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완장 찬 조폭들, 건설현장 상대로 협박해 억대 돈 뜯어

문신한 채 현장 사무실 찾아가 "우리 조합원 써달라" 요구
전임비·복지비 명목…조폭 형태인 '보호비' 받아 챙기기도

경찰 관리 대상인 조직폭력배들이 건설노조 간부로 활동하며 건설업체를 상대로 억대의 돈을 뜯은 혐의로 구속됐다.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공갈) 등의 혐의로 모 건설노조 경인지역본부 부본부장 A씨와 법률국장 B씨, 차장 C씨 등 인천지역 조폭 3명을 포함한 총 6명을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5일 밝혔다.
A씨 등은 2021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경기도와 인천의 9개 건설 현장에서 전임비와 복지비 명목으로 117차례에 걸쳐 1억2천만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천지역 조폭 행동대원급 조직원인 A씨는 2017년 노조 활동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 8월 건설노조를 결성했다. A씨는 20여개 지부를 두고 있는 전국 단위 노조인 모 건설노조의 경인지역본부 간판을 달고 인천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어 평소 알고 지내던 인천의 다른 폭력조직 소속의 B씨와 C씨 등을 차례로 영입해 본격적인 범행에 착수했다.

이들은 부본부장, 법률국장, 차장 등 주요 직책을 맡아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지시·보고 체계를 갖춘 뒤 건설 현장 정보가 담긴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해 범행 대상을 물색, 현장에 찾아갔다. A씨 등은 이 자리에서 문신을 보여주며 자신들의 조합원을 채용해달라거나 건설기계를 사용해달라고 요구하고, 거부할 경우 집회를 열어 공사를 방해할 것처럼 협박했다.

아울러 노조 전임비를 받거나 조합원 경조사비 등 복지비 명목의 돈을 뜯어냈다.

한 건설 현장에서는 "상대 노조를 정리해주겠다"며 조폭 형태의 '보호비'를 받아 챙기기도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건설업체 측에서는 집회로 인한 공기 지연 등을 우려해 A씨 등이 요구하는 돈을 3∼6개월 동안 정례적으로 입금했고, A씨 등은 이 돈을 각 직책에 따라 급여 명목으로 매월 200만∼600만원씩 지급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의 한 피해 업체 관계자는 "피땀 흘려서 현장에서 돈을 벌고 있는데, 왜 (당신들에게) 돈을 줘야 하느냐"고 항의했으나, A씨 등은 갖은 욕설을 쏟아내며 협박하기도 했다.

이는 경찰이 공개한 피해내역 녹음파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경찰은 지난달 초 B씨의 혐의를 밝혀내 구속한 데 이어 보강 수사를 벌여 지난달 말 또 다른 조폭인 A씨와 C씨, 그리고 이들 범행에 가담한 다른 조합원 3명까지 모두 구속했다.

C씨는 B씨가 구속되면서 수사망이 좁혀오자 관련 자료를 파기한 정황이 포착돼 증거인멸 혐의도 적용받았다.

경찰은 A씨 등이 이번 사건 외에도 60여개 건설업체로부터 4억 2천여만원을 입금받은 사실을 파악하고, 추가 피해에 대해 수사 중이다.

또 해당 건설노조의 본부장을 비롯한 다른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도 이어갈 방침이다.

경찰은 이와 별도로 다수의 조폭이 수도권 건설 현장에서 폭력행위를 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정재남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은 "조폭이 주도한 건설 현장 폭력행위가 확인된 만큼 앞으로도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빙자한 건설 현장 폭력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