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은 샤넬도 파격 결단…못 말리는 한국 명품 사랑 [오정민의 유통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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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명품 중 루이비통 매출 1조7000억 육박보복소비와 리셀테크(되팔이+재테크) 트렌드를 타고 인기를 끈 명품 브랜드들이 줄줄이 호실적을 내놓고 있다.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중 매출 규모가 가장 큰 루이비통은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한국에서만 1조7000억원 가까운 매출과 4000억원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다.
디올 작년 매출·영업이익 50% 급증
인기 브랜드 가격 인상 효과 누려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면세점을 제외한 주요 채널에서 루이비통을 운영하는 루이비통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1조6923억원으로 전년(1조4680억원) 대비 15.3% 증가했다. 영업익과 순이익 증가폭은 한층 컸다. 같은 기간 영업익은 4177억원으로 38.4%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68.9% 뛴 3800억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광고선전비는 331억원으로 6.4%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소속인 디올의 경우 매출과 영업익, 순이익이 50%대 고성장했다. 지난해 국내 디올 매출은 51.6% 급증한 930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익과 순이익은 각각 53.1%, 54.8% 늘어난 3238억원, 2427억원으로 집계됐다.명품 시계와 패딩 대명사 롤렉스와 몽클레르도 양호한 실적을 거뒀다. "매장에 공기만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은 롤렉스의 경우 국내 매출과 영업익이 19.5%, 13.8% 늘어난 29934억원, 328억원을 기록했다. 몽클레르의 매출과 영업익도 각각 26.3%, 18.5% 증가한 2776억원, 73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속 보복 소비 기조가 이어진 데다 잇따른 가격 인상과 리셀테크 영향 등으로 명품 수요가 꾸준했던 결과로 풀이된다.
각 브랜드 인기 모델은 물량이 한정적이라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려는 소비자들이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매장에 뛰어 들어가는 ‘오픈런’이 일상이 될 정도였다. 일례로 루이비통은 2021년 국내에서 5차례 가격을 올린 데 이어 지난해에도 두차례 인상했다. 샤넬은 지난해만 가격을 4차례 올렸고, 올해 벌써 한 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한 상태다.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샤넬과 에르메스 역시 지난해 매출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에루샤의 2021년 합산 매출은 처음으로 3조원을 넘은 바 있다.한국은 명품 시장 규모와 영향력 측면에서 입지가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리서치 기업 유로모니터가 추산한 지난해 한국의 명품시장은 세계 7위 규모. 전년보다 4.4% 성장해 141억6500만달러(약 18조6057억원)에 달했다. 1인당 명품 소비액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분석한 지난해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약 42만원)로 미국(280달러)과 중국(55달러)을 훌쩍 웃돌았다.이렇다보니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들도 국내 시장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일례로 샤넬은 최근 하이엔드 시계 라인을 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 SSG닷컴에 입점하는 파격적 결정을 내렸다. 화장품 등 뷰티 라인이 아닌 시계 등 명품 라인의 별도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쇼핑몰 입점은 세계 최초다. 최고 3770만원짜리 시계를 SSG닷컴에서 구입하고 수령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하도록 했다. 최근 ‘세계 최고 갑부’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딸인 델핀 아르노 크리스찬디올 CEO와 함께 방한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전인 2019년 10년 이후 3년5개월 만에 한국을 찾은 아르노 회장은 잇따라 국내 유통기업 수장들과 회동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아들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김형종 현대백화점 대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도 잇따라 면담했다.올해 국내 명품 브랜드 매출은 지난해와 같은 고성장세엔 못 미치지만 크게 후퇴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롯데·신세계·현대 등 주요 백화점 3사의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지난 1월 -7.2%를 기록해 3년 만에 처음으로 역성장했으나 2월에는 2.1%로 반등했다. 지난해 상반기 두자릿수 증가율보다는 성장세가 둔화됐으나 코로나19를 거치며 커진 시장 규모가 여전히 유지된 셈이다.
불황에도 소비 패턴 분화현상으로 국내 명품 소비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형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절약한 소비를 바탕으로 확보한 자금을 명품이나 초고가의 서비스 이용을 위해 아낌없이 지출하는 소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향후에도 1인 가구의 증가와 명품에 대한 인식 전환으로 비용 절감을 위한 소량 제품구매 패턴과 초고가 소비지출 형태는 양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쏟아지는 유통업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맛보기 좋게 한입거리로 잘라 담았습니다. 유용하게 맛보는 [오정민의 유통한입], 같이 한입 하실까요?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