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물

[arte] 조재혁의 음악상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생명의 근원이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인 물은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물질이다. 인류의 문화는 물이 있는곳에서 꽃이 피었고 거의 모든 문명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다. 물은 음악을 연주하는데 있어 직접적으로 쓰이기도 하였는데 15세기에 등장한 ‘The Hydraulis’라는 오르간은 물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어 오르간에 필요한 바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보에, 클라리넷 등 리드를 사용하는 악기들의 연주자들은 리드를 적시기 위해 항상 물을 컵에 담아가지고 다니고 타악기인 gong 은 연주자가 대야에 담긴 물에다 악기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음을 조절하기도 한다. 여러 작곡가들도 또한 물을 주제로 삼아 악기소리로 물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는데, 물이 자연에서 여러가지 형태로 존재하듯이 그들이 음악으로 물을 묘사했던 방법도 아주 다양하다. 예를 들어 20세기 인상파 작곡가 드뷔시의 교향시 ‘La Mer’를 들으면 큰 오케스트라가 동원되어 마치 파도가 물결치는 거대한 바다의 느낌이 나게한다. 생상의 ‘동물의사육제’에 나오는 ‘금붕어’에서 나타나는 물은 첼레스타라는 악기를 통해 그 악기 특유의 음색, 즉 작은 종을 모아놓은 듯 한 소리의 연속이 작은 물결의 모양을 연상시킨다. 같은 곡 중 널리 알려진 ‘백조’에서는 첼로로 연주되는 우아한 백조의 자태 밑에 잔잔히 흐르고 있는 물을 연상시키는 은은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흐르는 음들이 피아노의 반주파트에서 연주된다. 백조가 물위에 떠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바로 연상되는 그런 곡이다.

피아노는 현존하는 여러가지 악기 중 물을 묘사하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이 든다. 거대한 금속 프레임에는 강철로 만든 철사줄들이 엄청난 장력으로 팽팽하게 걸려있고, 그 줄들을 다양한 빠르기와 세기로 때려서 소리를 내게하는 여러개의 작은 망치(해머)들은 부드러운 양털이 압축되어 만들어졌다. 해머들의 겉표면은 부드럽지만 속으로 들어갈수록 단단하게 되어있다. 피아노는 건반을 가볍게 누르면 아주 작고 가벼운 소리를 낼 수 있는 반면 힘을 주어 누르면 그 대단한 힘이 그대로 줄에 전달되어 아주 큰 소리까지 낼 수 있는, 음악적 표현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은 악기이다. 고음 영역의 줄들은 피아노가 가진 특유의 음색, 즉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내는데 많은 작곡가들이 이 특징을 이용하여 새소리나 종소리, 흐르는 물이나 떨어지는 물방울소리 등을 묘사하였다. ‘빗방울전주곡’이라는 별명이 붙은 쇼팽의 전주곡 Op. 28, No. 15 (1838)는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음 하나가 계속 반복되어 연주되는데, 이것이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 떨어지는 물방울소리가 잘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나 물시계같은 인위적인 장치에서 나는게 아니고서는 자연에서 그렇게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드물기에 이 별명이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재미있는것은 쇼팽은 자신의 음악에 부제나 별명이 붙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음악세계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쇼팽이 '강아지왈츠’같은 별명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진다. '빗방울 전주곡’은 아주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D-flat 장조로 설정되어있다. 반복되는 음은 D-flat 장조 음계의 다섯번째 음인 A-flat 인데 어느 음계든지 다섯번째의 음은 그 특정 조성안에 들어가는 많은 화음에 공통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음이기때문에 그 음을 축으로 하여 다양한 화성진행을 할 수 있다. 곡 처음부분에는 이 음, A-flat이 조용히 반복되며 그 위에 얹어지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업고 가면서 곡을 앞으로 끌고가는 역할을 하는데 처음엔 조용했던 이 음이 곡 중간부분에서는 단조로 바뀌면서 목소리가 커진다. 처음에 듣기 편했던 반복음이 변하여 아주 커지면서 작은 물방울들을 연상시키던 소리가 거의 폭력적으로 바뀌어 듣는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 게다가 처음 조성이였던 D-flat 장조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C-sharp 단조로 변하여 사람이 듣기에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쇼팽은 우리를 이런 불안한 상태에 놓아두지않고 다시 처음처럼 돌아가 분위기를 되찾고 차분하게 곡을 마무리를 한다. 길이는 짧지만 기승전결이 있는 이 곡은 이 마무리로 우울한 마음에 위로를 줄 수 있는 곡이여서 아마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랑받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드뷔시의 작품 ‘영상’ 1권 (1905) 중 첫곡의 제목 ‘물 위에 비친 그림자’ (Reflets dans l’eau)은 별명이 아니고 작곡자 드뷔시가 직접 붙인 곡명이다. 드뷔시는 20세기에 서양음악의 발전과 발전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곡자이다. 기존의 화성학을 떠나 드뷔시만의 화성적 언어를 구축하여 음악의 방향을 완전히 돌린 장본인인데, 다른 작곡가들이 그에게서 받은 영향도 대단했다. 이 곡은 제목 그대로 물의 표면에 떠있는 그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곡이다. 흥미로운것은 조성이 쇼팽의 ‘빗방울전주곡’과 같은 D-flat 장조로 (적어도) 시작한다는 것인데 곡의 시작은 왼손으로 연주하는 저음이 기초가 되고 그 위에 아름답게 음들이 쌓이면서 우리를 청각적 상상의 신비한 나라로 인도하는 듯 하다. 처음 몇마디는 기존 화성학적으로 특이할것이 별로 없는 평범한 음악으로 들리지만, 얼마 안가서 곧 드뷔시만의 특별한 화음진행이 시작되면서 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데, 아마 드뷔시가 이 곡을 쓸때 보거나 상상했던 그 물위에 뜬 영상은 평범한 것은 아니였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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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이 1901년에 작곡한 ‘물의 유희’ (‘Jeux d’eau’) 는 글자그대로 물이 다양한 형태로 노는것이 묘사되어있다. 라벨은 말하기를 “이 곡의 영감은 미세하게 뿌려지는 물에서부터 겹치며 흐르는 시냇물 등 다양하게 들리는 물소리에서 얻었다”라고 하였다. 라벨은 드뷔시와 동시대에 살았는데 드뷔시가 음악적 격식과 형식에서 탈피하여 자유를 누렸다고 하면 라벨은 화성적 자유는 누렸으되 기존의 음악적 형식 (모음곡, 소나타 등) 안에서 작품을 썼다고 본다. 음악의 형식 중 널리 알려진 소나타 형식은 오랜 세월을 걸쳐 진화되었는데 이 형식은 음악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때도 시대나 장르 등 해야되는 이야기의 설정이 여러가지가 있듯이 음악작품을 쓸때도 작곡가는 비어있는 오선지를 앞에 놓고 조성이나 분위기 등 여러가지 설정을 고의로 해야된다. 소나타 형식의 처음부분인 전개부는 이야기의 다양한 설정을 하는 곳이라고 보면 되고 그 바로 다음에 나오는 발전부는 글자그대로 설정된 음악적 요소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발전하여 소설이나 영화로 말하면 줄거리가 한참 무르익고 풍부하게 (또는 꼬이게) 계속되어지는 부분이다. 소나타 형식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분인 재현부는 이렇게 다른곳으로 발전되었던 음악의 이야기가 앞에 나왔던 전개부의 내용을 한 번 상기시키고, 그러나 바로 이어서 (다른곳으로의 발전을 배제하면서) 원래 조성으로 유도하여 종결을 하게하는, 그래서 이야기를 마치게 되는 그런 곳이라고 보면 된다. 소나타형식의 음악을 들으면 시작과 끝이 명료하게 들리고 다 듣고나면 정리가 된 느낌이 나는데 라벨의 ‘물의 유희’로 돌아가서 보면 이 곡은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이야기가 풀린다. 라벨은 이 곡 머리에 시인 Henri de Régnier 의 작품 Cité des eaux 에서 나오는 구절 하나를 인용하는데 “Dieu fluvial riant de l’eau qui le chatouille…” ‘물의 정령이 흐르는 시냇물에 간지럼을 탄다’라고 의역 하면 되겠다. 이 곡의 악보는 무수한, 게다가 깨알같이 작은 음표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이런 곡들은 처음에 배우기에도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린다. 흥미로운것은 그당시 미술계에서는 인상주의 기법의 하나인 Pointillism 이 한창 유행이였는데 라벨의 ‘물의 유희’는 음악적 포인틸리즘이라는 생각이 든다. 깨알같이 작은 음들을 가까이에서 (음악에서는 천천히라 할 수 있겠다) 들으면 큰 그림이 잘 보이지 (들리지) 않지만 조금 떨어져 보면 (들으면) 이 작은 점들 (음들)이 모여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한다. 곡의 시작은 마치 물이 졸졸 흐르는듯 하다가 갈수록 이 작은 물방울들이 모이는데, 물과 시간이 흐르면서 물살도 점점 빨라지다가 마침내 트레몰로와 건반을 한손으로 홅는 글리산도로 이야기의 절정에 이르면서 이 곡은 발전부가 끝나고 재현부로 들어간다. 메인 모티브가 다시 연주 된 후 이야기는 (음악은) 예고없이 방향을 틀어 조용한 가운데 바삐 움직이는 작은 음들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여 피아노 건반의 맨 윗부분까지 올라갔다가 서서히, 극도적으로 가볍게 내려오는데, 이부분을 들으면 마치 물이 미세한 얼음알갱이가 되어 바람에 날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후 극적인 반전이 있게되는데 이 곡 중 제일 조용한 악상 (악보에 ppp 으로 표기되어 있다)에서 가장 큰 악상 (fff ) 으로 물결이 갑자기 휘몰아치다가 가라않고, 음악은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을 주는 양 잠시 멈춘다. 멈추는 부분은 페르마타로 표기되어있는데 이 정적의 시간의 길이 설정은 전적으로 연주자에게 맡겨져 있다. 이 고요한 순간이 너무 짧으면 정리가 안된 느낌이 나고 너무 길면 음악의 맥이 끊기기때문에 이런곳에서는 ‘적당히’가 정말 중요하다. 이런 극적인 드라마가 있은 후 마치 해가 서서히 지는듯한 느낌을 주는 곡의 마지막부분으로 들어가는데 여기는 마치 물이 증발하기 시작하여 공깃속으로 사라지는 느낌이 난다. 처음부터 복잡하고 몽환적인 화음들로만으로 곡을 구성하던 라벨이 갑자기 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우리의 귀에 익숙한 diatonic 화음인 E 장조 코드로 곡의 대미를 장식을 하는데, 곡의 시작부터 소위 불협화음만 듣던 청중에게는 격정적인 순간을 지난 후 이렇게 갑자기 들려오는 편하고 아름다운 느낌의 E major 화음의 출현으로 그 효과가 극대화 되어 지극히 아름답게 들린다. 라벨은 이 곡의 시작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청중의 집중을 집요하게 이끌어낸다. 피아노라는 - 사실 물이나 습기와 상극관계인 - 악기에서 생성된 크고 작은 소리입자들이 잠시 우리의 귓속을 두드리다가 잡힐세라 공중으로 후루룩 날라가버리는것이 다양한 형태의 집합체에 합류했었던 물분자들이 다같이 휘몰아치다가 급기야 증발하여 대기속으로 흩어지고 마는 물분자를 연상케 할 수 있다는것은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