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벚꽃잎처럼 재와 연기가 날아드네요"…꺼지지 않는 대전 산불

속수무책 바라보던 주민 "제발 비 좀 왔으면 좋겠네요"
소방·군부대·공무원 등 진화 작업에 총동원

"오늘처럼 비를 기다리는 건 처음이에요."
지난 2일 대전 서구 산직동에서 발생한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는 장안동 일대는 4일 오전에도 탄내가 진동하고 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마스크를 파고들어 오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기침을 연발하게 했다.

장안동을 돌아다닌 지 10여 분도 지나지 않아 머리카락과 옷에는 온통 탄내가 배어들었다.장안저수지 앞에서 연기가 나고 있는 안평산을 바라보던 50대 주민은 "연기가 말도 못 하게 심하다"면서 "제발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오늘처럼 비를 기다리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바람이 불면서 벚꽃잎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검은 물질들이 눈앞에 흩날리기도 했다.이를 두고 근처 민가를 지키고 있던 소방대원은 "벚꽃잎처럼 재가 날아든다"고 표현했다.

산불로 발생한 검은 재가 500m 반경까지 날아들어 도로와 차량 등에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산불은 대전뿐만 아니라 인접한 충남 금산까지 광범위한 규모로 발생했으며, 불길이 어느 한 곳에 집중된 게 아니라 분산돼 있어 곳곳에 작은 불씨들이 꺼졌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모양새다.
장안동 물통골 마을 앞 안평산 능선 위편에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빨갛게 살아나자, 소방대원들이 민가마다 소방 살수차를 두르고 민가로 불이 내려올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했다.

진화 작업에 투입된 한 소방관은 불 냄새와 매캐한 연기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불길로 뜨거워진 산에 물을 뿌려댔다.

연기 속에서 그는 "이 정도 연기는 마시면서 끄는 거죠. 민가로 확산하지 않도록 하는 게 제일 급선무라 최선을 다해서 막아내고 있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민가 주민 오모(52) 씨는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내려앉아서 어제보다 오늘 더 안 좋은 것 같다"면서 "이틀째 걱정돼서 잠도 못 잤다.

52년 대전에 살면서 이런 큰 산불을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인데 비라도 어서 내렸으면 좋겠다"고 속상해했다.

산속에는 산불 진화를 위해 투입된 헬기 19대가 쉴 새 없이 물을 퍼 나르며 오가는 소리가 가득했다.

산림 당국과 소방 당국 외에 인근 군부대와 공무원도 진화 작업에 대규모로 투입됐다.
이날 산불 진화 지원을 나온 37사단 장병들도 산속으로 들어가 곳곳에 퍼져 있는 불을 잡기 위한 작업을 벌였다.

서구청 직원들 100여 명은 삽과 갈퀴 혹은 등짐펌프 등 각종 진화 장비를 챙겨 물통골마을 근처 앞산에 올라 불을 끄기도 했다.

한 직원은 "안으로 들어가니까 겉에서 보이는 것보다 작은 불씨들이 아직 많이 살아있더라"며 "체력적으로 다들 많이 지쳐있는데 빨리 불이 꺼졌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전했다.

인근 마을인 기정동과 흑석동에서 산불이 걱정돼 나와봤다는 60대 주민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서로 산불이 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한 주민은 "지금 보니까 어차피 다 태워야 상황이 끝날 것만 같다"며 "그저 진화 작업에 투입된 사람들이 안전에 유의해서 작업하기만을 바란다"며 진화 작업에 투입된 사람들을 걱정했다.
지난 2일 낮 12시 19분께 대전 서구 산직동과 충남 금산 복수면이 인접한 위치에서 발생한 산불이 확산함에 따라 산림청은 이날 오후 8시 30분 산불 3단계를 발령해 대응해오고 있다.

산림 당국은 진화 헬기 19대와 진화 인력 1천968명, 소방 장비 148대를 투입해 진화 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4일 오후 2시 기준 진화율은 82%까지 올랐다.이 불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주민 791명이 대피하고 민가 등 시설 3채가 불에 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