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금시장 옥죄는 한전채, 전기요금 현실화가 정공법이다

한국전력이 올 들어 석 달 만에 7조원에 가까운 회사채를 발행했다. 한국전력 채권(한전채)이 자금시장에서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문제의 근원인 전기요금 현실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올해 한전이 발행한 신규 회사채는 이달 4일 기준 6조8000억원어치다. 자금시장 투자심리가 가라앉았는데도 얼마 전 5300억원 규모 신규 발행 입찰에 2배가 넘는 1조2000억원이 몰렸다.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최상위 신용등급(AAA)의 한전채에 투자가 몰리자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일반 기업의 채권 발행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회사채 수요 예측에서 포스코(약 4조원), KT(약 2조8000억원) 등은 흥행했지만 신세계건설, 효성화학 등은 대거 미달했다.한전채 쏠림 현상을 피해 우량 기업조차 급전이 필요하거나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기업이 주로 활용하는 기업어음(CP)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기업이 발행한 CP 잔액은 145조원으로 1년 전보다 23조원 증가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전 적자를 해소하지 못하면 지금 같은 양상이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전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보고 있다. 전기요금이 원가의 70%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에만 5조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지난해엔 총 32조6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빚에 의존하지 않고선 버티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의 지원과 보증이 없는 일반 기업이라면 엄두도 못 낼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여론 악화를 우려해 지난달 말 전기요금 인상을 또 미뤘다. 이달 초 에너지 공기업들과 하려던 긴급 리스크 점검 회의도 회의 시작 직전 취소했다. 한전 적자를 줄이고 자본시장 왜곡을 막을 근본적인 해답은 전기요금 정상화뿐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가뜩이나 아슬아슬하게 거래를 이어가고 있는 자금시장에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처럼 또 한 차례의 발작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