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로 변한 인천 산동네…주민들 24시간 집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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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효성도시개발구역 보상 문제 놓고 거주민-사업자 갈등
"30년 살았는데 내쫓길 상황" vs "합법적 절차 거쳤다"
지난 5일 인천시 계양구 효성동에서 만난 김모(46)씨는 왼쪽 팔에 화상을 입어 피부가 심하게 벗겨져 있었다.그는 지난달 30일 용역업체가 퇴거 강제집행을 위해 모여들자 집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부탄가스가 든 나무 상자에 불을 붙였다.
당시 골목길 앞에는 큰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현장에 있던 소방대원이 곧바로 불을 껐으나 이 과정에서 김씨가 다쳤다.김씨는 2021년 9월 이후 4∼5차례에 걸쳐 인천지법의 강제집행을 저지하고 있다고 했다.
앞집에 사는 최모(73)씨 등 이웃집 2가구도 같은 처지다.
이들은 집을 지키기 위해 생업까지 포기하며 격렬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평화로웠던 마을에 무슨 일이
조용한 산동네가 어수선해진 것은 효성동 일대에 3천900가구 규모의 공동주택 등을 조성하는 도시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부터다.
원래는 효성도시개발이 사업을 추진했지만, 2011년 부산저축은행 파산 사태 여파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업은 장기간 표류했다.그러다 2020년 JK도시개발이 사업 시행자로 선정되고 전환점을 맞았다.
JK도시개발 측은 이전 사업 시행자로부터 땅을 사들인 뒤 자산신탁회사인 코람코와 신탁 계약을 맺고 토지 소유권을 넘겼다.
이후 코람코는 자신들이 소유한 땅에 김씨를 비롯한 주민들이 무허가 건물에서 불법 점유를 하고 있다며 인천지법에 건물 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토지보상법에 근거한 이주 정착금이나 주거 이전비를 받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무허가 건물이더라도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인 지상권을 계속 갖고 있었던 만큼 보상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토지보상법을 적용받으려면 땅에 대한 일정한 권리를 가져야 하지만, 김씨의 경우 원래 땅 주인이 과거에 토지와 지장물 일체를 매각한 상태여서 보상 대상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코람코는 사업 시행자로서 건물 철거 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 소유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어서 청구에 법적 문제가 없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김씨는 결국 코람코가 제기한 건물 인도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고, 이때부터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한 버티기가 시작됐다.◇ 주민들 "30년 넘게 살았는데 내쫓길 판"
김씨를 포함한 3가구는 JK도시개발과 보상 협의 없이 내쫓길 처지에 놓였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김씨 어머니는 형편이 넉넉지 않던 1980년대 이곳 산동네에 정착했다.
땅 주인한테는 가건물을 짓고 살아도 괜찮다는 허락을 맡았다고 한다.
김씨는 그동안 납부한 재산세 내역을 보여주며 "무허가 건물이라도 각종 공과금을 내고 30년 넘게 살아왔는데 시행사는 법의 맹점을 악용해 원주민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집에 사는 최씨는 1985년부터 이곳 마을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곡괭이 하나 들고 마을로 이어지는 길도 만들 정도로 예전부터 살아온 곳"이라며 "이 집이 철거되면 우리들의 생활사를 증명할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호소했다.
김씨 등은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생업마저 손을 뗀 채 하루 24시간 내내 집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용역업체나 경찰이 마을에 모여드는 날이면 액화석유가스(LPG)통으로 방벽을 세우거나 부탄가스를 몸에 두르고 집 안에는 휘발성 물질을 뿌리는 등 거세게 저항한다.
김씨는 "보상 대상자가 맞는지 아닌지 판단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시행사는 침묵하고 있다"며 "울화가 치민다"고 토로했다.◇ 사업자 "안타깝지만, 절차상 문제없어"
김씨 사례와 관련해 JK도시개발 측은 "분명 안타까운 부분은 있지만, 김씨는 토지보상법과 도시개발법 적용 대상이 아니고 재판부도 같은 취지로 철거와 퇴거 의무를 인정했다"며 "원래 소유주와 해결했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적으로 보상 대상자가 아님에도 시행사가 근거 없이 보상해주는 것은 오히려 사측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일단 내부적으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재산세 납부를 토대로 소유권을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불법이나 무허가 건축물이라고 하더라도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며 "사실 현황에 따른 재산세 납부와 소유권 여부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답했다.
이와 별도로 JK도시개발 측은 지난달 효성지구비상대책위 소속 285명이 인천시에 제출한 진정서에 대해 소명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대책위는 JK도시개발이 전 시행자가 불법으로 작성한 물건조사 자료만 넘겨받아 부당하게 보상 절차를 추진했다거나 보상 계획이 미흡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JK도시개발 관계자는 "전 시행자가 작성한 물건 조서를 사용하는 데 법적 하자가 전혀 없었고, 별도로 변동 사실이 있는지도 확인했다"며 "보상 계획은 법령에 따라 성실히 이행했다"고 반박했다.그러면서 "진정인이 제출한 연명부의 상당수가 이미 협의가 완료돼 퇴거를 마친 상태"라며 "진정인들은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사실관계와 다른 내용으로 민원을 넣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30년 살았는데 내쫓길 상황" vs "합법적 절차 거쳤다"
지난 5일 인천시 계양구 효성동에서 만난 김모(46)씨는 왼쪽 팔에 화상을 입어 피부가 심하게 벗겨져 있었다.그는 지난달 30일 용역업체가 퇴거 강제집행을 위해 모여들자 집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부탄가스가 든 나무 상자에 불을 붙였다.
당시 골목길 앞에는 큰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현장에 있던 소방대원이 곧바로 불을 껐으나 이 과정에서 김씨가 다쳤다.김씨는 2021년 9월 이후 4∼5차례에 걸쳐 인천지법의 강제집행을 저지하고 있다고 했다.
앞집에 사는 최모(73)씨 등 이웃집 2가구도 같은 처지다.
이들은 집을 지키기 위해 생업까지 포기하며 격렬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평화로웠던 마을에 무슨 일이
조용한 산동네가 어수선해진 것은 효성동 일대에 3천900가구 규모의 공동주택 등을 조성하는 도시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부터다.
원래는 효성도시개발이 사업을 추진했지만, 2011년 부산저축은행 파산 사태 여파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업은 장기간 표류했다.그러다 2020년 JK도시개발이 사업 시행자로 선정되고 전환점을 맞았다.
JK도시개발 측은 이전 사업 시행자로부터 땅을 사들인 뒤 자산신탁회사인 코람코와 신탁 계약을 맺고 토지 소유권을 넘겼다.
이후 코람코는 자신들이 소유한 땅에 김씨를 비롯한 주민들이 무허가 건물에서 불법 점유를 하고 있다며 인천지법에 건물 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토지보상법에 근거한 이주 정착금이나 주거 이전비를 받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무허가 건물이더라도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인 지상권을 계속 갖고 있었던 만큼 보상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토지보상법을 적용받으려면 땅에 대한 일정한 권리를 가져야 하지만, 김씨의 경우 원래 땅 주인이 과거에 토지와 지장물 일체를 매각한 상태여서 보상 대상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코람코는 사업 시행자로서 건물 철거 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 소유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어서 청구에 법적 문제가 없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김씨는 결국 코람코가 제기한 건물 인도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고, 이때부터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한 버티기가 시작됐다.◇ 주민들 "30년 넘게 살았는데 내쫓길 판"
김씨를 포함한 3가구는 JK도시개발과 보상 협의 없이 내쫓길 처지에 놓였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김씨 어머니는 형편이 넉넉지 않던 1980년대 이곳 산동네에 정착했다.
땅 주인한테는 가건물을 짓고 살아도 괜찮다는 허락을 맡았다고 한다.
김씨는 그동안 납부한 재산세 내역을 보여주며 "무허가 건물이라도 각종 공과금을 내고 30년 넘게 살아왔는데 시행사는 법의 맹점을 악용해 원주민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집에 사는 최씨는 1985년부터 이곳 마을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곡괭이 하나 들고 마을로 이어지는 길도 만들 정도로 예전부터 살아온 곳"이라며 "이 집이 철거되면 우리들의 생활사를 증명할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호소했다.
김씨 등은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생업마저 손을 뗀 채 하루 24시간 내내 집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용역업체나 경찰이 마을에 모여드는 날이면 액화석유가스(LPG)통으로 방벽을 세우거나 부탄가스를 몸에 두르고 집 안에는 휘발성 물질을 뿌리는 등 거세게 저항한다.
김씨는 "보상 대상자가 맞는지 아닌지 판단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시행사는 침묵하고 있다"며 "울화가 치민다"고 토로했다.◇ 사업자 "안타깝지만, 절차상 문제없어"
김씨 사례와 관련해 JK도시개발 측은 "분명 안타까운 부분은 있지만, 김씨는 토지보상법과 도시개발법 적용 대상이 아니고 재판부도 같은 취지로 철거와 퇴거 의무를 인정했다"며 "원래 소유주와 해결했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적으로 보상 대상자가 아님에도 시행사가 근거 없이 보상해주는 것은 오히려 사측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일단 내부적으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가 재산세 납부를 토대로 소유권을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불법이나 무허가 건축물이라고 하더라도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며 "사실 현황에 따른 재산세 납부와 소유권 여부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답했다.
이와 별도로 JK도시개발 측은 지난달 효성지구비상대책위 소속 285명이 인천시에 제출한 진정서에 대해 소명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대책위는 JK도시개발이 전 시행자가 불법으로 작성한 물건조사 자료만 넘겨받아 부당하게 보상 절차를 추진했다거나 보상 계획이 미흡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JK도시개발 관계자는 "전 시행자가 작성한 물건 조서를 사용하는 데 법적 하자가 전혀 없었고, 별도로 변동 사실이 있는지도 확인했다"며 "보상 계획은 법령에 따라 성실히 이행했다"고 반박했다.그러면서 "진정인이 제출한 연명부의 상당수가 이미 협의가 완료돼 퇴거를 마친 상태"라며 "진정인들은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사실관계와 다른 내용으로 민원을 넣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