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채 2300조 넘었다…이 와중에 정치권은 '선거추경'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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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가부채가 전년 대비 130조원 이상 불어나면서 사상 최고치인 2326조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명분으로 두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재정지출이 크게 확대된 데다 공무원연금 관련 부채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도 117조원 적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올해는 부동산·증시 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벌써부터 국세 수입이 급감하는 등 ‘세수 펑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정치권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난방비 보조금 확대 등을 명분으로 대규모 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곳간 살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표심만 의식한 ‘선거추경’ 중독에 걸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는 국가부채


정부가 4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2022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부채는 2326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2195조3000억원) 대비 130조9000억원(6.0%) 증가했다.
국공채·차입금 등 확정부채가 907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89조2000억원(10.9%) 늘었다. 앞서 최근 2년새 110조원이 넘는 초과 세수가 발생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잇따라 추경을 편성하는 등 확장재정을 펼친 데 따른 여파가 컸다.

공무원·군인연금 등 특수연금 연금충당부채가 포함된 비확정부채는 1418조8000억원으로, 41조7000억원(3.0%) 증가했다. 연금충당부채는 향후 70년 이상에 걸쳐 공무원과 군인에게 지급할 연금 추정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이다. 당장 갚아야 할 나랏빚(국가채무)은 아니지만, 연금 지급액이 부족하면 정부 재원으로 메꿔줘야 하기 때문에 재무제표상 부채로 분류된다.지난해 연금충당부채 증가폭(3.0%)은 전년도 증가폭(9.0%)에 비해 낮아졌다. 미래 연금 지급액을 추정하는 연금충당부채 산정에 적용하는 할인율이 금리 인상 기조에 따라 높아지면서 연금충당부채 증가폭이 둔화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연금충당부채 증가폭 둔화가 전체 국가부채 증가폭을 잠시나마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국가부채는 본격적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해마다 증가폭이 가팔라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말 1433조1000억원과 비교하면 893조1000억원(62.3%) 증가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채무를 합산한 국가채무는 지난해 1067조7000억원으로, 전년(970조7000억원) 대비 2.7% 증가했다.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돌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부채는 발생주의 회계에 따라 연금충당부채 등 미래 재정부담 요인까지 포괄적으로 보는 개념이다. 반면 현금주의 회계기준을 적용한 국가채무는 정부가 당장 갚아야 할 빚을 뜻한다. 국가채무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지난해 49.6%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2019년 말 기준 37.6%였던 국가채무비율은 코로나19에 따른 확장재정 여파로 매년 급등하고 있다.

○일상화된 年 100조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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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지표인 관리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사회보장성 지출)는 지난해 117조원 적자로,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전년(-90조5000억원) 대비 적자 폭이 늘었다. 지난해 국세가 코로나19 회복세에 따른 법인세·소득세 증가로 전년 대비 51조9000억원 더 걷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씀씀이(지출)가 지나치게 컸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방역대응 등 1·2차 추경 여파로 회계·기금지출이 증가한 영향이 컸다”고 밝혔다.

2019년 54조4000억원이었던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코로나19 여파로 지출이 불어나면서 2020년 112조원까지 급등했다. 이듬해 국세수입 증가로 90조5000억원으로 하락했지만 1년 만에 26조4000억원이 불어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간 100조원대 적자’ 현상이 일상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당초 윤석열 정부는 건전재정 복귀를 위해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58조2000억원)를 지난해 예산 기준(110조8000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었다. 문제는 세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는 경기 침체와 자산시장 부진 등에 따라 ‘세수 펑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 1~2월 국세 수입은 54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조7000억원 줄었다. 1~2월 기준 역대 최대 세수 감소 폭이다. 올해 세입예산 대비 국세수입이 얼마나 들어왔는지를 뜻하는 진도율도 2월 기준 13.5%로, 최근 5년 평균치(16.9%)를 3%포인트 넘게 밑돌았다.

정부는 올해 국세수입이 작년 걷힌 세금(395조9000억원)보다 4조6000억원 증가한 400조5000억원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세입예산을 짰다. 경기침체 여파로 보수적으로 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올 들어 첫 2개월 동안 15조7000억원의 세수가 전년 대비 감소했기 때문에 지난 3월부터 지난해와 똑같은 규모의 세금이 걷힌다고 해도 올해 세수는 세입예산보다 20조3000억원 모자란다. 뿐만 아니라 3월 이후 세수도 작년보다 더 줄어들 여지도 있다. 이렇게 되면 실제 세입이 예산보다 적은 세수결손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와중에 추경 압박하는 정치권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정희갑 기재부 재정관리국장은 “이번 결산을 계기로 재정건전성에 대한 보다 엄중한 인식하에 정부부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재정준칙 법제화 등을 통해 건전재정 기조를 정착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내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도 이번 결산내용을 반영해 무분별한 현금지원 사업 등 도덕적 해이와 재정 누수를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야당은 난방비 지원 등을 명분으로 빚을 내서라도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 내부에서도 추경에 찬성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에선 추경이 국가재정법상 편성 요건에 해당하는지 논의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의 편성 요건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의 중대한 변화,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해당된다.

추경 논의는 선거철을 앞두고 표심을 얻기 위해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기도 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본예산을 편성한 지 불과 한 달도 안 된 1월 말에 추경 계획을 내놨다. 정부 발표 기준으로 놓고 보면 한국전쟁 도중이던 1951년 이후 71년 만에 1월 추경이었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62조원 규모의 2차 추경을 편성했다.정부는 추경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추경호 부총리도 “전반적 경제상황 등을 검토했을 때 아직 추경을 거론하기는 여전히 이른 시점”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에 대한 정치권의 추경 압박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내년 총선 선거전이 시작되기에 파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토록 의무화하는 ‘재정준칙’을 통과시켜야만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