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가 전당포에 맡긴 작품까지 전시하는 그곳

[arte] 윤상인의 런던 남자의 하얀 캔버스 - 월리스 컬렉션 The Wallace Collection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는 여행지는 유럽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럽 안의 수많은 나라들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어 국가간 이동도 편리하고 거리도 가깝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점은 여러 문제들을 초래하고 있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만 보자면 매우 강점이 아닐 수 없다. 여러나라가 붙어 있어 과거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많았고 서로 섞이면서도 각 지역의 전통과 사회적 분위기에 따 라 각기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바로 이런 유럽 국가들의 닮은 듯 다른 점들이 전세계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유럽의 흥미로운 역사와 문화에 반해 20살 되던 해부터 유럽여행을 시작했고 영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럽국가 간의 손쉬운 교류로 인해 예술 분야도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고 현재 유럽여행을 가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유럽의 미술관, 박물관을 가보기 위해서 일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도 다양한 역사와 흥미로 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유럽의 보물창고를 하나씩 들여다보자.

처음 열어볼 보물창고는 런던의 ‘월리스 컬렉션 The Wallace Collection’ 이다. 월리스 컬렉션은 런던의 대표 쇼핑거리인 옥스퍼드 스트릿에 있는 셀프리지 백화점 (Selfridge) 뒤편에 위치해 있다. 인파로 복잡한 쇼핑거리를 지나 한적한 뒤쪽 블록으로 들어가면 붉은 벽돌 의 고풍스러운 저택이 보이는데 바로 월리스 컬렉션이다. 필자는 런던에 살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장소가 바로 월리스 컬렉션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국의 유명한 박물관인 영국박물관(The Btitish Museum)은 방문 전부터 나름 기대를 하고 들어가서인지 규모나 전시품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월리스 컬렉션은 이름도 생소하고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관이 라서 첫 방문을 하는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기대도 없었다.

하지만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런던 도심에서 18세기의 화려한 파리를 만나다니 과연 프랑스에 이곳만큼 18세기 로코코 예술품만을 위한 미술관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더군다나 입장료까지 무료라니 월리스 컬렉션이 너무 궁금해졌다.
사진 출처 : Photo Myrabella Wikimedia Commons
사진 출처 : Photo Myrabella Wikimedia Commons

왜 이런 작품들이 이렇게 멋진 공간에서 대중들에게 무료로 개방이될까?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한 것은 ‘리차드 월리스’ 덕분이다.

미술관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리차드 월리스 가문이 대대로 수집한 미술품들이 전시되는 곳이다. 이 수집품을 모으는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리차드 월리스의 아버지인 4대 허포드 후작인 ‘리차드 세이무어 콘위’이다. 허포드 후작은 자신이 갖고 있는 막대한 자산으로 일찍이 미술품에 투자했다. 특히 후작은 파리에서의 오랜 생활로 프랑스 예술품에 대한 심미안과 영국인의 취향이 접목되어 자신만의 독특한 컬렉션을 완성했다.

이 저택은 후작이 늘어나는 미술품을 보관하기위해 구입한 저택이었다. 후작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 았고 그의 유일한 사생아였던 리차드 월리스에게 자신의 저택과 수집한 컬렉션을 남겨주고 세상 을 떠났다.

아들인 리차드 월리스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유명한 예술 수집가와 자선가로서 성장하였다. 1872년 리차드 월리스는 파리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면서 이 저택을 보수하고 자신이 생을 마감했던 1890년까지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가 사망하자 월리스 부인이 예술품을 영국 정부에 기증하였다. 정부는 허포드 저택을 구입한 후 1900년부터 미술관을 대중에게 공개하여 지금까지 모든 방문자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소개하고 싶은 예술품들이 많지만 그 중 마리 앙투아네트의 소장품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화려함의 아이콘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샤유 궁전의 별궁 ‘프티 트리아농(Petit Trianon)’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있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78).jpg

프랑스 베르샤유 궁전의 물건들이 어 떻게 런던까지 오게 되었을까?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물건들을 혁명이 끝난 후 되찾을 생각으로 전당포에 맞긴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사형당하면서 그것들을 되 찾지 못했고 그녀의 소장품들은 경매에 올라오게 된다. 이것을 놓칠 리 없는 후작이 그녀의 소장 품들과 경매 포스터까지 사들여 이곳 런던까지 오게된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장 아꼈다는 붉은 옥 장식을 한 향로와 화려한 금박 가구들을 보면서 그녀가 머물던 프티 트리아농이 어떠했을 지 상상해 보게된다.