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거장 베르디에겐 리조또 '비밀 레시피'가 있었다!

[arte]지중배의 삶의 마리아주-맛있는 음악

테이블.

‘식탁’은 많은 추억을 담고 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며 우리들의 희로애락과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테이블이지 않을까.

6년 전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의 공연을 마치고 동료들끼리 독일 울름 대성당 근처 단골 맥주집에 삼삼오오 모였다.

여름이었지만 밤공기는 쌀쌀했다. 야외 공연을 한지라 모두들 맥주보다는 와인을 주문했다. 자연스럽게 오늘 공연에 관한 이야기, 주문한 술과 음식 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런 자리에서는 예상치 않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시작은 치즈 플레이트에 곁들여 나온 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필자는 마음이 맞는 가장 가까운 사람 몇 명과 익숙한 공간 속 아늑한 조명이 비치는 테이블에서 음식과 맛난 술을 나눠가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작곡가이자, 올해 탄생 210주년을 맞는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도 복잡한 밀라노에서 멀리 떨어진 산타 아가타(Sant’Agata)의 저택에서 전담 출판사 리코르디가(家)의 사람들, 작곡가 아리고 보이토, 소프라노 테레사 슈톨츠등 극소수의 가까운 친구들과만 시간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자라고 살아온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의 전통과 식문화를 좋아했으며 자부심 또한 컸다. 지역의 식재료를 자신만의 레시피로 요리해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놓는 것을 즐겼다.

이 지역 음식 중 '스팔라 코타 디 산 세콘도'라는 이름의 산 세콘도 마을 전통의 햄이 있다. 돼지 앞다리와 어깨부위로 만드는 이 전통 햄은 매우 부드러운 게 매력이다. 필자는 두껍게 썬 이 햄을 은근하게 데운 뒤 와인 안주로 먹는 걸 좋아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 맞다.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오페라 '아이다' 공연을 마치고 모여 안주로 시킨 햄 때문이란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베르디는 이 햄을 매우 좋아했고, 이 햄을 위해 산 세콘도의 돼지고기를 기차로 주문했다. 자신만의 레시피로 정성들여 이 햄을 만들어 자택을 방문한 몇몇 친구들에게 선보였다. 물론 에밀리-로마냐 지역의 와인과 함께.

그는 '아이다'의 밀라노 초연을 비롯해 자신의 많은 오페라의 주연을 맡은 소프라노 슈톨츠, 자신의 출판업자 리코르디에게 편지로 자신의 레시피를 적어 보내기도 하였다.

우리는 공연 후 리코르디 출판사의 이름이 크게 쓰인 나의 악보 옆에 안주를 두고(애석하게도 독일의 햄이었다), 베르디의 음식과 그의 프리마돈나 테레사를 거론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계속 해나갔다.

마치 그때의 베르디와 그 친구들이 '아이다'의 밀라노 초연을 마치고 모인 것처럼 말이다.

필자는 '아이다' 공연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가을에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에 가게 되었다. 2주 정도 여유가 생겨 다음 작품인 베르디의 '나부코' 공부를 위해 밀라노에 갔었고, 겸사겸사 에밀리아-로마냐의 중심지인 '미식의 도시' 볼로냐에서 지역음식 요리수업을 받았다.

셰프와 함께 수업을 받는 사람들과 며칠을 보낸 뒤, 테이블에 모여 서로 자기집에 초대한 것마냥 이런저런 안주거리들을 만들어 가며 소소한 뒷풀이를 하였다.

생각난 김에 근처 살루메리아(가공육 전문점)에서 사온 <스팔라 코타 디 산 세콘도>도 내 취향대로 두껍게 썰어 살짝 데워 곁들였다.

역시 이런 자리에서는 예상치 않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베르디의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베르디 이야기가 나오고 셰프가 몰랐던 좋은 정보를 주었다.

셰프 말에 따르면 베르디는 그만이 선호하는 리조토 재료와 레시피가 있었다. 그는 연주여행을 떠날 때면 꼭 그 재료들을 준비하거나, 아내 주셉피나를 통해 자신의 레시피를 전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Italian Risotto with pan seared sea scallops. White background. Top view.

누군가 핸드폰으로 튼 베르디 음악, 그 음악과 마리아주(궁합)가 잘 맞는 테이블 위의 이야기들과 음식이 있었다.

이날 수확한 베르디의 리조토 레시피는 또 다른 베르디 작품을 만날 때 가까운 사람들과 아늑한 테이블에서 좋은 마리아주로 선보일 수 있기를 기다린다.

마치 그때의 산타 아가타 저택에서 베르디와 그 친구들처럼 말이다.

지휘자 지중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