에 보일 정도였다. 시선을 고정하고, 행동을 따라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옆에 자리한 캥거루가 뛰면 본인도 동작을 따라 하듯 '껑충껑충' 뛴다고. 사교성이 좋았던 만큼 주변 동물들을 보면서 본래 모습을 어느 정도 되찾고 있다는 게 허 사육사의 설명이었다.

"표현이 많은 친구…그릇 싹싹 비울 정도로 건강 되찾아"

인터뷰를 하고 있는 허 사육사와 멀찍이 보이는 얼룩말 '세로'. /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탈출 소동 직후 세로의 식사량이 급격히 줄어 사육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세로는 평소에 당근 간식을 가장 좋아했는데, 그마저 거부하며 실내 기둥을 머리로 치는 등의 행동을 반복했다. 이후 세로는 내실에서 6일가량 안정을 취하다가 지난달 29일부터는 방사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걸렸으나, 둘째 날부터는 편히 심호흡하며 뚜벅뚜벅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고. 허 사육사는 "(좋아하는) 건초나 야채를 잘 안 먹길래 당근도 채를 썰어서 줘보고 했는데 처음엔 잘 안 먹었다"라면서도 "그래도 요즘엔 먹는 양이 많이 늘어나서 기존처럼 잘 먹고, 그릇도 싹싹 비워 먹는다"고 웃어 보였다.

동물원 '인기 스타'된 세로…앞으로 괜찮을까

4일 오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모여 얼룩말 '세로'를 바라보고 있다. /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세로가 방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동물원은 세로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부모를 잃은 세로의 사연을 들은 시민들은 한자리에 모여 그의 처지를 동정했다. 지난 주말에도 동물원 개장 시간인 아침 9시에 맞춰 수백명이 줄을 서듯 세로가 잘 보이는 '명당자리' 경쟁이 있었다고.

일부 관객들은 세로의 이름을 연신 불러대며 사진 촬영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몰려드는 인파로 세로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지 우려가 나왔다. 허 사육사는 "세로의 이름이 공개된 이후 너무 많은 분들이 이름을 부르시고 있다"며 "일부 관람객들이 고함을 지르듯 세로를 부르면 세로가 놀라서 쳐다보기도 하는데, 큰 목소리로 자극을 주는 행동은 삼가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세로가 무서워하는 게 뛰어다니는 것, 몸짓을 크게 하는 것이에요. 세로 앞에서 과한 액션은 삼가해주셨으면 해요. 자연스럽게 통행하다가 보시고 말 거는 건 괜찮아요. 장난감이나 막대기를 위로 들고 흔드는 행위 등 돌발 행위만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려요"
얼룩말 '세로'가 있는 초식동물마을 울타리 및 관람데크 교체 공사가 진행중이다. /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세로가 머무는 방사장 인근 나무 데크와 울타리 등은 현재 교체 공사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으며, 오는 4월 30일 완공된다. 동물원 측은 세로가 뛰쳐나왔던 나무 울타리를 철제로 바꾸고 높이도 더 올릴 계획이다. 현재 세로의 우리는 2010년 지어진 것으로 관람객의 시야를 고려해 다소 낮은 편이다.

"(세로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존 관람 통로)는 사실 지금 개방해도 상관이 없지만, 공사가 제대로 마무리된 뒤 인사드리자는 생각이에요."

무엇보다 지금 당장은 세로의 건강과 안전 관리에 힘쓰고 있다는 게 동물원 측의 설명이다. 허 사육사는 "마취 후 세로가 동물원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곳이) 다쳤을 수 있으니, 상처가 있었던 부분 등을 포함해 2차 감염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약물 치료를 하고 있다"며 "심리적, 몸 상태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 계속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일각에서는 세로의 안정을 위해 암컷 얼룩말을 데려오겠다는 것과 관련, 우려의 목소리를 내비쳤다. 다만 허 사육사는 "세로의 여자친구가 온다는 얘기는 탈출 소동의 대안으로 정한 게 아니라, 지난해 1월 아빠가 숨진 뒤 이미 계획했던 일"이라며 "다른 동물원 암컷 얼룩말 중, 세로와 나이가 맞는 친구가 있는지를 살피는 등 그 부분에 대한 조사는 앞서 진행되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