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과 협연 '바이올린계 우영우'…"멋진 연주 할래요"
입력
수정
지면A33
자폐 장애 공민배, 7일 이화여대서 '아주 특별한 콘서트'“민배야, 이제 시작하자.”
차기 음악감독 야프 판 즈베던
"그를 배려해 천천히 연주했더니
더 빠르게, 당당히 요구하더라"
사람들 앞에선 귀 틀어막던 아이
바이올린 시작 후 먼저 인사도 해
"음악은 제게 전부…즐겁고 신나"
지난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교향악단 리허설룸.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바이올리니스트 공민배(19·화성나래학교·사진)는 어머니의 부름에 미소를 짓더니 능숙하게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그는 다섯 살 때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다.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6년 뒤. 어머니는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바이올린 학원에 보냈다. 공민배는 바이올린과 언제나 함께했다. 지난 9년간 지독한 연습벌레로 살다가 솔리스트까지 됐다.
그는 7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아주 특별한 콘서트’ 무대에 오르기에 앞서 공개 리허설을 했다. 독주로 선보인 곡은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히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의 1악장이었다. 낭만적이면서도 우아한 바이올린 선율로 유명한 작품이다. 공민배는 첫 소절부터 명료한 음색과 시원시원한 보잉(활 긋기)으로 귀를 사로잡았다. 유려한 악상 표현과 섬세한 터치로 만들어낸 그의 멘델스존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민배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어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간중간 눈을 감으며 연주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연주 도중에 모습을 나타낸 한 남성을 보고 활짝 웃어 보였다. 그는 뉴욕필하모닉 음악감독이자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인 지휘자 야프 판 즈베던(63)이었다. 즈베던은 작은 손짓으로 지휘했고, 공민배는 강렬한 선율로 화답하며 무언(無言)의 앙상블을 연출했다.공민배는 시연을 마친 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음악은 제게 전부”라며 “꼭 멋진 연주를 들려드리겠다”고 말했다. 멋진 연주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즐겁고 편안한 마음, 진정한 마음”이라고 답했다. 그는 때때로 식사까지 거르며 매일 네다섯 시간 바이올린 연습에 매달린다. 공민배는 “바이올린을 켤 때 완전 재밌고 즐겁고 신난다”며 “좋은 생각이 들고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했다.
리허설 내내 애정 어린 눈빛으로 공민배를 바라보던 즈베던은 “음악적으로 걱정할 게 없는 연주자”라고 했다. “오늘 한 시간 정도 공민배와 오케스트라가 호흡을 맞췄어요. 그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우리가 약간 천천히 연주했더니 ‘마에스트로, 좀 더 빠르게 연주해주세요’라고 당당히 말하더군요.”
이번 공연은 즈베던의 가정사와도 관련이 있다. 즈베던의 셋째 아들이 공민배와 같은 장애를 갖고 있다. 즈베던은 1997년 자폐 아동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파파게노 재단’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이번 공연도 즈베던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즈베던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친구들은 특별한 손길이 필요하지만 우리에게 삶의 중요한 가치를 되돌려주는 사람들”이라며 “앞으로도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올리는 데 관심을 쏟고 싶다”고 밝혔다.이날 자리에 함께한 공민배의 어머니 임미숙 씨는 “바이올린을 시킨 덕분에 아이가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씨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연신 손으로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했던 아이가 이제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귀도 막지 않게 됐다”며 “음악을 하면서 많은 것이 좋아졌다. 10점이 만점이라면 8점까지는 온 것 같다”고 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