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칼럼] '집권 야당' vs '웰빙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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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대통령 인사·외교·사면권 제한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양곡관리법 거부권을 행사하자 “이 정권은 끝났다”고 했다. 선거 불복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다. 0.73%포인트 간발의 차이라는 대선 패배 숫자가 불러온 나비 효과는 거대 야당을 오만에 빠트렸다. 정치학 대사전에는 야당 역할을 ‘여당 정책 등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견제를 통해 여당의 잘못된 독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가적인 폐해를 막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 민주당에 이런 교본은 씨알이 안 먹히고 오히려 자신들이 독주하고 있다. 선거 연패에 대한 반성과 책임감은 찾기 힘들고 거대한 정신 승리에 빠져 집권당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尹 정부 총리·장관 줄줄이 탄핵
"우리가 여의도 대통령" 외치는 듯
與, 지지율 하락에도 속수무책
주 69시간·한일 회담 대응 '빈약'
개혁 아젠다 손도 못 대고 내분만
홍영식 논설위원
여당 땐 포기한 양곡관리법에 대해 ‘원안+α’라는 더 센 것을 내겠다는 것은 3권 분립을 망각한 처사다. 거부권이 예상되는데도 문제 많은 방송법 개정안,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이는 것은 대통령에게 독선, 입법권 무시 이미지를 씌우려는 정략이다. 야당이 직회부 가능한 상임위원회가 여섯 개나 돼 얼마나 더 입법 폭주를 할지 걱정스럽다. 행정안전부 장관을 탄핵한 것도 모자라 대통령, 총리, 법무부 장관, 외교부 장관, 농식품부 장관 등을 탄핵 리스트에 올려놨다. 이러다가 중도에 정권을 탈취하겠다고 할지 모르겠다. 한·일 정상회담을 국정조사하겠다는데, 회담 내용을 다 까발리겠다는 몰상식은 세계 외교사에 희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제한하고, 외교 조약 문안까지 국회에 보고토록 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대통령 보고 폐지, 대통령의 인권위원 임명 및 대통령 친족 특별사면 제한 등 3권 분립과 헌법에 위배되는 법안을 줄줄이 발의하고 있다. 용산 대통령의 인사·사면·행정·외교권을 묶고, 여의도에선 우리가 대통령, 집권당이라고 외치는 것 같다. 이성을 압살하는 ‘스키조(정신분열) 파시즘’과 다를 바 없다. 당 대표는 신뢰 자본이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됐는데도 감옥 갈까 두려워 오매불망 대표직에 목숨을 걸고 있고, 의원들은 대표 개인 로펌이 됐는데도 70년 민주정당 맥을 잇는다고 자랑하고 있다.
능력도, 도덕성도 없는 민주당이 ‘20년 집권’ 큰소리를 떵떵 칠 수 있는 것은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워낙 엉망이기 때문이다. 정치학 대사전에 여당은 ‘정부를 지지하는 한 무리의 정당으로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정당’이라고 돼 있다. 국민의힘은 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최고위원들의 입 때문에 시끌벅적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뿌리 깊은 웰빙 체질이다. 소수여당이라면 결기라도 있어야 하는데, ‘여소야대’ 자조 속에 자취도 없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승한 집권당이 정당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비상대책위원회를 두 번이나 꾸린 것도 코미디다. 당 경선에서 패배한 비윤 세력은 팔짱을 낀 채 정권에 잽을 날릴 기회 찾기에 급급하다. 결코 우군의 태도가 아니다. 원내대표 경선에선 영남권 총선 공천을 보장한다는 후보에게 표가 몰렸다. 당은 절박한데 모두 제 앞가림뿐이다.
민주당은 친명-비명이 싸우더라도 대여 공격에선 한 몸이다. 주 69시간 근로제, 한·일 정상회담을 두고 줄창 공격해대고 있다. 좌파 방송들이 판을 깔아주면서 평의원, 야당 성향 패널들은 살판이 났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도부 이외에 일반 의원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대응 논리도 빈약하다. 야당은 주 69시간 일하는 것처럼 선동하는데도 ‘주 40시간이 기본 근로’라며 반박하는 여당 의원이 한 명도 안 보인다. 대일 외교에서도 민주당은 팀을 꾸려 후쿠시마로 가는 등 연일 정치쇼를 하는데도 여당은 야당 탓, 언론 탓만 반복할 뿐이다. 주요 이슈에 대한 여야의 메시지 양 자체가 불균형이다 보니 국민의 귀를 누가 잡고 있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여당 본연의 일인 국민연금 개혁 등 정권 개혁 아젠다는 손도 안 대고 있고, 목사 한 사람이 당내 싸움의 중심이 되는 볼썽사나운 상황이 이어진다. 야당에서 “이 정권은 끝났다”는 말이 튀어나와도 분기탱천하는 여당 의원 한 명 없다. 1년 뒤 총선에서 지면 이 말이 현실화하는데도 승리 밑그림이 안 보인다. 김기현 대표가 군기 잡기에 나섰다는데, 급선무는 근본 체질부터 확 바꾸는 것이다. 청년 지지율이 떨어지니 청년 데이터 무제한 혜택 요금제 등 세금을 퍼부어 환심을 사려는 야당의 포퓰리즘 길에 동승하려고 한다. 여야는 이렇게 상대의 헛발질, 반사이익에 기대는 좀비 정당이 돼 가고 있다. 이러다가 무당층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이란 소리까지 듣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