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끝이 아니라, '인생 리셋'이라고? 뮤지컬 <실비아, 살다>

[arte]최여정의 내 마음을 흔든 한 줄 - 뮤지컬
이제 겨우 서른 살/그리고 고양이처럼 아홉 번 죽지요/이번이 세 번째/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십년마다 없애야 하나/그것이 처음 일어났을 때 나는 열 살이었죠/그것은 사고였어요/두 번째에/나는 완전히 끝내고/다시는 살아나지 않으려 했죠/조개껍데기처럼(실비아 플라스 ‘나자로 부인' 중에서)
강렬한 시를 썼고 지독한 우등생이었으며 재능과 의욕이 넘쳐났던 소녀.

영국의 계관시인이 된 테드 휴즈(Ted Hughes, 1930~1998)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 아이 둘을 낳은 아내이자 엄마. 세기의 문인 커플이 되었지만 1963년 서른 한 살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여류시인.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순종적인 딸, 정숙한 아내라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하면서도 시인으로서 창작을 향한 고뇌와 싸워야 했던 실비아의 자기 고백적 시들은 그녀 사후 큰 평가를 받는다.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은 작가 사후에 출간된 책으로는 처음 퓰리처상을 받았다. 하지만 실비아의 시보다 사람들이 더 주목하는 것은 그녀의 죽음이다. 그녀의 별명은 자살 학교.

두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고 세 번째에는 오븐의 가스를 열어 목숨을 끊었다. 사람들은 실비아의 시를 읽는 대신 ‘머리를 오븐에 박아 죽은 여자’ 로 그녀를 기억한다.

나 역시 모든 불행과 싸우지 않고 도망치듯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실비아를 비난했었고, 어쩐지 그 불길한 삶의 결말을 예견한 것 같은 그녀의 시들을 읽기 주저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실비아의 삶을 뮤지컬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이상하게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실비아를 평가하는 많은 이야기가 그렇듯이, 남편 휴즈에 대한 원망과 재능의 포기, 그리고 자살로 이어지는 나약한 여성으로 그녀를 납작하게 그리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뮤지컬 <실비아, 살다>는 실비아를 다시 살게 해

사실 실비아는 ‘고양이처럼 아홉 번의 생을 다시 살아내도 될 만큼’, 삶과 시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여성이었다. 실비아에게 자살은 끝이 아니라, 생을 다시 리셋하는 무기였다.

뮤지컬은 이런 실비아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작·연출을 맡은 조윤지와 김승민 작곡가의 역할이 돋보인다.
특히 남편 휴즈가 외도로 떠나고 난 뒤 혼자 남아 ‘나는 아빠를 죽여야 했어요’라는 싯구로 유명한 시 <아빠>를 야수같은 영감으로 써 내려가는 장면, 그리고 실비아와 엄마, 빅토리아가 부르는 삼중창에선 연민의 시선은 거둬내고 실비아 시의 리듬과 세밀한 감정을 시각과 청각으로 그려내려는 여성 창작자들의 공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가장 아름다운 극적 상상력은 시작과 마지막이다.

한 소녀가 흔들리는 기차를 타고 먼 여행길에 오른다.

어딘지 모르게 두려워하는 표정의 소녀에게 옆자리의 할머니가 다가와 빨간 목도리를 둘러주며 건넨다.

서른 한 살, 짧은 생의 여정을 시작하는 어린 실비아와 미래의 실비아가 만나는 장면이다.

미래의 실비아는 소녀가 기차의 종착역까지 가지 못하고 기차를 세워 내려 삶을 마감할 것을 알고 있다.

아쉽지만 그런 여행도 있는 법이다.그래도 실비아는 삶의 불행과 실패로 힘들어하는 우리 모두를 이렇게 다독인다.

“명심해, 네 잘못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