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HMM 새 주인의 조건

해운업 성장 이끌 기업이 적임
지분 낮아도 경영권 보장해야

전준수 서강대 경영대 명예교수
HMM(옛 현대상선)은 2016년 한진해운이 파산한 이후 국내 유일한 원양 국적선사로서 수출입 화물을 운송하게 됐다. 정부는 2018년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해 20척의 컨테이너 대형선을 한 번에 건조하게 해줬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궤멸한 해외 영업망과 약해진 마케팅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세계 유수 선사들이 연합해 서로 선박의 적재공간을 나눠 쓰는 ‘얼라이언스’라는 체제에 가입하는 것이 필수 과제였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HMM에만 한정된 재정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불공정성과 HMM 마케팅 능력의 한계, 20척의 대형선을 채울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단계적으로 한 척씩 시간을 두고 건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또 해외 선박회사나 연구소 등도 이미 과잉 상태인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에 추가로 20척의 대형 컨테이너선을 투입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우리의 20척 대형선 일시 건조 계획은 얼라이언스에 가입하려는 ‘배수의 진’ 전략이었다. 우리를 가입시켜주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유럽, 미주 운송 서비스를 하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보인 것이다. 우리나라 선박회사처럼 저돌적인 선사가 독자 서비스를 하면 기존 유럽 항로, 미주 항로에서의 운임 질서가 무너지고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컨테이너 신조선의 건조가 시작되고 시장 투입이 가시화하면서 비로소 우리는 얼라이언스에 가입했다.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테리어 제품과 전자제품 수요가 급증했다. 항만과 내륙 물류망에서의 정체까지 겹쳐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은 대호황을 맞았다. 만약 당시 20척의 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해 투입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 수출입 무역은 2016년 한진해운 파산 때와 같은 엄청난 물류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3조원 정도의 신조선 자금으로 100조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막은 셈이다.

HMM은 2020년 매출 6조4000억원,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기록한 데 이어 2021년에는 매출 7조8000억원, 영업이익 2조1000억원을 달성했다. 지난해엔 무려 10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 현재는 현금유보금이 14조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시황이 급락했다고 하더라도 향후 예상되는 금융 수익으로 생존해나갈 수 있는 수준이다. 또 HMM의 선박들이 거의 신조선이어서 운항 원가와 환경 규제에 대한 대비가 잘 갖춰져 있다.

이 때문에 HMM의 새 주인은 ‘재력 있는 대기업’보다는 현 상황에서 해운의 지속적 성장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해운 전문성을 가진 기업’이 인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HMM 매각의 가장 큰 장애는 2조6800억원에 달하는 영구채다.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이 영구채를 고정된 가격으로 HMM이 점진적으로 갚아나가게 해야 한다. 이것이 HMM을 위한 정책금융의 정신이다.

정부 측 지분이 45.67%인 것을 감안하면 인수자가 20~30%의 지분을 인수하게 하고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우호 지분으로 10%씩 보유한 뒤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HMM의 시가총액이 10조5000억원(최근 3개월 평균 주가)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2조~3조원대에 HMM 인수 적임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HMM의 새 주인은 해운을 통한 국가 발전에 사명감을 갖고 핵심 역량을 동원할 수 있는 기업이어야 한다. HMM의 사례가 산은 정책금융 지원의 가장 성공한 사례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