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CF100으로 기업의 숨통을 틔워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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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우리 기업들은 요즘 에너지 때문에 죽을 맛이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어서다. ‘탄소 악당’이라고 눈총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수출시장의 압박도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표했고, 유럽연합(EU)도 그린딜 산업계획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탄소국경세가 가시화되면 더 극심한 요구에 시달릴 것이다. 수출시장이 얼어붙고 있는데 ESG도 하고 RE100도 하란다. 탄소 배출 없이 재생에너지로만 공장을 돌리라니, 도대체 할 수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한국전력 전기는 재생에너지 비율이 10% 내외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재생에너지를 특정해서 따로 팔지 않는다. 한전 전기를 구입하는 순간 석탄, 천연가스, 원전, 그리고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가 뒤섞여 들어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만 골라 쓸 방법이 없다. 직거래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태양광·풍력 발전사업자한테 직접 구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스스로 만들려고 공장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다 바꿔봐야 턱없이 부족하다. 이게 우리 기업의 현실이다.2021년 유엔 고위급 에너지 회담에서 제시한 방법은 ‘CF100’(Carbon Free100)이다. 재생에너지만으로 다 채워야 하는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과는 다르다. 원전, 청정수소와 같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원을 모두 포함해서 ‘카본 프리’로 정의하고 있다. 탄소 감축의 인정범위를 폭넓게 인정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의 절대 빈국이지만 원전 비중은 높다. 상당한 수준의 카본 프리 전력을 공급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이 제도를 정착하려면 시급히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카본 프리 에너지를 분리해서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형성하고 별도 가격으로 거래하게 해야 한다. 현재의 송배전 네트워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전이 화석에너지 전원의 전기는 현행 요금으로, 원전과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카본 프리 전기는 원가를 반영해 더 높은 가격에 제공하면 된다. 실제 신재생에너지에는 많은 보조금이 들어가고 있고, 원전 또한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더 높은 가격을 지급하더라도 탄소를 감축하려는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이를 선택할 것이다.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은 재무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전력요금이 경쟁국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경쟁력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카본 프리 요금의 수준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이 ‘탄소 프리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인증을 받게 해 기업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동아시아의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원전 비중이 높은 미국 프랑스 등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앞장서서 표준을 마련하고 선도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