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세상 주식인 줄 알았는데"…주가 폭락에 개미들 '멘붕'

사진=뉴스1
‘데카콘’은 머리에 10개 뿔이 달린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동물이다. 벤처업계에선 기업가치 10조원이 넘는 비상장 기업을 가리킨다. 벤처기업이 증시에 상장하기도 전에 10조원이 넘는 가치를 받는 것이 신화에서나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용어다.

전세계적으로 데카콘 반열에 오른 기업은 80여개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바바리퍼블리카, 두나무, 야놀자 등 3개사가 10조~30조원의 가치에 거래되며 명성을 떨쳤다. 그랬던 이들 기업이 금리가 급등하고 벤처열풍이 꺼지면서 데카콘 ‘명함’을 줄줄이 반납하고 있다.

◆고점 대비 70~80% 폭락

6일 비상장 주식 거래소인 ‘증권플러스 비상장’에 따르면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최근 6조8608억원(주당 3만9000원)에 거래됐다. 지난 2021년 11월 고점(29조3781억원·주당 16만7000원) 대비 시가총액이 76.6% 감소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3조6780억원(주당 10만6000원)의 가치에 거래됐다. 2021년 11월 고점(18조7368억원) 대비 80.2% 급락했다. 레저 플랫폼 야놀자는 2021년 5월 11조9815억원에 달했던 시가총액이 4조2288억원으로 급감했다.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사를 뜻하는 유니콘 기업들도 무더기로 명찰을 내놓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22개 유니콘(작년 12월 기준) 가운데 7개사의 기업가치가 올해 들어 1조원 밑에서 실제 거래됐거나 1조원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컬리는 최근 장외시장에서 주당 2만3000원에 거래되며 시가총액이 8886억원으로 감소했다. 작년 1월초(4조4817억원) 대비 80% 쪼그라들었다. 새벽배송 업체 오아시스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코리아도 장외시장에서 시총이 각각 4013억원, 4045억원으로 급감했다.

◆“데카콘, 신화 속 존재 아냐”


이들 기업의 추락은 상장 기업과 비교해도 크다는 평가다. 고점 대비 반 토막에 그치고 있는 주요 상장 기업과 달리 데카콘과 유니콘은 5분의 1 토막이 속출하고 있다. 금리 상승, 경기 침체 등을 계기로 혁신의 가치에 부여되던 프리미엄이 꺼진 점이 핵심 이유로 꼽힌다.

한 비상장 주식 담당 펀드매니저는 “유동성이 넘쳐나던 시기에는 데카콘과 유니콘이 일궈낸 혁신의 가치에 높은 가격을 부여했다”라며 “투자자들이 상장 기업을 평가하던 잣대를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들 기업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비바리퍼블리카는 적자를 내고 있지만 모바일 금융사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에 막대한 가치를 쳐줬다. 하지만 분기마다 1조원의 순이익을 내는 시중은행과 비교되면서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해 370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두나무는 개당 9000만원에 육박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3분의 1토막(3700만원대) 나면서 충격을 받았다. 야놀자는 2021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조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기업가치가 치솟았지만, 벤처업계 불황에 동반 충격을 받으며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

◆컬리 등 IPO 실패 직격탄

컬리, 오아시스 등의 주요 벤처 기업들의 기업공개(IPO) 철회는 결정타로 작용했다. 상장 준비 과정에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에 거품이 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아시스는 9670억원~1조2535억원의 시총을 목표로 상장에 도전했지만 기관들이 ‘반값’을 제시하면서 지난 2월 상장을 철회했다. 컬리도 지난 1월 상장을 연기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오아시스와 컬리는 새벽배송 시장을 개척했다는 점에 높은 무형 가치가 부여됐지만 이제는 이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사와 비교되고 있다”고 말했다.

IPO를 노리고 들어온 투자금은 실망 매물로 바뀌었다. 2020년~2021 들어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등 주요 벤처 기업들이 상장 후 급등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은 장외 주식시장에서 상장 가능성이 있는 주식을 쓸어 담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장 대박을 노리고 장외 주식에 진출한 개미들도 벤처 거품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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