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무대 위 '트로이메라이'가 위로의 서막을 열었다 [공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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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 불이 꺼져 캄캄한 무대에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가 들려왔다. 어린이정경 가운데 가장 유명한 7번곡이다. 꿈이나 몽상을 뜻하는 트로이메라이는 2분이 넘도록 어둠 속에서 이어졌다. 어린이의 동심을 표현하는 잔잔한 피아노 노래가 끝날 무렵 마치 꿈에서 깨듯 무대 조명이 켜졌다. 피아니스트 김규연(39) 서울대 기악과 교수가 포근한 슈만으로 이날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이번 공연은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 2023’의 4월 연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메인 테마다.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은 국내 음악 기획사 크레디아가 2020년 론칭한 정기 연주회다. 매달 새로운 연주자와 콘셉트로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시리즈다. 올해 클래식 클럽은 하루하루가 여행과 같기를 바라는 취지로 ‘본 보야지(Bon Voyage)’를 테마로 진행된다. 곧이어 피아니스트 김규연 옆에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38)이 등장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1악장, 세 번의 D음으로 시작하는 선율이 청중을 사로 잡았다. '비의 소나타'로 불리는 이 곡은 브람스 다운 묵직함, 진중함보다는 서정성이 두드러지는 곡으로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 내에서 호소력 짙은 선율이 극대화되는 점이 특징이다. 3악장 서두에 브람스의 가곡 <비의 노래> 선율이 등장해 이같은 별칭이 붙었다. 빗방울을 묘사하는 듯한 세 번의 D음은 1악장과 3악장에서 수 차례 되풀이된다.
한수진은 특유의 세밀한 악상 표현과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선율을 구성하는 각 구절을 구분해 연주하는 것) 처리로 씁쓸하면서도 감미로운 곡조를 원활하게 소화했다. 중저음 음역이나 6도 화성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소리가 다소 빈약해 전달력이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이러한 아쉬움은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풍성하고 따뜻한 음색과 어우러지며 적절한 조화를 찾았다. 피아노 삼중주에서는 첼리스트 강승민의 호소력 짙은 비브라토(현에 진동을 주는 연주기업)로 합주에 울림을 배가했다. 이 작품은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로베르트 슈만의 관계가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 꼽힌다. 클라라가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었을 때, 클라라를 아끼는 브람스가 이 곡의 일부를 들려주며 위로해줬다고 한다. 공연 중간 마이크를 잡은 한수진은 "비도 오고 우중충한데 오늘 공연 주제와 참 어울리는 날씨"라며 "베르테르의 이야기에서 브람스와 클라라, 로베르트의 삼각관계가 생각났다"고 설명했다.
독일 대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테마로 한 이번 공연은 다소 실험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소설의 속 남녀 주인공 베르테르와 샤를로뜨의 이야기에 맞춰 적절한 곡을 골라 75분 남짓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이를테면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의 1악장과 3악장은 연달아 진행하지 않고 이야기 테마에 맞춰 곡의 중간중간 연주되는 식이다. 베르테르를 소개한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1악장에 이어, 샤를로뜨의 재기발랄한 면모를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트리오로 표현했다.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 소나타 <사랑의 슬픔>을 통해 이뤄지지 않은 베르테르의 사랑을 나타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들려준 브람스 피아노 삼중주 1번 4악장으론는 비통한 감정을 극대화했다. b단조로 어둡고 불안하게 시작하는 이 곡은 베르테르의 비극적인 결말처럼 격정적으로 마무리됐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이번 공연은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 2023’의 4월 연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메인 테마다.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은 국내 음악 기획사 크레디아가 2020년 론칭한 정기 연주회다. 매달 새로운 연주자와 콘셉트로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시리즈다. 올해 클래식 클럽은 하루하루가 여행과 같기를 바라는 취지로 ‘본 보야지(Bon Voyage)’를 테마로 진행된다. 곧이어 피아니스트 김규연 옆에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38)이 등장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1악장, 세 번의 D음으로 시작하는 선율이 청중을 사로 잡았다. '비의 소나타'로 불리는 이 곡은 브람스 다운 묵직함, 진중함보다는 서정성이 두드러지는 곡으로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 내에서 호소력 짙은 선율이 극대화되는 점이 특징이다. 3악장 서두에 브람스의 가곡 <비의 노래> 선율이 등장해 이같은 별칭이 붙었다. 빗방울을 묘사하는 듯한 세 번의 D음은 1악장과 3악장에서 수 차례 되풀이된다.
한수진은 특유의 세밀한 악상 표현과 자연스러운 프레이징(선율을 구성하는 각 구절을 구분해 연주하는 것) 처리로 씁쓸하면서도 감미로운 곡조를 원활하게 소화했다. 중저음 음역이나 6도 화성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소리가 다소 빈약해 전달력이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이러한 아쉬움은 피아니스트 김규연의 풍성하고 따뜻한 음색과 어우러지며 적절한 조화를 찾았다. 피아노 삼중주에서는 첼리스트 강승민의 호소력 짙은 비브라토(현에 진동을 주는 연주기업)로 합주에 울림을 배가했다. 이 작품은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로베르트 슈만의 관계가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 꼽힌다. 클라라가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었을 때, 클라라를 아끼는 브람스가 이 곡의 일부를 들려주며 위로해줬다고 한다. 공연 중간 마이크를 잡은 한수진은 "비도 오고 우중충한데 오늘 공연 주제와 참 어울리는 날씨"라며 "베르테르의 이야기에서 브람스와 클라라, 로베르트의 삼각관계가 생각났다"고 설명했다.
독일 대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테마로 한 이번 공연은 다소 실험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소설의 속 남녀 주인공 베르테르와 샤를로뜨의 이야기에 맞춰 적절한 곡을 골라 75분 남짓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이를테면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의 1악장과 3악장은 연달아 진행하지 않고 이야기 테마에 맞춰 곡의 중간중간 연주되는 식이다. 베르테르를 소개한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1악장에 이어, 샤를로뜨의 재기발랄한 면모를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트리오로 표현했다.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 소나타 <사랑의 슬픔>을 통해 이뤄지지 않은 베르테르의 사랑을 나타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들려준 브람스 피아노 삼중주 1번 4악장으론는 비통한 감정을 극대화했다. b단조로 어둡고 불안하게 시작하는 이 곡은 베르테르의 비극적인 결말처럼 격정적으로 마무리됐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